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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23. 2023

제107화 : 어느 열대어의 죽음

        * 어느 열대어의 죽음 *



  아내와 나는 성격이 다르다. 사십 년 넘게 살면 같아진다는데 그 틈이 별로 좁혀지지 않는다. 혹 금혼식인 2032년에 이르면 몰라도. 허나 둘 다 그때까지 산다는 보장 또한 없으니.
  나는 맺고 끊음이 확실한데 아내는 두루뭉술하다. 아내는 어떤 사람이든 어울리기를 좋아하나 나는 편한 사람 아니면 만나지 않는다. 성격만 다를 뿐 아니라 취미도 둘이 다르다. 책 읽고 쓰기 같은 정적인 걸 좋아하는 나완 달리 아내는 동적인 걸 좋아한다.

  그런 아내의 취미 가운데 하나가 열대어 '구피' 기르기다. 햇수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되었다. 구피든 뭐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기르려면 일단 부지런해야 한다. 날마다 먹이 주고 짬짬이 어항 속도 씻어줘야 하니까.
  뿐이랴 한 녀석이라도 시원찮으면 신경 써야 한다. 애써 키운 걸 죽게 만들면 마음 아프니까. 그런 면에서 아내는 여태 잘 유지해 왔다. 어항이 꽉 차도록 구피가 새끼 낳아 다른 집에 여러 차례 분양해 줬으니까.




  그런데 지난주 월요일 저녁, 물갈이하고 난 뒤 문제가 생겼다. 새 물로 갈고 난 다음날 아침 몇 마리가 죽어 어항에 떠있지 않은가. 아내는 연방 "어!" "어!" 하는 비명만 지를 뿐 갑작스레 일어난 사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우연이겠거니 여길 뿐.
  헌데 그날 오후 다시 댓 마리가 죽더니 다음날 아침에 또 죽어나갔다. 이쯤 되면 우연이 아니라 사고임이 분명하다. 혹시 물갈이가 잘못됐나 하여 새로 갈았더니 다시 몇 마리가 더 죽었다. 이때사 드는 어림. 물갈이? 물에 이상 있다?

  사건 생기기 며칠 전 마을공동수도 물탱크 교체한 일 생각난 건 그때다. 물탱크를 교체했다 하여 물고기가 죽을까? 그러다 반장님과 얘기 나누면서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새로 만든 물탱크에 소독을 위해 ‘염소(鹽素)’를 새로 교체했다는 점. 그러자 우리 집 어항 구피가 죽은 원인이 명확해졌다. 공동수도에 염소는 소독을 위해 꼭 필요해 넣어야한다. 시 수도 정수장에 염소 넣어 소독하듯이.


  도시 살 때도 구피를 키웠는데, 그땐 물갈이할 적마다 미리 물 받아 이틀 정도 한데 둔 뒤에야 넣지 않았는가. 염소가 증발한 이후에 넣으려. 공동수도에 염소 넣은 걸 뭐라 따질 수 없고, 염소 넣는다는 방송 왜 안 했냐고 따질 수도 없다.

  소독에 필요하다고 넣는 걸 뭐라 할 수 있으리오. 스물댓 가구 되는 마을에 물고기를 키우는 집이 몇 집 된다고. 아니 꼭 반장이 그런 사실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달내마을로 오기 전에 문무대왕면 (구 양북면) 용동리에 주말주택을 얻어 토요일 오후 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돌아왔다. 비록 천만 원 주고 사서 천만 원 들여 수리한 초라한 집이지만 거기 가면 참 편안했다. 그러니 거의 매주 찾았다.
  그러던 어느 가을, 우리 집에 심은 무를 뽑았는데, 세상에! 군데군데 쩍쩍 갈라져 있고 심지어 심이 박혀 있지 않은가. 약 한 번 안 치고 비료 한 톨 안 뿌려 먹으려 했지만 너무도 형편없는 무 상태에 결국 포기하고 바로 윗집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키우는 소가 생각나서.

  할아버지는 무척 좋아라 하며 무를 받으셨다. 그런 뒤 울산 집에 가려 차 몰고 내려오다 개울에 이르러 어떤 사람이 트럭을 몰고 와 무를 버리는 게 아닌가. 우리 무랑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미끈하게 빠진 무를 버리려는 게 하도 이상하여 물어봤더니 무값이 떨어져 차 기름 값도 안 나와 버린다는 거였다.
  순간 머릿속이 환해졌다. 이 무를 윗집 할아버지께 갖다 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 생각에서. 재빨리 차 돌려 다시 올라갔는데 할아버지는 고개부터 저었다. 그 무는 소 못 먹인다고. 왜 그러냐 했더니 농약 친 무라나.

  세상에! 농약 친 무라서 소에게 못 먹이는데 그걸 우리들은 사 먹는다? 그러니까 소가 못 먹는 무를 사람이 먹는 셈이다. 그때 얼마나 충격받았던지. 아내와 나는 그날 이후 우리 밭에서 심어 얻은 푸성귀는 하나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아무리 작아도, 아무리 볼품없어도, 아무리 심이 많이 박혀도, 아무리 쩍쩍 갈라져 있어도 버리지 않는다. 그날 결심으로 지금까지 텃밭에 한 번도 농약을 치지 않았다. 수확은 다른 집에 비할 바 못 되나 마음만은 편하다.


(몇 안 남은 구피도 나중엔 결국 다 죽고 말았다)



  구피는 사람이 먹는 물을 마셔선 안 되고, 소는 사람이 먹는 무를 먹으면 안 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얼마나 강한가. 왜 만물의 영장인지 어떤 동물보다 위대한지 이제사 깨달았다. 아주 작은 동물인 구피도 아주 큰 동물인 소도 못 먹는 걸 먹고 사니 말이다.
  오늘 아침 보니 구피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나 둘 셋... (이 글을 쓸 때 즈음 구피가 다 죽음) 이들의 죽음을 우리의 부주의라 하기엔 좀 그렇다. 그렇다면 구피의 잘못인가?그도 아니다. 


  오랫동안 키운 구피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하여 생각거리가 많아진다.

  *. 오해 없으시길.

  수돗물에 든 모든 염소는 시간 지나면 증발하고, 끓이면 즉시 다 날아간답니다. 그리고 염소 잔류량 0.1~4mg/L에 들면 우리 몸에 아무 지장 없다고 하는데 모든 지역 상수도는 그 안에 다 들어간답니다. 다만 구피 같은 물고기에겐 치명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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