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 아버지의 두 번째 직업 '물방개 장수'
* 아버지의 두 번째 직업 '물방개 장수' *
부산시 부산진구 초읍동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은 원래 성지곡수원지로 불리던 곳이다. 지금도 거기 터줏대감들은 어린이대공원으로 부르기보다는 성지곡수원지란 표현을 더 즐겨 쓴다. 그곳이 성지곡수원지로 있을 때는 외부인의 드나듦이 통제되었다. 6ㆍ25 참전 상이용사들이 철통같이 지키던 거기에 그래도 아이들은 몰래 들어갔다. 왜냐하면 먹을 게 참으로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감, 밤, 호두, 살구, 복숭아 등의 과일을 한 자루씩 따는 데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따다 걸리면 아이들은 된통 경을 치러야 했다. 큰 못을 가로지르는 다리 양쪽에 상이용사 아저씨들이 버티고 서 있는 사이로 절도범(?)이 된 아이들은 토끼뜀, 오리걸음, 원산폭격 등의 체벌을 받았다. 아무리 반지빠른 꼬마라 해도 아래위 깊은 못이 있어 달아날 곳이 전혀 없으니 그런 체벌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비공개적이었던 곳이 어린이대공원으로 문을 열기 몇 년 전부터 공개적인 쉼터로 바뀌면서 아버지의 직업도 비공개적에서 공개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아마 아버지는 당신의 직업이 공개되는 걸 꺼렸을 것 같다. 전의 ‘똥 퍼’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이기에는 좀 꺼려지는 일이었으니까. 허나 저절로 공개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성지곡수원지 정문 가까운 곳에다 ‘물방개 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물방개 장사라 하니 언뜻 물방개를 잡아다 파는 일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물방개를 이용한 장사를 했다. 이 정도 표현만으로도 지금 쉰이 넘는 이들이라면 퍼뜩 감이 잡히리라. 세숫대야 두 배 크기의 둥근 양철구조물 안에 칸칸이 쳐진 가로막이 있고, 손잡이 부분에 덧붙인 양철판 위에는 갖가지의 상품이 상품명과 함께 놓여 있고, 구조물의 한가운데에는 물방개를 떨어뜨릴 수 있도록 구멍이 만들어진 그것을.
아버지는 몇 년 간 쓰던 자전거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자 큰돈(?)을 들여 중고 짐차자전거를 사 왔다. 그리고 그날 처음 나는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타 동네를 한 바퀴 휘돌 수 있었다. 그때 얼마나 기뻤던지…. 전의 호차자전거가 정상적이라면 뒤에 탈 수 있었으나 거의 못 쓰게 된 자전거를 뜯어고친 거라 탈 자리가 없어 그리도 타고 싶었건만 탈 수 없었다. 아버지도 그런 나의 마음을 읽었으리라. 그러니 사 온 즉시 태워주었을 테고….
그러나 그날이 뒤에 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날 아버지가 들고 온 이상한 모양의 양철구조물과 포마드병에 든 물방개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냥 넘겨버렸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짐차자전거 뒤 짐칸은 바로 그 양철구조물이 차지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 일찍 성지곡수원지로 나갔다. 하루라도 빠지면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곳에 도착하면 전을 벌인다. 자전거 뒤에 실은 양철구조물을 내리고 호주머니에 든 포마드병을 꺼낸다.
거기에는 머릿기름 포마드 대신 물방개가 들어 있다. 그런 뒤 상품을 늘어놓는다. 대부분 어른들을 상대로 하지만 간혹 소풍날에 아이들이 올 때는 상품이 달라진다. 어른들을 위한 미끼상품을 다 기억할 수 없다. 그래도 담배랑, 박카스랑, 원기소랑, 껌은 기억 속에 또렷하다.
고객이 오면 아버지는 숟가락보다 조금 큰 국자를 들어 통에서 한가로이 놀고 있는 물방개를 떠 손님에게 건넨다. 그러면 그 손님은 가운데 구멍으로 물방개를 떨어뜨린다. 그 물방개가 헤엄쳐 가는 방향에 따라서 상품이 결정된다. 그때 무엇이 가장 인기 상품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으나 가끔씩 환호성이 터지는 걸 보면 꽤나 괜찮은 상품도 있었던 것 같고, 또 ‘꽝’도 있어 아쉬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물방개 장사가 잘 되었는지 못 되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으나 그리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나 그 전이나 그 후나 가난은 여전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 직업 역시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한동안 엄마와 누나가 어디로 가시냐고 물어도 대답 안 했으니.
