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

*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



오랜만에 마을 한 바퀴 길에 나섰다. 아무래도 도시 아파트와 산골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뭐 하나 진득하게 제대로 붙잡지 못해서 뜸했다. 날마다 다닐 때와는 전혀 달리 낯선 길처럼 느껴진다. 워낙 추워 밖에 나다니는 어르신들이 안 계시니 더욱 쓸쓸한 시골길이다.
다만 영하 10도 넘게 떨어졌어도 곳곳에 늦가을의 흔적은 남아 있다. 감나무에 달린 감꼭지, 길바닥에 아직도 빛바랬지만 벌건 홍시 자국. 벼 거둬들이고 깔대기처럼 쌓은 볏짚, 배추밭에 김장하러 뽑아내고 남은 널브러진 배춧잎은 초록빛이 조금 남아 있고, 밭둑 논둑에 간간이 보이는 연둣빛 이름 모를 풀들...


(볏짚도 잘 모아놓으면 작품 - 구글 이미지에서 퍼옴)



그래도 내복 입고 패딩 걸치고 군밤장수 모자에다 폭닥한 장갑 끼지 않고는 나다닐 수 없으니 맵디맵찬 겨울이다. 겨울임을 가장 잘 알려주는 빛깔이 잿빛과 황톳빛이라면, 소리는 얼음장 아래 개울물 흐르는 소리. 물소리야 봄가을에도 나지만 얼음장 아래 나는 소리는 확실히 다르다.
살갗을 얼리듯이 ‘칼 칼’ '쩡 쩡' '싹 싹’이라 해야 하나, 노래로 치면 레가토가 아니라 스타카토다. 이어 부르지 않고 딱딱 끊는 듯이 나니까. 잘디잔 버들치는 저 소리를 어떻게 이겨낼까? 물을 얼리는 차가움보다 소리가 주는 차가움을 견디기가 더 힘들 것 같은데.


마을 아랫길로 들어섰다. 어, 그런데 들깨 잔뜩 심었던 비탈밭에 삽차 - ‘포클레인’의 우리말 순화어 -가 놓여 있고 철근도 보이고 블록도 보이고 모래 자갈도…. 언젠가 펜션, 아니면 캠핑장 들어설 자리로 안성맞춤이라 했는데… 역시 짐작대로 건물 올릴 터 닦는 모양. 하기야 거긴 민가와 떨어진 외딴곳이라.




마침 작업 쉬는 중인지 사람은 보이지 않고 해서 가까이 가 보았다. 땅이 완전히 얼기 전에 삽차가 작업한 모양인지 나무뿌리와 칡이 더러 보였다. 뿌리 하나는 인테리어용으로 딱 좋고, 칡은 손질 조금만 하면 먹을 수 있어 인부에게 물어보려 했으나 보이지 않아 그냥 물러서 나오는데 조그만 뭔가가 보였다.
갈맷빛 등을 보이며 점잖게 엎드린 녀석은 지금 계절에 보여선 안 되는 개구리였다. 그것도 참개구리. 아니, 기온이 영하로 급강하했는데 개구리라니! 겨울철 이상고온이라 해도 밖에 나오면 개구리는 못 살 텐데….

아무래도 이상해 발로 슬쩍 툭 하고 건드려보았더니 그대로 뒤집어졌다. 그럼 그렇지, 하면서 이번엔 손으로 만져보니 얼음.
이게 무슨 일이람! 꽁꽁 얼어붙게 하는 계절과 어울리지 않게 개구리가 나오다니. 당연히 얼어 죽을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이 계절에 나왔단 말인가?


