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그리운 아버지(1)

제1화 : 아버지, 아 아버지!

* 아버지, 아 아버지! *



아버지는 강골이셨습니다. 대충 강한 사내가 아니라 화를 내면 어느 누구도 감히 범접 못할 만큼 눈에 불이 났습니다. 윗집 사는 철호 형은 동네에 소문난 서면을 주름잡는 깡패 두목이었지만 우리 집 앞을 지나칠 땐 발자국 소릴 죽여야 했습니다.
하루는 학교 갔다 오는 나를 불러 세운 철호 형이, "야, 너거 아부지가... 너거 아부지가..." 하고 치를 떨며 주먹을 쥐었다가 내렸습니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에게 ‘깡패새끼가 동네 설치고 다니는 꼴 못 본다.’는 말을 듣고 절 때리고 싶었지만 후환이 두려워 참았을 겁니다.

미니스커트 입은 처녀들은 우리 집 앞을 지나가지 못하고 먼 길을 빙 둘러가야만 했습니다. 눈에 띄었다간 ‘가시나, 다리몽댕일 부러뜨린다!’는 말을 들었을 테니까요. 언젠가 누나가 밖에서 미니스커트 입고 다니는 걸 보았습니다. 그날 아버지에게 일러바치지 않는다는 약속 하에 아이스케키를 얻어먹고 그 뒤에도 누나를 몇 번 더 협박해 얻어먹었습니다.


6_5agUd018svc2liwq3wkdy23_149gk0.png?type=e1920_std (미니스커트 - 구글 이미지에서)



이런 일은 제게 하등 피해 끼치지 않기에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버지는 '생쌀밥은 먹어도 죽밥은 못 먹는다'란 신조를 지녀, 어머니가 한 번씩 ‘진밥’ 올리면 밥상을 마당에 던져버려 치우느라 좀 애써야 했지만.
이것도 저랑 관계없습니다만 제가 대학 가겠다고 선언한 그날부터 미운털이 박혀 좀 늦게까지 공부하려 불 켜놓으면 바로 껐습니다. 막무가내로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왜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도 대학 갈 수밖에 없는 사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공고 화학과를 다녔는데 실험실 화학약품 냄새를 못 맡았습니다. 아니 냄새가 그냥 괴로운 정도가 아니라 머리가 너무 아파 자리에 누워 있어야 회복되었으니까요. 그러니 일주일에 두 번 들어가는 실험실은 지옥으로 가는 관문과도 같았습니다. 그런 사정을 아무리 얘기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그때부터 도둑공부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초저녁잠이 많았고, 한 번 잠들면 잘 깨지 않은 점도 천만다행. 그렇게 전깃불 훔쳐가며 한 공부로 대학은 합격했습니다만 그걸 알았을 땐 칭찬보다 얼마나 야단맞았는지.


6_6agUd018svcmlrkrvn3dyxy_149gk0.png?type=e1920_std (모 고등학교 화학실험실 – [한국일보] 2018. 4. 10)



아버지로선 빨리 고교 졸업한 뒤 취직하여 생계를 책임져야 할 아들이 계속 공부한다니 못마땅했겠죠. 학비와 생활비까지 벌겠다는 약속 하에 대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남들은 대학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하던데 저는 전혀 아닙니다.
만약 그때와 같은 조건이라면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가정교사 세 군데 뛰고 나면 밥 먹을 시간도 부족했으니까요. 대학의 낭만이라는 미팅도 억지로 한 번 한 게 끝. 도무지 시간 나지 않으니 즐거움은커녕 괴로움뿐. 대학 캠퍼스가 젊음의 낭만이란 말은 개뿔!


왕으로 군림하던 거대한 아버지가 작아지는 날이 왔습니다. 대학 2학년 그날을 뚜렷이 기억합니다. 어머니가 진밥을 내오자 밥상을 던졌고... 평소 같으면 부엌에 가 혼잣말로 중얼거렸으련만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항거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평소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겠지만 그때 어머니는 저를 믿고 하극상의 반란(?)을 획책했던 모양입니다. 왜 그렇게 믿느냐면 화가 나 손을 치켜든 아버지가 다가오자 어머니는 재빨리 제 뒤로 숨었으니까요.
정말 어머니를 때릴 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아버지의 팔을 잡았습니다. 당연히 아버지는 제 팔목을 뿌리치려 했는데... 어 웬걸, 제 손에 잡힌 아버지의 팔목엔 전혀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얼굴이 벌게지도록 힘을 썼지만 제 손을 빠져나오지 못했고...


