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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02.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6)

제6편 : 천양희 시인의 '上一세탁소'

@. 오늘은 천양희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上一 세탁소

                             천양희


  세탁소 아저씨가

  아침마다

  세탁, 세탁 외친다

  세상이 탁하다고

  외치는 것 같다


  세탁(世濁)!

  그 소리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탁한 것은

  다 세탁해야 한다고

  세탁한 것들 탁탁 털어

  저 청청한

  햇빛에 말린다면


  누가

  상일(上一) 세탁소보다

  더 잘 세탁할 수 있을까


  세상 속에서 탁해진

  사람의 옷을 세탁하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上一 세탁소



  <함께 나누기>


  서울시 성동구에 상일동이란 동네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세탁소뿐만 아니라 이발소, 미장원, 떡집, 중국집 등등이 있겠지요. 그리고 상호 중에 상일이발소, 상일미장원, 상일떡집, 상일반점 등 ‘상일’이란 이름을 넣은 가게도 있겠지요.

  그럼 상일세탁소도 하나쯤 있을 겁니다. 그걸 글감으로 삼아 시 한 편 뚝딱 만들어냈군요.


  “세탁, 세탁 외친다 / 세상이 탁하다고”

  제가 울산 동구 ○○아파트에 살 때 아파트 바로 아래 □□세탁소 아저씨도 ‘세탁’ ‘세탁’하며 외치고 다녔지만 저는 별 의미를 잡지 못했는데, 시인은 ‘탁한 것을 깨끗이 씻는다’는 뜻의 ‘洗濯(세탁)’을 ‘세상이 탁하다’는 뜻의 ‘世濯(세탁)’으로 잡아냈네요.


  “탁한 것은 / 다 세탁해야 한다고”

  그래요 탁한 것은 깨끗이 만들어야 하지요. 탁한 물, 탁한 공기는 다 그렇게 해야 하지요. 그런데 탁한 내 마음은 어떡하지요. 세탁이 잘 안 되는 탁한 내 마음은. 그리고 꼭 세탁시키고 싶은 인간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모두를 세탁기에 집어넣어 하이타이를 듬뿍 풀어 돌리고 나면 좀 깨끗해질까요?


  “세상 속에서 탁해진 / 사람의 옷을 세탁하는”

  시인은 탁해진 옷을 세탁한다고 하지만 우린 알지요. 탁한 우리 마음을 세탁한다는 뜻으로. 정말 우린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정의’란 말에 너무 무관심했습니다. 적어도 옳고 그름의 의미를 알도록 우리를 세탁하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 上一 세탁소”

  마지막에 와서 상일동의 ‘上一’이란 의미를 세상에서 으뜸가는 뜻으로 변화시킵니다.  현재 시인이 머무는 상일동은 세상에서 으뜸가는 동네가 맞지요. 제게 달내마을이 으뜸가는 마을이듯이 말입니다.


  #. 천양희 시인(1942년생)은 부산 출신으로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던 해인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습니다. 그리고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은 물론 제10회 <소월시문학상>도 받았습니다.

  이로 보면 시인으로서 꽤나 행복한 삶을 산 것처럼 보입니다만 실제 생활은 아주 불행한 삶이었다고 합니다.


  시인은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직후 정현종 시인과 결혼해서 아들을 두었으나 결혼 4년 만인 서른두 살 때 이혼한 후 줄곧 혼자라 합니다. 시인은 긴 세월 동안 아들도 만나지 못한 채 살아왔는데 남편과 헤어진 후 아들의 얼굴을 본 것은 두어 번뿐이랍니다.

  평생을 시와 함께 한 그녀의 시에 외로움과 고독에 사무친 내용이 많은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서울 변두리인 상계동의 작은 아파트에서 30년 넘게 혼자 살고 있다고 하는데, 이제 팔순 지난 시인이 더 이상 외롭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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