그러나 거기는 워낙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라 금방 소문이 났다. 그때 우리와 한동네 살던 시집간 누나가 하루는 집에 놀러 와서 아버지에게 ‘남세스럽다’면서 ‘그런 일을 왜 하느냐’고 하자 굉장히 화를 냈던 게 기억난다. “니 두 동상 공부 니가 다 시킬래?” 하며 소리 높인 그 말에 누나는 머쓱해져 돌아갔고.
내가 아버지의 장사하는 모습을 본 것은 3학년 봄 소풍날이었다. 그 당시 성지곡수원지 안에는 소풍이 허용되지 않을 때라 바로 그 옆의 아리랑고개라는 곳으로 소풍 갔다. 그런데 거기를 가려면 반드시 그 앞을 지나쳐야 했다. 한 줄로 서서 걸어가는 귓속으로, “야, 저기 물방개가 봐라.” “히야, 억수로 재미있겠다.” 하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눈에 귀 쪽을 말아 올린 챙이 긴 군밤모자의 아저씨가 보였다.
처음에 아저씨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누군지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모르고 지나가는 게 나을 뻔했다. 하필이면 그때 고개를 드는 게 아닌가. 물방개보다 더 까만 아버지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고개를 홱 돌리고 말았다.
드물게 자상할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무섭고 엄격했던 아버지라 내게 항상 어려운 존재였다. 예순이 다 된 나이에도 동네에선 ‘호랑이 아저씨’로 통해 건달들이 얼씬거릴라치면 어느새 불호령을 내렸던 아버지였다. 미니스커트 입은 동네 누나들이 집 앞을 건너갈 때는 우리 집을 힐끔 한 번 쳐다보다가 내 눈과 마주치면 고갯짓으로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 뒤에 건너가곤 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하다니….
그렇게 아버지의 모습이 작아 보일 수 없었다. 자전거 뒤에 싣고 다니던 큼지막한 양철구조물조차 다 가리지 못했던 그 널찍한 등판이 얼마나 좁게 보이던지. 물방개를 국자로 떠 통 속으로 떨어뜨린 뒤 어디로 갈까 하는 기대감으로 반짝이던 손님들 눈 대신 비싼 상품이 걸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으로 가득했을 눈동자가 다시 제 크기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오그라들었을까? 또 간은? 그런 걸 생각하니 아버지의 그 순간은 거인 대신 작은 이의 모습이었다.
술래잡기, 수건 돌리기, 다방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보물찾기 등 재미있는 시간이 이어졌지만 나는 하나도 재미없었다. 그예 소풍을 끝내며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자, 이제는 집에 자유롭게 가거라.” 하는 말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
내려갈 길이 올라오는 길과 같아 어차피 다시 마주칠 수밖에 없고, 올라올 때와는 달리 아이들이 거길 들를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아버지를 아는 친구들이 있어 다음날 학교에 오르내릴 소문 ….
그곳을 지나치며 쏜살같이 내닫는 귀에 동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반의 바로 이웃집 동무였다. 누구보다 아버지를 잘 아는 애였다. 그 애가 부르는 소리를 듣는 순간 ‘왔구나.’ 싶었다. 모른 체 달렸다. 허나 아이들도 우르르 내려가고 있어 속도를 낼 수 없어 이내 걔가 옆에 와 섰다.
허지만 돌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서 있는데 동무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말투로, “같이 가자 해놓고, 와 니 혼차 토끼노!” 하기에 걔의 눈을 슬그머니 들여다보았다. 조금도 이상스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개 숙인 채 동무와 함께 걷는 중에도 아버지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아버지를 보았다면 그냥 있을 애가 아니었다. 나중에 동무로부터 들은 얘기는 걔가 내려올 때 물방개장수 아저씨가 없었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걔가 보지 못했다면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뜻이었으니.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의 자전거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분명히 성지곡수원지에서 봤던 그 자전거였다, 뒤에 물방개놀이터가 붙은. 한 번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돌아온 적이 없던 아버지의 자전거였다. 얼른 문을 열어보았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점심때도 안 돼 돌아와선 식사한 뒤 어디론가 나갔다고 한다. 저도 모르게 크게 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아버지의 직업이 친구들에게 들통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어린 나는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라고 여겼다. 그러니까 누군가와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돼 있어 일찍 돌아왔다는.
이제는 안다. 아버지는 소풍 오는 애들을 보았고, 그 애들이 내가 다니는 학교 같은 학년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리라는 것을. 그래서 재빨리 사업도구를 도로 자전거에 싣고 돌아왔으리라는 것을. 어린 아들의 가슴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 일찍 접었으리라는 것을.
가만 눈을 감는다. 아버지의 자전거가 떠오른다. 그 뒤에 실린 양철구조물과 포마드통에 든 물방개도 함께. 이제 도로 양철구조물은 아버지의 등판을 완전히 다 가리지 못한다. 언제나 내 마음속에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커다랗게 남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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