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그리운 아버지(2)
제2화 : 아버지, 그리고 철들지 않은 아들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Oct 9. 2023
* 아버지, 그리고 철들지 않은 아들 *
아버지 직업이 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 안 난다. ‘똥 퍼’에서 ‘숯가마 잡부’, ‘물방개 장수’, ‘부전시장 공중화장실 청소부’ '연탄장수'. 여기까진 엄마와 누나들의 기억을 모아 정리할 수 있으나 나머지 또 얼마나 더 다른 일을 했는지 모른다.
이 기억을 모아 글을 썼고 책까지 펴냈다. 사실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훨씬 더 많았음에도. 어머니에 대해선 사랑과 안쓰러움이 남았는데 반하여 아버지 하면 무능과 미움이 더 우선했건만.
어릴 때 아버지는 엄격하셨다. 아니 너무나 무서운 분이셨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다리몽댕이가 부러질 정도로 매를 맞았다. 한 마디 지시가 떨어져 바로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그냥 넘기지 않으셨다. 추우나 더우나, 어두우나 밝으나, 힘드나 편하나 관계없이.
초등학교 6학년 한가위를 앞둔 때라 기억한다. 그러니까 자그마치 55년 전의 일이다. 아직도 그 일 기억함이 스스로 신통할 정도로. 그 해 9월, 추석을 한 달 앞두고 그날만을 기다렸다. 왜냐면 막내누나가 ‘밤색 골덴 바지’를 사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아 골덴 바지, 누빈 것처럼 골이 지게 짠 그 옷감 처음 만졌을 때의 감촉을 잊지 못한다. (외국어 표기법에 따르면 ‘골덴’을 '코르덴'으로 써야 함)
(구글 이미지에서 퍼옴)
하필 한 동네 아랫집에 사는 또래 명찬이가 검은색 골덴 바지를 입고 거들먹거리며 나타났을 때를 또렷이 기억한다. 녀석은 아직 채 여름이 가시기 전이건만 자기 고모가 사준 옷이라며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입고 나타나 우리에게 자랑했다.
그때 그 옷이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훔치고 싶을 정도로 탐이 났다. 그래서 짬날 때마다 막내누나에게 말했던가 보다. 산동네에서 내려다보는 럭키화학(지금의 LG그룹 전신)에 다니던 누나가 동생의 성화에 무심코 약속을 했다. 추석에 밤색 골덴 바지 사주기로.
한 달도 더 남았건만 그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시시때때로 누나에게 압력(?)을 넣었다. 봉급 타면 꼭 골덴 바지 사준다는 약속 잊지 말라고. 그런데 추석을 보름쯤 앞둔 어느 날 학교 갔다 집에 오니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회사에 있어야 할 누나가 집에 있었으니까.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누나는 깁스한 발목을 들어 보여주었다. 세상에! 일하다 선반에서 떨어진 공구에 발등을 다쳤다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외쳤다. “골덴 바지는!” 그 말에 엄마가 머리를 쥐어박으며 나무랐다.
“이놈이, 제 누나가 다친 것보다 골덴 바지를 먼저 찾아!”
그리고 그날 저녁 물방개 장사를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에게 엄마가 그 얘기를 전했던가 보다.
(참고로 '물방개 장사'란 개울에 가 물방개를 잡아 파는 장사꾼이 아니라 물방개를 이용하여 돈벌이하는 일)
자다가 일으켜 세운 나를 아버지는 이 뺨과 저 뺨을 후려치며 말했다.
“이놈이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뭐가 먼저인지 모르는 놈을 우리 집에서 키울 수 없다.”
평소에도 무섭던 아버지가 그날따라 얼마나 무서웠든지...
(아는 이가 그려줌)
누나는 예상(?)대로 한 달 이상 회사에 가지 못했다. 즉 추석을 그냥 보내 버렸으니 월급을 못 받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의 골덴 바지도 날아갔다. 명찬이뿐 아니라 동네 아는 애들에게 다 자랑해 놓았던 그 바지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말이 추석의 대명사가 됨은 그만큼 추석 무렵이 가장 풍족할 때란 뜻이다. 그러나 그 해 나에게는 아니었다. ‘더도 없고 덜도 없는’ 한가위였다. 즉 아무것도 없는 한가위. 텅텅 속이 빈 한가위.
한가위 전날 밤, 다시 한번 저쪽에 누운 누나를 꼬나보며 속으로 얼마나 욕을 했던지. 입 밖에 내었다가는 엄마가 또 아버지에게 이른다면... 아버지는 올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가끔 한밤중에 오기도 했으니 누나 향한 욕을 몇 번이나 더 내뱉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한가위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누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손에 뭔가 들려 있는 게 아닌가.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이불과 함께 날아올랐다. 누나의 손에 든 건 밤색 골덴 바지였으니까.
“누... 누나... 이게 머꼬?”
“니가 그리도 갖고 싶어 하던 바지잖아.”
도무지 믿기지 않아 누나를 보고 골덴 바지를 보고 다시 누나를 보고 골덴 바지를 보고... 이렇게 여러 차례 보다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누나가 회사 안 갔는데 어데서...”
그제사 얘기해 주었다. 누나가 사 온 게 아니라 아버지가 사 왔음을. 밤늦게 시장 뒤지다 그래서 늦게 들어왔단다. 솔직히 누나가 사 왔든 아버지가 사 왔든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요한 건 골덴 바지가 내게 왔다는 사실뿐.
그리도 좋아하는 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지켜보던 엄마가 결국 한 마디 하셨다.
“아이구 저놈은 진짜 언제 철들꼬. 돈 없는 아버지가 사 왔으면 어떻게 사 왔는지 생각해 봐야 할 낀데... 쯧쯧”
엄마가 그렇게 혀를 찼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골덴 바지, 밤색 골덴 바지만 있으면 되었으니까.
(구글 이미지에서) 퍼옴
아버지 돌아가시고 첫제사 때 엄마와 막내누나가 그때 골덴 바지 얘기를 해주셨다. 어렵게 건진 아들(당시 내 위로 형 셋과 누나 둘이 하늘로 감)에게 골덴 바지 못 사주는 것도 미안한데 뺨까지 때렸으니.
그렇다고 살 돈을 마련할 길은 없고. 궁리하다가 아버지는 당시 물방개 장사 도구인 ‘양철구조물’을 다른 이에게 팔았던가 보다. 그 덕분(?)에 한 달 넘게 벌이를 하지 못하셨다 한다. (당시 생계는 누나가 책임지고, 아버지가 버는 돈은 당신 용돈으로 썼다고 함)
왜 나는 일찍 철들지 못했을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니 당시 누나나 엄마에게 물어봤더라면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랬더라면 아버지가 무서운 분만 아니라 정말로 아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분임을 진작 알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좀 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때 나는 철들지 못했을까, 아니 철들기를 거부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