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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29.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

제4편 : 안도현 시인의 '우리가 눈발이라면'

@. 오늘은 안도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

  - [그대에게 가고 싶다](2002년)


  #. 안도현 시인(1961년생) : 경북 예천 출신으로 1981년 [대구매일]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40년 넘게 전북 전주 부근에서 살다가 작년 2월 고향인 경북 예천 학가산 아래로 옮겼으며, 현재 단국대 문창과 교수



  <함께 나누기>


  2008년 ‘한국 현대시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 대표 시인 10명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김소월, 윤동주, 한용운, 백석, 서정주, 김수영, 김춘수, 이상, 정지용, 박목월...’ 비록 지금은 시와 인연을 끊고 살아도 다 한 번씩 들어본 적 있는 시인일 겁니다.


  다음은 현재 계속 시를 쓰는 이름이 알려진 남자 시인들을 죽 나열해 봅니다. (여자 시인은 다음에 언급함) ‘안도현, 정호승, 김용택, 황지우, 정일근, 류시화, 도종환, 신경림, 곽재구, 함민복...’ 다들 좋은 시를 쓰는 훌륭한 시인입니다.


  이 가운데 안도현 시인은 '남들의 시선이 잘 가지 않는 낮고 어둡고 구석진 곳의 삶을 어루만지는데 있어선 누구도 쓴 적 없는 창조적인 비유를 사용하는 독보적인 시인이다'는 평을 듣습니다.


  날이 추워지면서 눈발 날리는 날이 많아질 때입니다. 이곳 달내마을도 며칠 전에 첫눈이 내렸는데 둘째 눈도 곧 오겠지요.

  기온이 떨어지고 눈이 오면 걱정도 함께 옵니다. 미끄러워 찻길이 얼어붙을 테니까요. 그래도 눈이 내릴 때 그냥 ‘눈이 오네.’ 하는 말 대신 그 눈의 이름을 불러주면 어떨까요?


  눈은 크게 ‘함박눈, 싸락눈, 가루눈, 날린눈, 진눈깨비’로 나뉩니다. 다들 한 번쯤 들어본 말이라 대충 짐작할 겁니다. 그리고 눈이 순우리말이라 선조들은 이쁜 이름을 더 만들어냈습니다. ‘가랑눈 포슬눈 자국눈 송이눈 길눈 잣눈 소나기눈 마른눈 도둑눈 풋눈...’


  시로 들어갑니다.


  이 시에서 핵심은 '진눈깨비'와 '함박눈'입니다.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시는 이 둘을 대조하면서 전개됩니다. 한눈에 함박눈과 진눈깨비의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한쪽은 따뜻하고 보듬어주는 눈인데 비하여, 다른 쪽은 차갑고 상처 주는 눈으로.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바람 불고 춥고 어두”운 삶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웃이 참 많습니다.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가난하고 아프고 괴롭습니다. 길 가는데 추적추적 내려 걷기 힘들게 만드는 진눈깨비처럼.


  그 아픔으로 하여 ‘깊고 붉은 상처’가 생겼으리라 짐작하는데, 그 상처를 치료해서 새살을 돋게 해주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함께 아파하며 위로해 주며 그들을 따뜻하게 만드는 그런 존재. 마치 오들오들 떠는 푸성귀에 내리는 함박눈처럼.


  ‘함박눈이 내리면 따뜻해지고 가루눈이 내리면 추워진다’는 속담은 과학적 근거가 있답니다. 추운 지역에선 얼음알갱이가 그대로 떨어지기에 달라붙지 않고 독립되어 떨어져 가루눈이 되는데, 거기보다 기온이 높은 지역에서는 ‘접착제’ 역할을 해줄 물방울 비율이 높아 눈결정체들이 뭉쳐져 함박눈이 된다니까요.


  “사람이 사는 마을 / 가장 낮은 곳으로”


  시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번쩍이거나 화려한 곳이 아닌 가장 소외돼 있는 낮은 곳입니다. 함박눈 같은 따뜻함을 지닌 사람의 눈에만 띄는 곳입니다. 그곳은 두터운 옷으로 무장한 사람이 아니라 감성의 온도로 몸을 데운 사람이 찾는 곳입니다.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 편지가 되고 /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 새살이 되자”


  외로움으로 잠 못 드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마음을 담은 편지가 필요하고, 아픔과 괴로움으로 신음하는 사람에게는 상처를 치료할 약이 필요합니다. 사회의 어둡고 후미진 곳에서 힘들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려고 시인은 간절하고 따스한 목소리로 호소합니다.


  시에서 1연과 2연의 끝을 ‘내리자’ ‘되자’로 끝맺는데, 여기서 ‘~자’는 흔히 말하는 청유형 어미입니다. 이 청유형은 시인의 다짐이며 의지이면서 한편으론 읽는 이들에게 함께 행동하자고 권유하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 이 시는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는데 그때 ‘모방 시 쓰기’를 과제로 내줄 때 활용한 모방 시를 보냅니다.


  - 우리가 돈다발이라면 -


  우리가 돈다발이라면

  어둠에서 쭈뼛쭈뼛 흔들리는

  검은 뇌물은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후원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돈다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추운 방안에는

  연탄이 되고

  그이의 오래된 배고픔을 달래주는

  따끈따끈한 밥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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