(그날 참개구리 사진 찍지 못해 다른 사진으로 대체)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우선 반려동물인데 누가 빠뜨렸나 하고. 개구리도 반려동물이 있다 한 기사 읽었으니 하는 말. 그러나 봄 여름 가을이면 개울가에 가장 흔히 보이는 평범한 참개구리다. 참개구리를 반려동물 삼아 키우는 사람이 없으란 법 없으나….
다음으로 한동안 따뜻해서 봄이 왔나 하여 나왔다가 된바람 맞고 저리 되었나? 허나 어떤 동물이든 겨울잠 자는 기간은 본능에 따르는데. 마지막은… 생각하기 싫지만 삽차가 보였으니 땅속 흙을 퍼 올리다가 한참 겨울잠 자는 개구리까지 딸려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사실 앞에 주절주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나는 개구리를 보는 순간 단번에 삽차 때문임을 알아차렸다. 삽차 기사는 운전할 때 땅속에 뭐가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당연하다. 큰 기계 굴리면서 땅속 생물까지 생각하며 작업하다간 오히려 사고의 위험이 크니까.
그럼 개구리는? 개구리는 겨울잠 자기 전에 인간이 삽차를 몰고 와 뒤집어놓을 땅 위치를 미리 알고 피해서 잠자리를 골라야 하는가? 면사무소에서 개구리나 겨울잠 자는 땅속 생물을 위해 올겨울 토목공사 할 곳을 담당 공무원이 미리 알려줘야 할까?


(땅에 떨어져 널부러진 홍시 파편)



글을 쓰고 나면 먼저 아내에게 읽게 하는데 오늘 글은 보여주지 않았다. 나올 말이 뻔해서다.
“아니 사람의 죽음에나 신경 쓰소. 얼마나 억울하게 죽은 사람 많은데. 하등 가치 없는 개구리 죽음이나 쓰지 말고...”
맞는 말이다. 얼마나 억울한 죽음이 많았던가. 수학여행길에 배를 탔다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늘로 간 어린 생명부터, 재작년 태국에서 날아와 무안공항에 착륙하던 항공기가 콘크리트 둔덕을 들이받아 탔던 승객 거의 대부분 사망한 사건까지.

이뿐만이 아니다. 스스로 판단이나 행동이 손가락 하나 개입할 틈도 없이 일어난 사건 사고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애꿎게 희생되었는가. 아니 지금 이 순간도 세계 곳곳에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쟁으로 억울한 죽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굵직굵직한 주제를 잡고 써야 관심을 갖지 이런 잔챙이 소재에 매달리다니. 그러니 당신 글을 누가 읽어주겠소!’
아내 대답을 가정해 구성한 말인데 어김없는 말이다. 겨우 개구리 한 마리의 죽음에 매달리다니! 토목공사 하다 보면 이보다 큰일 많은데…


(로드킬 당한 새 - 구글 이미지에서)



언젠가 전쟁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어린이를 돕는 구호단체에서 일하는 관계자를 인터뷰한 뉴스를 본 적 있다. 그는 왜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처지에 놓인 어린이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하는가를 역설했다. 목소리도 그렇고 조곤조곤 이어가는 화술이 꽤나 감동적이었다.
헌데 인터뷰 말미에 한 기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나라에도 어려움에 처한 어린이가 많습니다. 그런데 왜 외국 어린이에게 관심을 보여야 할까요?”
그에 대해 그는 이리 대답했다.
“제가 마침 우연히 들른 나라에서 그 아이들의 눈을 보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느 장소든 각자 자신이 본 일이나 다가온 소리를 들으면 거기서 그들을 도우시면 됩니다.”

비슷한 말을 들려주고 싶다. 그날 우연히 산책길 공사현장에서 죽은 개구리를 만났고, 그 개구리의 죽음이 주는 아픔이 그 순간 다가왔다고. 마을 한 바퀴 다 못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한참 달콤하게 잠자는데 얼떨결에 땅위로 내처져 얼어 죽어가며 지르는 개구리의 비명이 아직까지 귓가를 맴돈다.

*. 지난 AI로 쓴 글을 보냈을 때 그 글보다 제가 쓴 글이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는 댓글에 힘입어 계속 글을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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