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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Oct 27. 2023

목우씨의 산골일기(148)

제148화 :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2023년 가을)


     *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
    - '23년 가을 달내마을에서 -


  가끔씩 들르던 이웃 밤나무골에서 날아온 ‘가을’이란 강아지 사망 소식이 나를 슬프게 한다. 낯선 이에게도 꼬리를 헬리콥터처럼 흔들대던 가을이, 목이 고장 났는지 컹컹 대신 거~엉 거~엉 짖던 가을이, 그런 강쥐라 더 나를 슬프게 한다.

  양산어른 댁 감나무에 높이 달린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 다섯 개, 까치 먹으라고 남겨둬 ‘까치밥’이라 이름 붙였는데, 그곳의 가지가 워낙 가늘어 까치 같은 덩치는 절대 앉지 못하고 박새나 곤줄박이 같은 작은 새만 겨우 앉을 수 있는데,
  우뚝 솟은 감나무 끝 가는 가지에 매달려 까치 먹기 전에 바람이 먼저 먹을 것 같은데, 먹으라는 까치는 딴 곳에 마실 갔는지 보이지 않고 참새만 들락날락하는 광경이 나를 슬프게 한다.


(연합뉴스 2019년 12월 8일)



  뒷산을 덮고 자꾸 또 덮더니 마침내 산국도 쑥부쟁이도 다른 들국화도 다 집어삼킨 칡, 도깨비비늘, 환삼덩굴이 나를 슬프게 한다. 칡에 목 졸려 팔 하나 제대로 벌리지 못하는 소나무가, 이곳저곳 번져가는 도깨비비늘 때문에 설 땅 잃은 들국화가, 환삼덩굴에 묻혀버린 길가 영산홍이 나를 슬프게 한다.

  전혀 늙은 할머니답지 않건만 단지 허리 굽어졌다 하여 얻은 할미꽃이란 이름, 그 이름이 나를 슬프게 하고, 그 꽃이 너무 이뻐 길 가다가 돌아와 살짝 손대게 만드는 서러움 가득 머금은 할미꽃이 나를 슬프게 한다.

  산길 오르는데 갑자기 뛰쳐나온 장끼와 까투리, 둘의 사랑을 방해하려 함이 아니건만 절로 훼방꾼이 될 때, 보는 족족 철거하는 거미집, 개미집, 벌집. 집 부술 바에야 차라리 죽여 달라는 외치는 거미, 개미, 벌이 나를 슬프게 한다.


(장끼와 까투리)



  산속 깊은 곳, 야생동물의 터전 찾아 세워진 고압선 철탑, 풍력발전기, 태양광 시설물이 나를 슬프게 한다. 고압선 전깃줄에 매달린 헬리콥터 위험 방지용 풍선에도 헬리콥터가 줄에 걸려 떨어졌다는 소식이 나를 슬프게 한다.
  풍력발전기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저주파 소음으로 두통, 수면장애, 우울증 같은 스트레스 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기사가, 고압선 설치공사로 숲을 훼손하고, 태양광 발전 설비 때문에 산사태가 났다는 뉴스가 나를 슬프게 한다.

  짜장면도 신문도 요구르트도 배달 안 되는, 택배 배달 오늘 온다 하고선 다음날 아니면 다음다음날 밤에 오는 산골마을이, 그 산골마을의 땅 주인 2/3가 도시 사람이며, 뭘 심어놓지도 않고 오 년씩 십 년씩 묵혀 놓은 논밭이 나를 슬프게 한다.
  
  가지 찢어질 듯 왕창 달리던 감이 쑥 사라지는 해거리가, 고추가 빠알갛게 익을 무렵이면 꼭 찾아드는 탄저병이, 무와 배추 모종이 채 활착 되기도 전에 어린잎 뜯어먹으며 고개 내미는 배추벌레가 나를 슬프게 한다.


  여름내 가느다란 바람에 ‘소살소살’ 거리며 소리 내던 대나무가, 가을이 깊어지며 부는 바람에 ‘서걱서걱’ 칼에 잘리는 듯한 소리가, 어제 단풍 들었는데 오늘 빛깔 바랜 잎이, 떨어진 그 잎이 하필 웅덩이에 처박혀 썩어가는 물이 나를 슬프게 한다.


