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텃밭에 틀밭을 만들자 *
꼭 전문농사꾼이 아니더라도 텃밭이 조금 있다면 이맘때의 봄날 시골에 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고, 게다가 묘목 옮겨 심을 일까지 보탠다면 하루해가 정말 쉬 간다.
우리 텃밭은 고작 백 평 남짓하여 이곳 어르신들 토속적 표현으로는 ‘호리뺑뺑이’ 일밖에 안 된다. 하기야 다들 천 평 이상 밭농사를 지으니까. 그럼에도 워낙 일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데 괭이질ㆍ 호미질ㆍ 삽질 등 손이나 발로 하는 텃밭 일에 재주가 남보다 뒤떨어지는 편이니...
작년부터 일 하나를 더 늘였다. 바로 틀밭 만드는 일. 틀밭을 만들어 실제 써보면 왜 그게 필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감히 말한다. 텃밭 일 가운데 밭 갈기보다, 씨앗 뿌리기보다, 모종 심기보다 더 중요한 과정이 틀밭 만드는 일이라고.
아마도 매스컴을 통해 틀밭을 본 적 있으리라. 혹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사과궤짝 길게 늘인 모양의 ‘틀’에다 흙을 넣어 만든 ‘밭’이다. 이 틀밭은 쿠바에서 시작되었다. 쿠바가 (구) 소련과 손잡는 바람에 1960년대 미국과 서방으로부터 경제 봉쇄를 당하자 당장 먹고살 식량과 채소가 부족하게 되었다.
비료도 거름도 확보하기 어렵게 되자 시골에선 농사짓기를 포기하니 더욱 농작물 가격은 오르고. 고심 끝에 농사를 도시로 끌어올 방법이 없을까 모색하다가 고안해 낸 꾀가 바로 틀밭이다.
당시 도시 주변에는 작지만 빈 땅이 많았다. 그곳에 손 경작 할 수 있을 만큼의 면적에 널빤지나 벽돌 따위로 틀을 만들고 흙을 담아 만들었다. 밑바닥에는 음식물쓰레기나, 마을 단위로 생산한 지렁이 분변토를 넣는 등 유기물을 넉넉히 깔았다.
거리에 넘쳐났던 음식물쓰레기가 없어지면서 깨끗하고 건강한 거리로 바뀌고, 푸릇푸릇한 채소까지 보자 사람들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왔고. 덧붙여 처음 만들 땐 예상하지 못한 수확까지 거두게 되면서 쿠바 전역에 틀밭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작년 우리 땅에 틀밭을 만들려고 한 까닭은 쿠바 사례 보고 수확 늘리려 함이 아니라 갑자기 생겨난 팔레트를 처리하기 위함에서 시작했다. 팔레트(외국어 표기법에 따르면 ‘팰릿’이나, 익숙하게 쓰는 말이라 그냥 씀)는 무거운 화물을 지게차로 하역 작업할 때 쓰도록 나무로 만든 받침틀이다.
물론 우리 집엔 불 때는 황토방이 있으니 팔레트를 장작 대신 사용하면 된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에 나온 틀밭을 보다가 따라 하고 싶었다. 한 해가 지난 지금 틀밭에 대한 나의 평가는 대만족이다. 오히려 왜 진작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드니까.
인터넷을 뒤지면 틀밭의 장점이 조기 두름 꿰듯이 주르륵 나온다.
① 이랑과 두둑을 일부러 만들 필요 없어 흙을 갈아엎지 않아도 되고,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아 힘이 훨씬 덜 든다.
② 흙을 갈아엎지 않기에 토양 생물들이 지속적으로 생명 유지와 번식을 할 수 있어 토양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③ 큰비 내려도 이랑이 무너지거나 흙이 손실되는 것을 방지해 줘 틀만 튼튼하면 장기적으로 사용 가능하다.
④ 언제나 정리정돈 된 텃밭을 유지할 수 있어 보는 눈이 맨땅보다 더 즐겁다.
