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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Oct 23. 2023

목우씨의 산골일기(147)

제147화 : 감나무 해거리를 하다


       * 감나무 해거리를 하다 *

  
  며칠 전 아는 이를 만나러 울산 시내 카페에 갔다. 카페에 잘 가지 않는데 거기서 만나자 하니 딱히 거절할 명분도, 다른 마땅한 장소도 없어 선택한 곳이다. 약속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는데 아는 이가 10분쯤 늦겠다 한다. 기다리는 걸 엄청 싫어하건만 내가 아쉬운 말 해야 할 처지라 어쩔 수 없었다.
  그 사이 뭘 해야 할지, 휴대폰 들여다보면 시간이야 잘 가지만 눈이 피로할 터. 그래서 잠시 눈을 감기로 했다. 아시다시피 눈 감으면 귀의 성능이 최고조에 이른다. 덕분(?)에 테이블 건너 건너에서 아지매 둘이 주고받는 얘기가 귀로 쏙쏙 들어온다. 

  학교친구라기보다 모임 동료 같은데 나이도 비슷하고 꽤 친한지 반말로 주고받으며 최근 자기들 살찐 몸에 관한 이야기다. 살 빼려고 애쓰나 도로 살이 찐다는 말에 이어, 입맛이 살아나 밥이 하도 맛있어 살쪘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갑 : 나 두 달 사이에 2kg 쪘어.
  을 : 2kg은 말도 하지 마, 난 3kg 쪘어.
  그러고 심각한 듯한 목소리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아주 잠깐 이내 깔깔이다.
  갑 : 살 빼려고 센터에 수영과 요가 신청했어.
  을 : 나도 작년부터 그 둘 다 하고 있는데 밥맛이 하도 좋아 그런지, 탄수화물 분해속도보다 찌는 속도가 더 빨라서 그런지 도통 빠질 기미를 안 보인다.

  대충 들으니 그렇고 그런 얘기라 귀를 막으려는데 ‘을’의 말 때문에 다시 주파수를 맞췄다.

  을 : 의사들 다 뭐하는지 몰라. 요새 챗GPT(Chat GPT) 같은 인공지능 이용하면 못할 게 없다는데...
  갑 : 무슨 말이니?
  을 : 아 그 왜 있잖아. 체중이나 허리둘레를 자동조절해 주는 AI가 있어 어느 정도 살찌게 되면 식욕 떨어지게 만드는 효소를 내뿜게 만든다든지...


(해거리 안 할 때 감 달린 모습)



  올해 감나무에 감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집 감나무만 그런가 했더니 마을 집집 감나무마다 헐빈하다. 우리 집 감나무야 100살 넘으니 늙어 그렇다 쳐도 해마다 주렁주렁 달리던 감골어른 댁 감나무도 상황이 같다니 분명 문제다.
  그 많던 감은 다 어디 갔을까. 해서 마을 어르신에게 물으니 다들 해거리 때문이란다. '해거리'는 나무가 앞선 해엔 열매를 많이 달았다가 다음 해가 되면 갑자기 열매 맺기를 포기해 열매가 적게 달리는 현상을 일컫는다.
  나무는 보통 한 해에 열매를 많이 달면 나무 안에 양분이 얼마 남지 않아 다음 해 열매 맺을 힘이 딸린다. 이러니 나무 스스로 한해 쉬면서 모든 에너지 활동의 속도를 늦추어 축적한 양분으로 다음 해에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것.


(해거리할 때 감 달린 모습)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나무가 제 힘으로 영양 상태를 살펴 열매 수를 조절한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동물에겐 개체 수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 한다. 즉 자기들 터전에 같은 종이 늘어나면 먹잇감이 부족할까 봐 개체수를 알아서 맞춘다나.
  호랑이 같은 맹수는 먹잇감이 열 마리 살기 적당하다면 교미하지 않아 새끼를 더 낳지 않거나, 새끼가 태어나도 튼실한 한 놈만 남기고 다 죽이고. 그러니까 자기들 먹잇감에 맞춰 생존에 버틸 환경을 자체 조절해 만든다는 얘기다. (동물이니까) 그게 가능하다 해도 식물도 그런다고?
 
  식물도 본능이 있는가. 헌데 본능을 사전에 찾아보면 학습이나 경험에 의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동물'의 행동 양식이나 능력으로 나온다. 즉 본능은 동물에게만 사용될 뿐 식물에게는 쓰지 않는 말이다. 그럼 식물의 이런 현상을 뭐라 할 것인가. 꼭 붙이자면 '생태(生態)'가 적합할 듯. 생태는 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나 상태라 했으니 식물도 포함되니까.




  감나무 해거리를 보니 문득 며칠 전 울산 시내 카페에서 들은 두 아지매의 얘기가 허투루 들어오지 않는다. 살이 전보다 많이 찐 사람이나 또 입맛이 유난히 좋아 먹고 싶은 게 많은 사람 둘이 한 집에 사니까.
  바야흐로 말만 살찌는 계절이 아닌 사람도 살찌는 계절이 왔다. 먹고 싶은 걸 먹지 마라 하면 분명 스트레스다. 스스로 먹을 걸 조절할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몸에 살이 붙는 속도가 봄날 비 내린 뒤 죽순 쑥쑥 올라오는 속도보다 빠르다.

  정말 카페의 두 아지매 얘기처럼 노벨의학상 받은 과학자가 챗GPT를 만들어 어느 정도 살쪘다 싶으면 입맛 없애도록 만들지 않는 한 살은 찔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건만 '배둘레햄 체형'의 인간은 얼마나 많이 태어나는지... 나도 그렇다. 말랐는데 배만 나온 ‘마른 배불뚝이’.
  마음의 양식으로 뇌가 영양가 있게 살쪘으면 좋으련만 엉뚱한 뱃살만 뒤룩뒤룩 찌니 참...

  *. 마지막 감나무 그림은 네이버 블로그 ‘happy memory’에서 퍼왔는데, 그림 속 장면이 해거리한 모습처럼 보여 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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