  가을에 피어난 개나리와 진달래꽃, 피어선 안 될 봄에 솟아난 들국화, 겨울에도 빛깔 사라지지 않고 일 년 내내 빨간 홍단풍이 나를 슬프게 한다. 겨울 앞두고 싹 틔운 봉선화, 다가올 추위에 어쩌나 했는데, 세상에! 어제 꽃 피고 오늘 열매 맺는 모습이 나를 더 슬프게 한다.


(고추 탄저병과 배추벌레)



  달내마을 백년 된 토종오디보다 삼년 된 개량오디를 더 좋아하는 현실이, 샤인머스켓에 밀려 캠벨포도 잘라냈다는 전(前) 이장의 한숨이, 사료값은 폭등인데 고깃값은 폭락이라 차라리 죽여 달라 외치는 효재 사는 돼지아빠의 울음이 나를 슬프게 한다.

  영양분을 몸에 더 지니고 땅속에 들어가려다 차에 치인 뱀들의 사체가 나를 슬프게 하고, 독사를, 독거미를, 독지네를, 또 다른 독충을 사람들이 무서워하나 그들은 도리어 사람 무서워한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가을 들녘 가장 흔한 쑥부쟁이를 보고 아이가 꽃이름 뭐냐고 묻자 이름 모를 꽃이라 하는 부모가, 숲 속의 백설공주인 자작나무를 보고 이름 모를 나무라 표현한 글쟁이가 나를 슬프게 한다.

  낮에는 가음어른 댁을 개 대신 지켜 파수꾼 역할하던 수탉이, 새벽마다 크고 긴 울음 울던 그 수탉이 어느 날 사라지고, 덕산어른 댁 지나가면 길가에 눈 주며 살랑거리던 복실이도 땡볕에 햇살이 찐하게 쏟아지던 날 사라진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벼를 보고 쌀나무라 하고, 대나무를 보고 이름에 나무가 붙었다고 끝까지 풀이 아니라 나무라 우기고, 울타리 밖으로 살짝 삐져나온 남의 감을, 대추를, 살구를, 자두를, 앵두를 자기 것인 양 마음대로 따서 먹는 도시 나그네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산길 걷던 아가씨에게 꺾여 손에 들리면서도 활짝 웃는 들국화가 나를 슬프게 한다. 졸졸졸 들리던 개울물 소리가 쐑! 쐑! 쐑! 하며 들려올 때, 귓가를 간질이든 산들바람이 사람 몸을 넘어뜨리는 황소바람이 될 때 나는 또 슬퍼진다.




  시멘트 아니면 아스콘으로 바뀐 흙길이, 강철 기와로 바뀐 슬레이트 지붕이, 집 밖에 통시가 사라지고 집안으로 들어온 화장실이, 낫과 삽과 지게가 사라지고, 트랙터 콤바인 관리기가 득실대는 논과 밭이 나를 슬프게 한다.

  화분으로 옮겨진 하늘말나리, 숲 가장자리에 숨어 자라던 난초를 캐와 화분으로 옮겨놓고 낄낄 웃는 그 얼굴이, 산속에 근심 없이 자라던 나무 캐와 옆으로 아래로 위로 묶고, 사지를 비틂에 아파하는 소나무 분재가 나를 슬프게 한다.

  ‘사랑은 무례하게 쳐들어온다.’란 멋진 표현을 만들어놓았건만 무례하게 쳐들어 간 적도, 무례하게 쳐들어온 사람도 본 적 없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눈을 자꾸 쓰면 안 좋아 글 쓰는 걸 치워라건만 글 쓰지 않으면 치매 올까 염려된다는 핑계로 오늘도 글 써 올리는 나를, 시 골라 2시간 인터넷 대충 뒤적여 쓴 시 해설이 다섯 시간 이상 머리를 짜내고 이리저리 생각하며 쓴 생활글 (수필)보다 더 많은 클릭 수 나오는 현상이 나를 슬프게 한다.

  오오, 그래도 대충 슬쩍 긁적인 글을 정성 들여 읽어줄 글벗들 있음이 나를 무~척~이~나~ 기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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