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26.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

제1편 : 함민복 시인의 '어머니가 나를 깨어나게 한다'

@. 오늘은 함민복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어머니가 나를 깨어나게 한다

                                          함민복


  여보시오--- 누구시유---

  예, 저예요---

  누구시유, 누구시유---

  아들, 막내아들---

  잘 안 들려유--- 잘.

  저라구요, 민보기---

  예, 잘 안 들려유---

  몸은 괜찮으세요---

  당최 안 들려서---

  어머니---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두 내우 다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예, 죄송합니다. 안 들려서 털컥.


  어머니 저예요---

  전화 끊지 마세요---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두 내우 다 예, 저라니까요!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어머니. 예,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안어들머려니서 털컥.


  달포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네

  어머니가 자동응답기처럼 전화를 받았네

  전화를 받으시며

  쇠귀에 경을 읽어주시네

  내 슬픔이 맑게 깨어나네

  - [자본주의의 약속](1993초간 - 2006년 복간)


  <함께 나누기>


  제가 존경하는 분이 이런 말을 하셨지요. 만약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계시다면 짬짬이 빼먹지 않고 꼭 전화해야 한다고. 돌아가시고 나면 아버지 어머니는 늘 그리움의 대상이고 아쉬움의 대상일 뿐 목소리 한 번 들을 수 없다고.

  직접 아버지 어머니 목소리 듣는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고. 그분은 몇 년 전 부모님과 전화로 대화한 내용을 녹음했는데 한 번씩 듣는다고. 그래서 다른 곳 전화는 잊더라도 두 분께 드리는 전화는 절대 잊어선 안 된다고.


  시 내용은 쉬 이해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냥 읽고 느끼는 대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거창한 얘기가 아니고 어머니의 귀먹음을 슬퍼하는 내용도 아닙니다. 그저 가는귀 먼 어머니와 통화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아주 편하게 지었다고 봐야겠지요. 해서 이런 시는 누구나 지을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가는귀 먹은 어머니가 계신다면 전화하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은 경험이 있을 테고. 그걸 그대로 적으면 되니 말입니다.


  허나 이런 시를 지으려면 마음이 가난해야 합니다.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여유로워야 합니다. 따뜻해야 합니다. 조금 헐렁헐렁하고 말랑말랑해야 합니다. 깐깐하고 단단하게 사는 사람들은 같은 경험을 해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시가 얼핏 보면 특별할 게 없다 싶은데도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건,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와 유머가 잘 버무려 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연에서 ‘쇠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도 적절히 용되어 시의 완성도를 높이지요.


  이 시에서 우리는 ‘동문서답(東問西答)’이란 한자성어가 어쩜 이리도 딱 들어맞을까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청문회 열릴 때마다 나온 증인들이 보여주는 동문서답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요.

  말이 통하지 않으면서도 말이 통하는. 서로 말하는 내용은 어긋나나 은근히 정으로 나누는 대화. 그러기에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서 머릿속에는 아들과 어머니의 통화 장면을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 짓게 니다.


  #. 함민복 시인(1962년생)은 충북 중원군 출신으로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았습니다. 성적은 좋으나 돈이 없어 대학진학을 엄두 내지 못하고 수도공고로 진학했고, 졸업 후 취직한 월성원자력에선 건강 등으로 하여 적응 못해 그때 조금 번 돈으로 늦은 나이에 (당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합니다.


  1988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 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시인이었건만 오직 시만 쓰며 생활하다 보니 동반자는 ‘가난’(한 달 수입이 2~30만 원 안팎이었다니)이었다 합니다.

  워낙 가난하여 시집오려는 여자가 없어 홀로 살다가 2011년 나이 50세에 동갑인 여인을 만나 결혼. 느지막이 만난 부인과 강화도에서 인삼판매점을 경영하며 행복한 생활을 한다니 다행일 뿐.


  (혹 강화도에 여행 갈 일 있으면 강화읍 갑곳리 강화고려인삼영농조합 건물에 들러 “길상이네”를 찾아보세요. 아내가 경영하지만 운 좋으면 시인을 만날 수도 있답니다. 참고로 길상이는 아이 이름이 아니라 키우고 있는 개 이름입니다.)


  @. 오늘부터 시 한 편씩 배달합니다. 제가 시 배달 일을 아는 이들에게 이십 년 가까이해오고 있는데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서도 배달하고자 합니다.

  유ㆍ무명 시인의 시에다 제 맘대로 단 해설을 덧붙입니다. 그러니 자기에게 다가온 소리를 중시하시되 해설은 다만 참고로만 시길.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산골일기(15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