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01. 2023

목우씨의 산골일기(153)

제153화 : '쌈박질' 대신 '벼름질'을 해야 할 때


   * '쌈박질' 대신 ‘벼름질’을 해야 할 때 *


  요즘 우리 집 감나무를 올려다보면 헐빈하다. 너무 텅 비어 쓸쓸하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한 달 전쯤(10월 20일)에 「감나무 해거리를 하다」란 글을 올려 우리 집 감이 해거리에 들어가 얼마 달리지 않았다는 내용을 쓴 적 있다.
  우리 집 감나무는 모두 세 그루다.
  첫째인 100년 된 감나무는 감꽃만 열릴 뿐 감을 달지 못한다. 처음 달내마을 들어왔을 때만 해도 5천 개 가까이 달다 해마다 줄어들더니 재작년부터 단 한 개도 맛을 못 본다. 참 달달한 홍시와 곶감을 무시로 제공하였건만 뿌리가 썩어 태풍 불 때마다 넘어질까 아슬아슬해 이내 곧 잘라내야 할 처지다.

  둘째 녀석의 나이도 만만치 않다. 적어도 오십 년은 넘었을 거라 짐작하는데, 이 녀석도 창고 바로 옆에 자라 태풍에 넘어지면 건물 부술까 봐 해마다 잘라낸다. 그래선가 감이 달리긴 해도 열댓 개쯤 될까.
  막내 감나무는 언덕 쪽에 자리해 있다. 이 녀석도 제법 나이 먹었다. 원 주인께서 삼십 년은 될 거라 했으니.  우리 집 감나무 세 그루 가운데 감이 가장 많이 열리나 언덕 위에다 워낙 높이 솟아 쓰러질까 봐 해마다 잘라내다 보니 그리 많이 달리진 않는다.





  보름 전 막내 감나무에서 떨어지기 직전의 빨갛게 잘 익은 감 하나 땄다. 보기에 먹음직스러워 입에 넣었는데 그리 달지 않았다. 이맘때 홍시라면 무조건 달아야 한다. 아니 꿀보다 더 달아야 한다. 그럼에도 별로 달지 않아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한 마디 한다.
  “얼지 않았잖아요.”
  맞다. 홍시 딴 날로 기준했을 때 딱 한 번 영하로 내려갔을 뿐 얼지 않았다. 시골에 (토종) 감나무 있는 집은 알겠지만 감은 홍시 되기 전에 적어도 세 번은 얼었다 녹았다 해야 단맛이 듬뿍 드는데.


  요즘 우리 집 밥상 위에 빠지지 않는 반찬이 배추쌈이다. 살짝 데쳐 먹어도 좋지만 생배추 그대로 싸먹어도 맛있다. 아니 맛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참으로 달다. 배추가 달다니? 하고 반문할 이가 있을지 모르나 잘 익은 배추는 진짜 단맛이 난다.
  특히 우리 텃밭 배추는 김장용으로 심지 않고 원래 쌈배추가 목적인지라 겨우내 그대로 놔두며 한 포기씩 빼먹는다. 열흘 전부터 몰려온 추위가 배추의 단맛을 더 나게 해선지 유난히 배추쌈이 맛있다. 달큰하다는 말 그대로다.

        



  배추도 감처럼 얼었다 녹았다 해야 단맛이 듬뿍 든다. 단맛이 나니까 쌈 싸먹는 일이 신나고 괜히 즐겁다. 배추 위에 따뜻한 밥 한 숟가락과 잘 삭은 멸치젓갈을 얹어 입을 찢어지게 벌려 싸먹으면 그 맛이 고급 레스토랑 음식 맛에 뒤지지 않는다.
  배추쌈 말고 또 하나의 반찬이 무생채다. 무생채와 빡빡장 끓여 비벼먹으면 그 맛도 무지하게 좋다. 다만 무는 배추와 달리 얼면 안 된다. 무가 얼면 바람 든다고 하는데 바람 든 무는 맛은 물론이요 워낙 퍽퍽해서 먹기 께름칙하다.

  그러니까 남새 가운데는 얼었다 녹았다 해야 되는 채소가 있고 얼어선 안 되는 채소도 있다.  과일도 마찬가지다. 어는 과정을 거쳐야 맛나는 게 있는 반면 얼면 못 먹는 과일이 더 많다.


(눈 속 산수유, 약효가 더 있다 함 - 이호균의 '풀 꽃 나무 이야기'에서)



  처가인 언양 가면 가끔 대장간에 들러 쇠 담금질 하는 과정을 엿본다. 대장장이는 쇠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고온의 용광로에 집어넣었다가 꺼내 갑자기 물이나 기름에 급격하게 냉각시키는 ‘담금질’을 계속한다. 이때 담금질로 끝나선 안 된다.

  담금질 하고 나면 온도 차이 때문에 쇠는 일그러지게 되는데 다시 골고루 펴주는 ‘벼름질’을 해야 한다. ‘벼름질’을 통해 쇠는 도구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으니 단단하고 쓸모 있는 도구가 되려면 담금질과 벼름질 두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


  그럼 벼름질을 거치지 않는다면?
  명태가 덕장에서 수십 번 얼고 녹는 과정을 반복해 노랗게 맛깔스런 황태가 되는데 이때도 벼름질이 필요하다. 눈이 와야 어는 과정이 순조로운데 비가 오면 말짱 도루묵이다. 감도 배추도 얼었다 녹았다 하는 과정이 적당히 반복돼야 하는데 추위만 계속되거나 따뜻한 날이 계속되면 끝이다.


(대장간 화로)



  우리 사람은 어떨까? 순탄하게 자란 사람보다 얼며 녹으며 하는 과정을 보낸 사람이 더 위기에 잘 적응한다고 말한다. 함에도 단순히 어는 과정만 거친 사람보다는 어는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삶에 실천해야, 즉 벼름질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코로나 팬데믹’ 뒤로 계속 우리는 담금질을 실컷 하며 살고 있다. 허나 벼름질은? 의문이다. 요즘 나라꼴을 보면 교훈을 얻은 것 같지 않다. 실컷 담글질만 하고 쌈박질로 치달으니 될 대로 되겠지 하며 내버려두는 꼴이다.

  이제 올해 달력도 오늘 지나면 달랑 한 장만 남는다. 또 담금질이 필요할 만큼 시련이 더 필요할까. 지금은 정말 치고받는 쌈박질 대신 똘똘 뭉쳐 힘을 합해 어려움 타개할 벼름질의 묘수가 더 필요한 때다.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