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0편 : 류시화 시인의 '희망은 가볍게 잡아야 한다'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류시화 시인 편 ♡
- 희망은 가볍게 잡아야 한다 -
희망은 가볍게 잡아야 한다
새처럼 날아가 버릴지 몰라 힘껏 움켜쥐면
손 안에서 숨 막혀 죽는다.
이제 막 날갯짓 배운 어린 새를 감싸듯이
손에 오목한 곳에 올려놓아야 한다.
아니면 공중을 나는 깃털처럼
무게도 중력도 없이
머리 위에 내려앉게 해야 한다.
다른 머리 위에도 날아갈 수 있도록
너무 세게 붙잡아 모서리가 부서지거나
매달리며 애원해선 안 된다
절박할수록 가만히 희망을 품는 법을 배워야 한다
희망은 숨을 쉬어야 하고
나무 위의 새처럼 스스로 노래해야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희망은 가볍게 붙들어야 한다.
부서지기 쉬운 껍질 안에 절망이 웅크리고 있으므로
희망이 날아갔다가 언제든 다시 날아올 수 있도록
사방의 벽을 없애야 한다.
그렇게 무한히 열려 있어야 한다
내가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2024년)
<함께 나누기>
류시화는 현재 시를 쓰고 있는 시인 가운데 가장 많은 베스트셀러 시집을 펴낸 시인이란 평을 듣습니다. 그만큼 읽는 이를 감동하게 만드는 지점을 잘 뽑아내며, 또 그만큼 읽기 쉬운 시를 많이 쓰는 시인이란 말도 됩니다.
한편 류시화는 일반인들에겐 인기 있으나 문인들과 언론에선 폄하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잠언시(또는 '교훈시')를 많이 써 독자를 가르치려 든다는 말을 들으며, 또 자신이 창작한 글보다 남의 좋은 글을 이용해 인기인이 되었다는 평도.
저는 예전엔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으나 지금은 그런 점도 그의 능력이라 여깁니다. 특히 그는 인디언의 생각을 옮기기 위해 단순히 그들에 관한 책만 읽지 않고 직접 찾아가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며 그들에 묻히려 했습니다.
또 '잘랄루딘 루미'의 시집을 펴내기 위해 페르시아어를 배워 500페이지 넘게 시를 번역했는데, 페르시아어로 시를 노래한 루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답니다.
오늘 시도 류시화의 잠언시 류의 시적 전개가 돋보입니다.
요즘 부쩍 희망이란 단어를 자주 접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최근의 혼란스럽고 위험한 국내외 정세와 관련하여 간절히 우리에게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에 희망이란 단어의 사용 빈도가 그렇게 높아지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얼마 전 결혼을 앞둔 한 젊은 커플이 자기 돈과 빚낸 돈 각각 2억5천씩 모아 5억을 주식에 모두 투자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결과가 좋으면 올가을에 결혼식 올리기로 하고. 아마도 주식 경기가 좋다 보니 한 결정이겠지요. 이익이 생기면 좀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구할 수도 있을 터.
그런데 너무 고점에 산 모양인지 그로 하여 수익보다 손해가 커지면서 서로 네가 먼저 시작하자고 했니 하는 식의 둘의 갈등이 시작되었고... 조언자가 이럴 때 하는 말, ‘절대 빚내서 주식 투자를 해선 안 된다’ ‘모든 재산(희망)을 거기 걸면 안 된다' 이런 말이 두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겠지요.
“희망은 가볍게 잡아야 한다”
시인은 희망을 가볍게 잡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삶도 그렇게 가볍게 대해야 한다고. 희망을 손아귀에 너무 힘껏 잡으려 들면 새처럼 날아가 버리거나 아니면 손 안에서 숨 막혀 죽는다고.
옳은 말입니다. 허나 만약 희망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그 동아줄을 세게 잡지 않을 사람 있을까요. 놓치면 절벽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아도. 어쩌면 잡는 걸로 끝나지 않고 절벽에 자신의 몸을 묶을지도. 떨어지면 끝장인 줄 번연히 잘 알면서도.
“절박할수록 가만히 희망을 품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역시 옳은 말입니다. 희망은 나무 위의 새처럼 스스로 노래해야 하기에 부서지지 않게 가볍게 품어야 합니다. 알면서도 그게 쉬운 일이던가요. 처음 시작할 때 마음과, 중간쯤 왔을 때 마음과,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의 간절함이 다르기에.
상황이 힘들고 절박할수록 평범한 우리는 조급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시에 나온 ‘가만히 품는 법’을 가만 다독여 봅니다. 외부의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희망을 소중히 지켜내는 인내와 수용의 태도를 굳건히 지키라는 뜻을.
“희망이 날아갔다가 언제든 다시 날아올 수 있도록 / 사방의 벽을 없애야 한다”
희망은 때로 우리 곁을 떠나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억지로 붙잡아 두려 하지 말고 언제든 다시 날아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어야 합니다. 희망이 떠나가는 것을 허용하는 여유로움이 있을 때, 비로소 희망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갖게 되니까요.
“내가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 희망이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희망에 집착하여 무겁게 쥐다가는 오히려 희망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니 희망이 머무는 공간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희망은 ‘나무 위의 새’처럼 생명력을 지녔습니다. 나무 위의 새가 한순간 자리를 떠나기도 하지만 그곳이 살 만하다면 다시 찾아오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새(희망)가 찾아올 나뭇가지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다시 찾아와도 낯설지 않고 불편하게 여기지 않도록 말입니다.
#. 류시화 시인(본명 안재찬, 1958년생) : 충북 옥천 출신으로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새삼 소개가 필요 없는, 글 쓰는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책이 팔렸으며, 가장 좋아하는 시인 설문조사에서 언제나 최상위권을 차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