이런 내용이 인터넷에 나온다면 내가 실제 얻은 소득은 아래 셋이다.
첫째, 두더지로부터 뿌리작물을 보호해 준다. 즉 농약을 치지 않는 밭에 땅콩, 고구마, 감자, 돼지감자를 심으면 두더지가 다 갉아먹는다. 허나 틀밭 만들 때 아래에다 그물을 깔아놓으면 두더지가 드나들 수 없어 그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둘째, 틀밭은 맨땅보다 높아 무릎 쪼그리지 않고 의자에 앉아 일할 수 있어 허리 보호와 작물 수확에 더 수월하다. 즉 아주 높지 않아도 상추 같은 남새 뜯을 때 허리를 덜 굽혀도 되니 훨씬 편하며 호미질할 때도 마찬가지다.
셋째, 약을 치지 않아도 잡초가 거의 나지 않으며, 나더라도 뽑기가 아주 수월하다.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라 하는데, 그 전쟁을 하지 않고 승리를 쟁취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제 틀밭 만들기로 들어가 보자.
유튜브를 보면 틀을 비싼 돈 들여 방부목으로 만드는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영상 찍기 위한 목적이라면 몰라도 권하고 싶지 않다. 재료로 팔레트를 추천한다. 팔레트는 당근마켓을 검색하면 공짜로 갖고 가라는 데가 많고, 특히 이맘땐 많이 쏟아지니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물론 팔레트는 좋은 나무로 만들지 않기에 방부목보다 빨리 썩는다. 허나 작년 만들어 써보니 올 한 해 더 쓸 수 있고 밖에 덧대면 몇 년 더 쓰겠다. 방부목은 그보다 더 오래 쓰겠지만 결코 영구적이 아니다. 방부목이야 잘 안 썩을지 몰라도 결합해 놓은 못은 녹이 슬면 절로 내려앉기에.
이왕 예쁘고도 (반) 영구적인 틀밭을 원한다면 보도블록이나 적벽돌을 재료로 쓰면 좋으리라. 단, 비싼 돈을 들여 구입하지 말고 공짜 아니면 헐하게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본다. 큰돈 들여야 한다면 당연히 '비추'다.
남 보기 좋게 만들기보다 나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이면 가성비 면에서 헌 팔레트가 최고다. 만들기 쉽고 해체하기 쉽기에. 작년에 틀밭을 두 개 만들었는데 올해는 하나 더 만들었다. 이왕 효과 봤으니 짬날 때마다 하나씩 늘여갈 작정이다.
참 당연한 말이겠지만 틀밭은 너무 넓은 면적이거나 그 속을 채울 흙을 마련할 수 없다면 포기하는 게 낫다. 혹 흙을 구하기 어려운 집을 위해 팁을 준다면 겨울에 부엽토를 찾아 짬짬이 조금씩 넣으면 폭 1m 길이 10m쯤 되는 틀밭 하나는 만들 수 있으리라.
나는 땅콩을 참 좋아한다. 볶은 땅콩 아닌 삶은 땅콩을. 그런데 우리 밭엔 두더지가 하도 많아 심기를 포기했다. 올해는 바닥에다 그물을 깔았으니 두더지 녀석이 치사하다 할지 모르나 땅콩을 심어야겠다. 두더지 없애는 짓보다야 이 방법이 훨씬 나으리라.
아직 땅콩 심기도 전에 그 고소함이 입에 담기는 듯하여 벌써부터 입맛 다신다.
*. 도시에서 보도블록을 새 걸로 교체하려 뜯어내거나, 헌 벽돌을 싸게 파는 곳도 있습니다. 심지어 틀밭 만들어 팔기도 하는데 아래는 파는 제품의 하나입니다. 예쁘긴 한데 시간 여유 있으면 직접 만드는 재미를 느껴보시길 비싼 돈 들여 살 필요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