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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28.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

제3편 : 고정희 시인의 '고백'

@. 오늘은 고정희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고백
               고정희

   너에게로 가는
   그리움의 전깃줄에
   나는
   감
   전
   되
   었
   다

  #. 고정희 시인(1948~1991년) : 전남 해남 출신으로 1975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는데, 1991년 지리산 취재여행 등반 도중 실족 사고로 작고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이며, 여성해방공동체를 구상하는 등 대표적인 여성운동가.



  <함께 나누기>

  오늘은 현재 시를 쓰고 있는 여류시인 가운데 제 기억 속에 담겨 있는 시인을 죽 나열해 봅니다. 천양희, 나희덕, 황인숙, 최영미, 정끝별, 최승자, 문정희, 김승희, 신현림, 박규리...

  만약 돌아가신 분까지 넣는다면 (제 기억의 서랍) 맨 앞자리에 둘 시인이 바로 고정희 시인입니다. 다음은 시인이 펴낸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에 여백을 남긴다]라는 시집 서문에 적혀 있는 글입니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한 시대의 싸움꾼뿐만 아니라, 구도자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처럼 사는 거다"
  시처럼 살았던 시인, 그래서 시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그녀가 43세의 나이로 1991년 지리산 취재여행 등반 도중 실족 사고로 작고했을 때 매우 슬퍼했지요.

  시로 들어갑니다.

  이 시를 읽고 혹 ‘찌리릿!’ 하고 감전되지 않으셨는지요? 한 번이라도 ‘팍’ 하고 전등불이 켜지는 듯한 사랑을 경험한 이라면 이 시가 퍼뜩 들어올 겁니다.

  “그리움의 전깃줄”

  어찌 보면 평범한 표현입니다. 볼 수도 없고, 크기도 잴 수 없는 ‘그리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 중에 전깃줄만큼 긴 게 또 있을까요?

  두 전깃줄은 끊임없이 이어져 ‘그(혹은 그녀)’가 사는 곳까지 나아갑니다. 한없이 이어지는 줄, 한 번도 끊김 없는 줄, 그리움은 그렇게 알게 모르게 전해집니다.

   감
   전
   되
   었
   다

  앞에 그리움을 전깃줄로 비유했으니 따라올 수 있는 흔한(?) 표현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저는 이 시가 특출함은 바로 이 다섯 음절을 가로가 아닌 세로로 일직선 세움에 있다고 봅니다.
  한 번 눈에 힘을 팍 주고 다섯 글자 한 단어를 다섯 행으로 늘어놓은 장면을 그려봅시다. 마치 전깃줄 늘어진 전봇대가 서 있는 듯한 사진을 본 듯하지 않은가요? (붙임 사진 참조)




  이런 시각적 표현을 통해 마치 베틀에서 베를 짤 때처럼 앞에선 그리움의 ‘씨줄’을 가로로 드리웁니다. 그런 뒤 그 ‘날줄’을 세로로 교차시키면서 완성시켜 가는 것이지요. 그리움의 완성은 씨줄과 날줄의 합성으로.
  아 참, 한 가지 빠뜨릴 뻔했군요. 이 시를 읽을 때 이 부분에서 주의할 게 있습니다. 반드시 한 자 한 자 끊어 읽도록. 그러니까 ‘감전되었다’ 하고 한 호흡으로 읽지 말고, ‘감 ∨ 전 ∨ 되 ∨ 었 ∨ 다’로 읽으시도록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표현을 통해 글감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시는 박남수 시인의 「종달새」란 시가 효시입니다. 마치 새가 나는 모습을 눈으로 보는 것과 같지 않은가요.

         종달새
                             박남수

  하늘의 병풍 뒤에
  뻗을 가지, 가지 끝에서
         포롱
     포롱
  포롱
  튀는
  천상의 악기들.

  보리밭에 서렸던
  아지랑이의 영신(靈身)들이, 지금은
  하늘에서
  얼굴만 내어밀고,

  군종(群鐘)이 울리어 음악의 잔치가 되어
  고운 갈매의 하늘을
        포롱
     포롱
  포롱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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