6_6agUd018svc6ptbvthlsyl6_149gk0.png?type=e1920_std (SBS드라마 ‘수상한 가정부’ 스틸 컷)



그리고... 그날 이후 아버지는 날개 꺾인 독수리가 되었고 제왕의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아니 왕좌에서 추방당했다고 해야 할까요? 아버지의 기세가 꺾임과 동시에 어머니의 기세가 등등해졌습니다. 아버지랑 단 둘이 계실 땐 조용히 있다가 제가 오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으니까요.
저는 그때부터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능력도 없으면서 큰소리만 치고 살았다고 노골적으로 내려다보았습니다. 또 아버지의 직업은 남이 알까 얼마나 부끄러웠든지. ‘똥 퍼 아저씨’ ‘숯막에서 숯 굽는 화부’, ‘부전시장 공중변소 청소부’, ‘연탄장수’ 그나마 가장 멀쩡한(?) 직업이 만화방 운영.
부정하려고 드니 장점은 없고 온통 비난거리만 낚시 바늘에 줄줄이 엮여 나오는 열기처럼 주르륵주르륵 딸려 나왔습니다.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입으로만 큰소리 뻥뻥 친 뻥쟁이, 힘도 빽도 없으면서 거짓 힘센 척한 허풍쟁이.


6_7agUd018svc8m1e61sjlhjf_149gk0.jpg?type=e1920_std (아는 이가 그려 준 "똥 퍼" 아저씨)




아버지는 그렇게 약하디 약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아버지를 다시 새겨보게 된 건 제가 아버지가 되면서부터입니다. 가장으로서 무게감을 느낄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앞을 막는 벽이 나타나고, 절벽 앞에 설 때마다 아버지가 그리웠습니다.
아버지 당신도 그런 직업을 원하지 않았을 겁니다. 허나 학교 문턱도 넘어보지 못한 데다 물려받은 재산도 익힌 기술도 없으니 뭘 할 수 있었을까요? 남들 눈엔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가족의 생계를 위한 일이라면,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을 겁니다.

또 비록 나이 들었지만 (당시 예순) 제게 한 번 잡히자 힘 한 번 쓰지 못한 걸 보면 젊었을 때도 그리 힘센 분이 아니셨음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으로 상대를 압도했습니다. 특히 이글거리는 눈길을 받으면 상대는 주눅이 들고.
그래선가요, 동생과 제게 가끔 하시는 말씀,
“사내는 꼭 심(힘)이 세야 강한 기 아이다. 눈빛이 살아 있으면 그기 사내인 기라.”
그 뜻을 진작에 깨달았더라면 저도 강한 사내가 되었을 텐데...

대학 가기를 극구 반대함도 뚜렷이 들어오는 수입도 없는 집안 형편에 홀로 받아들여야 할 짐을 생각하셨을 겁니다. 없는 집 아들이 4년간 짊어져야 할 험난함을 미리 내다보고 그렇게 막으려 들었을 겁니다.


6_5agUd018svc145ggvig8503g_149gk0.jpg?type=e1920_std (독수리의 매서운 눈 - 구글 이미지에서)



돌아가시기 며칠 전, 아버지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나가 젊었을 때 우리 식구들 참 모질게 대했제. 자슥 다섯을 하날로 보내고 나니까 살아남는 기 최고인 기라...”
제 형제자매는 모두 열 명이었는데 다섯 죽고 다섯 살아남았습니다. 다섯은 병으로 영양실조로 하늘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우짜던동 살아남아야 하는기라. 살아남아야...”
살아남는 게 삶의 목적이었던 분, 살아계시면 113세, 평생 소원이 살아계실 때 며느리 보아 며느리 해주는 밥 한 끼 먹고 싶다던 분, 오늘 아침 며느리가 차린 젯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 놓인 영전 앞에 서서 당신께 큰 절 두 번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