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가을에 쓴 일기에서 뽑았습니다.
* 부부 싸움 *
- 산에서 주운 밤을 두고 -
일요일, 아내가 우리 집 아래 가음댁 할머니와 뒷산에 가서 밤을 한 소쿠리 주워왔다. 크지 않은 아주 작은 밤이었다. 그걸 보고 한 마디 했다.
"아니 다람쥐 먹이를 다 훑어오면 어떡해!"
"걱정 붙들어 매세요. 다람쥐 먹을 건 아직 충분하니까요."
그때부터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남 : 우리에게 겨우 군것질거리밖에 안 되지만 다람쥐한텐 양식이라는 내 말이 틀렸어?
여 : 틀렸지요. 뒷산에 다람쥐가 몇 마리 된다고. 수만 마리 있다 해도 걔들 먹이는 충분해요. 그리고 밤만 있는 게 아니라 도토리도 있잖아요.
남 : 아니 내 말은 저렇게 작은 밤은 우리보다 다람쥐 먹이로 딱이잖아.
여 : 그럼 저 밤나무를 처음 누가 심었는데요? 다람쥐가 저 먹자고 심었어요? 아님 사람이 먹자고 심었어요?
남 : 아니지. 처음 저 산의 주인은 누구였어?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쳐들어가 밤나무를 심어놓았잖아.
그러니까 원래 주인은 다람쥐 같은 산짐승의 것이지 사람의 것이 아니잖아!
그러면서 아차 했다. 다음에 나올 아내의 논리가 뻔해서다. '그 논리로 밀고 나오면 안 되는데...' 하고 생각했건만 예상한 대로 아내가 그걸 물고 늘어진다.
여 : 그럼 산에 나는 모든 산물은 다 산짐승의 것이니 우리가 절대 먹어선 안 되겠네요. 당신이 담아놓은 칡주, 머루주, 더덕주... 다 안 되는데 어떻게 다 가져왔을까?
남 :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내 말은...
해도 논리적인 면에서 밀린다. 처음부터 말싸움 안 될 소재를 잡고 물고 늘어졌으니까. 그래서 슬며시 꼬리를 내릴 수밖에.
다음날 아침, 식탁에 어제 주워온 밤 삶아놓은 걸 보았다. 아내가 없는 틈을 타 하나를 입에 넣어보았다. 크기는 작으나 맛은 제법이다. 하나 더 넣으려는데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아내 눈에 딱 걸렸다.
여 : (놀리듯이) 세상에~ 사람으로서 다람쥐 먹이를 다 먹다니~
남 : (딴청 부리며) 다람쥐가 좋아할 만하네. 꽤 맛있는 걸~
여 : (놀림 반 진심 반으로) 맛있다니 ~ 그럼 산에 아직 더 남아 있을 텐데 오전에 함께 갈까요?
남 : (못 이기는 척) 오전에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
산에 올라가 한 소쿠리 주워 내려올 때 아내가 말했다.
여 : 옛날부터 마누라 말 잘 들으면 복이 마구마구 들어온다고 했잖아요.
남 : 아이구, 그~ 래 참~ 으로 크~ 은 복이 들어왔다. 꼴랑 콩알만 한 밤 두 소쿠리 얻은 것 같고...
여 : 꼴랑이라뇨? 그럼 당신은 먹지 마오. 나 혼자 다 먹을 테니.
그때부터 또 투닥투닥했다. 조금 가라앉을 무렵 내가 말했다.
남 : 우리도 남들이 질투 나도록 한 번 살아보자. 늘 별것 아닌 일로 다투지 말고. 남들이 보고, "저 부부 너무너무 행복해 보인다" 또는 "아내가 남편 바라보는 저 눈빛 좀 봐. 얼마나 존경하는 마음이 담겼어" 이런 말 들으며 살면 좀 좋을까.
여 : 저도 이런 말 들어봤으면 죽어도 여한 없겠어요. "봐라, 저 집 남편은 제 마누라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눈빛뿐 아니라 얼굴 전체에 어려 있잖아. 참말로 부러워 죽겠네."
남 : 됐다, 됐어. 마 그만하자. 남들이 질투할 정도로 살 생각은 애시당초 꿈꾸지 말고 그냥 살자. 그냥 이대로 살면서 싸우고 또 싸우고. 나중에 질려 싸우고 싶지 않을 때까지 싸우자.
말을 하다 보니 정말 멋진 표현이지 싶다.
'싸우고 또 싸우다가 질리게 되면 싸움이 없어진다?'
히얏! 소크라테스나 공자도 깨닫지 못한 진리 아닌가.
혹 우리 부부처럼 별것 아닌 일로 싸우시는 가정에선 질리도록 한 번 싸워 보시길. 아니 이 이치를 여당과 야당 의원님들에게 전파할까. 그럼 싸우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 적어놓은 대화만 보면 '싸움도 아닌 것 같은데...' 하실 분이 계실까 봐 미리 선수 칩니다. SNS에 올리는 글이라 '표현을 굉장히 순화시켰다'는 사실만 밝혀둡니다.
그리고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