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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30.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5)

제5편 : 황지우 시인의 '尋人(심인)'

@. 오늘은 황지우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尋人(심인)

                                 황지우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

  소식 두절 11월 3일 입대 영장 나왔음

  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

  829-1551

  '이광필' 광필아 모든 것을 묻지 않겠다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조순혜' 21세 아버지가

  기다리니 집으로 속히 돌아와라

  내가 잘못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년)


  *. 尋人(심인) : (집 나간) 사람을 찾음


  #. 황지우 시인(1952년생) : 전남 해남 출신으로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하여 등단.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기법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여 1980년대 한국 시의 전성기를 이끈 시인이라 평가받음.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및 총장을 역임 후 2018년 퇴직


  <함께 나누기>


  제가 황지우 시인을 좋아함은 ‘선 굵은 시’를 쓰기 때문입니다. 예전 ‘생명파’인 서정주 유치환 두 시인이 비교하여, 대체로 서정주로 추가 기울 때도 저는 유치환 시인의 시가 더 좋았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선 굵음’

  (그 뒤 서정주는 친일문학을 했다는 증거가 여럿 나와, 아예 제 목록에선 지워진 시인이 되었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참고로 위 시는 대입 수능에 나온 시랍니다. 대입 수능에 나왔다는 말은 당대 주목받는 시라는 뜻도 담깁니다. 그런데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단순히 실종자를 늘어놓은 광고 문구 같은데 훌륭한 시라 함에 고개를 갸우뚱하실 분 계실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별 내용 담은 것 같지 않은데...' 하다가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 하는 첫 시행을 보는 순간 이마를 쳤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눈치채셨을 겁니다. 1980년 5월, 우리 민족사 비극의 한 페이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그런데 시를 끝까지 다 읽어도 그 일과 관련된 구절 하나 들어있지 않습니다. 암시도 없습니다. 가출 사유를 봐도 무단가출이거나, 자신이 잘못 저지르고 혼이 날 것 같아 나갔거나, 아버지가 심한 말을 해 집을 나간 것 같으니까요.

  아시는지요, 이게 읽는 이를 더 아프게 합니다. 차라리 계엄군의 개머리판에 맞아 쓰러졌다든지, 능욕당했다든지 했으면 바로 실감 나는데.. 이에 6ㆍ25의 비극을 노래한 무명시인의 시행 한 구절이 떠올라 붙여봅니다.


  "꽃은 웃고 있었다. / 유월의 뙤약볕 아래 꽃은 / 바알갛게 웃고 있었다."


  포탄이 쏟아지고 총알이 날아가는 데마다 붉은 피를 흘리며 사람들은 쓰러지는데 담담하게, 아주 담담하게 꽃은 웃고 있습니다. 비극의 극대화로 더없는 표현입니다


  황지우 시인의 시에서 화자는 아주 담담합니다, 위 시와 마찬가지로. 화자는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사연을 남의 일 보듯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더 잘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방관자의 눈이 주는 전혀 '상관없음'의 '상관있음'.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은 산불처럼 빠알갛게 타들어가지만 다른 사람에겐 남의 일입니다. 그저 신문 광고란을 대충 보며 혀를 찰 정도이니까요. 저도 그랬습니다. 제 일이 아닐 땐. 혀를 찰 정도에 그쳤으니까요.


  몇몇을 제외하곤 사람들에게 이젠 '세월호 사건'은 잊힌 일입니다. 그런데 내 아들 딸이, 또는 조카가 그때 일로 하늘로 갔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태원 참사' 역시 그렇습니다. 내 가족 가운데 한 명이 당한 사건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래도 방관자로 그냥 보고만 있을까요?

  가끔 우리는 내 일이 아니라면 슬프지 않습니다. 1980년 5월에 대한 제 기억도 그렇습니다. 그날 수업 마치고 동료교사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중, ‘광주에 폭도들 난동으로 비상계엄 확대’란 뉴스를 보고 나눈 얘기들입니다.


  “하, 절마들 또 저 짓하네!”

  “데모, 데모! 백 년 해 바라, 절마들 안 물러선다.”

  “진짜 학생들은 별로 없고 간첩이 들어가 이간질한 거라나.”

  “나라 꼬라지 잘 돌아간다. 외국에선 다들 대한민국을 데모공화국이라 안 카겠나.”


  그런데 그 뒤 실상을 알게 된 날 먹은 걸 다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죄책감, 부끄러움은 말할 것도 없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 없는 실종자 둔 가족이 아니라면, 1980년 5월 광주에 살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때의 우리와 비슷한 생각과 말을 했을 겁니다.


  마지막 시행을 봅시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 똥을 눈다”


  그러니까 화자는 똥을 누며 신문을 봅니다. 다른 뉴스를 보다가 다 읽은 뒤 화자의 눈에 실종자 광고가 들어옵니다. 남의 절박한 일을 강 건너 불 보듯 합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더 큽니다. 자 이제 실종 광고로 돌아가 볼까요?


  ‘80년 5월 이후 무단가출했다는 김종수.’

  ‘무슨 일인가 저질러 가출한 이광필.’

  ‘아버지가 나무라자 집 나간 조순혜.’


  하나하나 솜솜히 뜯어보면 사연들이 가리키는 바는 각각 다 다르지만 지향점은 다 같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모두들 광주민주화운동 때 실종됐는데 당시엔 그 사연을 적지 못해 이렇게 적을 수밖에요. 그러니까 다르지만 같은 사연이며 더 슬프고 아픕니다.

  아무렇지 않게 신문광고 '심인 란' 한 귀퉁이를 죽 찢어 그대로 붙여놓은 듯한 시, 그래서 시가 처음 나왔을 때, '이것도 시냐?' 하는 말이 나왔습니다만 그 뒤, '이런 게 시지!' 하는 평을 받은 시.  


  시인의 시 가운데 광주민주화운동 글감의 시를 한 편 더 배달합니다.


       동사(動詞)

                             황지우


  한다. 시작한다. 움직이기 시작한다. 온다. 온다. 온다. 온다. 소리난다. 울린다. 엎드린다. 연락한다. 포위한다. 좁힌다. 맞힌다. 맞는다. 맞힌다. 흘린다. 흐른다. 뚫린다. 넘어진다. 부러진다. 날아간다. 거꾸러진다. 패인다. 이그러진다. 떨려나간다. 뻗는다. 벌린다. 나가떨어진다. 떤다. 찢어진다. 갈라진다. 뽀개진다. 잘린다. 튄다. 튀어나가 붙는다. 금간다. 벌어진다. 깨진다. 부서진다. 무너진다. 붙든다. 깔린다. 긴다. 기어나간다. 붙들린다. 손올린다. 묶인다. 간다. 끌려간다. 아, 이제 다 가는구나. 어느 황토 구덕에 잠들까. 눈감는다. 눈뜬다. 살아 있다. 있다. 있다. 있다. 살아 있다. 산다

  - [나는 너다](1987년)


  *. 이 시엔 해설을 붙이지 않습니다. 아니 붙이지 않아야 시가 살아납니다.


- [경향신문] '사진 자료첩'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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