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27.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

제2편 : 박남준 시인의 '이름 부르는 일'

@. 오늘은 박남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이름 부르는 일

                                            박남준


  그 사람 얼굴을 떠올린다

  초저녁 분꽃 향내가 문을 열고 밀려온다

  그 사람 이름을 불러본다

  문밖은 이내 적막강산

  가만히 불러보는 이름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뜨겁고 아플 수가 있다니

  - [적막](2005년)



  <함께 나누기>


  시 감상에는 추리가 필요 없지마는 저처럼 어리석은 사람들은 가끔 그 점이 궁금해서 파헤쳐 보곤 하지요. 그럼 이름을 불러보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분꽃 향내”에서 일단 남자 아닌 여자가 분명합니다. 흔히 우리가 쓰는 ‘얼굴에 분칠한다’는 말 자체가 ‘화장’을 가리키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나를 그리움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반면 나만 그를 그리워하고 있는 상태로 보입니다. 즉 '짝사랑' 말입니다.


  그녀를 떠올리자마자 “초저녁 분꽃 향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듯이 바로 곁에 와 섭니다. 물론 진짜 온 건 아니겠지요. 다만 워낙 그리워하다 보니까 떠올리는 순간 바로 곁에 와 있을 뿐. 이번에는 이름을 불러봅니다. 그러나 대답은 없습니다. “문 밖은 이내 적막강산”처럼 말이지요.

  사랑은, 한 방향에서의 사랑은 그리움과 아픔을 동시에 줍니다. 그러니 이렇게 노래할 수밖에요. “이렇게 가슴이 뜨겁고 아플 수가 있다니” 그러함에도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름으로써 그리움이 배가 되니까 비록 더 큰 아픔이 따른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이제 추리를 끝냅시다. 단 굳이 그를 ‘짝사랑하는 여인’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겠지요. 또 여자라고 못박을 필요도 없습니다. 여자에게도 짝사랑하는 그가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문득 김춘수 님의 [꽃]이 생각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이하 생략)


  이 시를 얘기할 때마다 시론을 가르치던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슬며시 웃음이 나옵니다. “이 시는 연시(戀詩)가 아닌 의미시건만, 우리나라 연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름이 올라와 있는 이 비극을 ….” 하시면서 열 올리던 모습이 생각나서이지요. 나 평범한 우린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시라고 여기는 게 훨씬 한 걸 어떡합니까?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존재 의미를 갖습니다. 시인 박남준에게도 그렇지요.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기에 그는 존재 의미 이상의 깊은 그리움을 남깁니다. 가까이할 수 없는, 쉬 부를 수 없는 그의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 그는 무척이나 의미 있는 존재가 되니까요.


  오늘 한 번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세요. 감춰두고 있던 그 이름을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할 때처럼 땅을 깊이 파고, 그 사람 이름을 불러보세요. 마침 텃밭 갈무리하려는 오늘, 이왕 이 시 읽은 김에 저도 빈 땅에 삽질하렵니다.


  #. 박남준 시인(1957년생)은 전남 영광 출신으로 1984년 [시인] 지를 통해 등단했습니다. 1991년 직장을 버리고 전주 모악산에 전업시인으로 살아가겠다고 들어갔습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했지만, 텃밭을 일구며 시를 쓰고, 한 달에 단 두 편의 원고를 써서 받는 30만 원 정도로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나마도 생활비 15만 원을 빼고 남은 돈은 모두 기부했다고 했으니….


  2003년 12년 동안 살아온 모악산방을 떠나, 경남 하동의 악양면 동매리로 거처를 옮겨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동매리는 지리산 자락의 외진 마을입니다.

   이 시인은 소설가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에서 ‘버들치 시인’이란 별명으로 나옵니다.


  저보다 두 살 어린데도 마음은 십대 소년처럼 참으로 순박합니다. 저는 이 시인을 두 번 만났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이 시인에 관한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박남준에 대하여 대충 알던 한 처녀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을 따라 문학기행을 갔는데, 처음 본 그의 인품에 반해 결혼하겠다고 무려 1주일을 가지 않고 그의 집에 머물자 그는 달아났다가 그 처녀선생님이 포기하고 돌아간 뒤에 돌아왔다는 얘기를. 제가 처녀였더라도 반했을 정도로 참 좋은, 멋진 시인입니다.


  #. 어제부터 시 한 편씩 배달하고 있습니다. 제가 시 배달 일을 아는 이들에게 이십 년 가까이해오고 있는데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서도 배달하고자 합니다.
  유ㆍ무명 시인의 시에다 제 맘대로 단 해설을 덧붙입니다. 그러니 자기에게 다가온 소리를 중시하시되 해설은 다만 참고로만 하시길.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