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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03.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7)

제7편 : 오탁번 시인의 '밥냄새 1'

@. 오늘은 오탁번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밥냄새 1

                                       오탁번


  하루 걸러 어머니는 나를 업고

  이웃 *진외가 집으로 갔다

  지나가다 그냥 들른 것처럼

  어머니는 금세 도로 나오려고 했다

  대문을 들어설 때부터 풍겨오는

  맛있는 밥냄새를 맡고

  내가 어머니의 등에서 울어 보채면

  장지문을 열고 진외당숙모가 말했다

  - *언놈이 밥 먹이고 가요

  그제야 나는 울음을 뚝 그쳤다

  *밥소라에서 퍼주는 따끈따끈한 밥을

  내가 하동지동 먹는 걸 보고

  진외당숙모가 나에게 말했다

  - 밥 때 되면 만날 온나


  아, 나는 이날 이때까지

  이렇게 고운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태어나서 젖을 못 먹고

  밥조차 굶주리는 나의 유년은

  진외가 집에서 풍겨오는 밥냄새를 맡으며

  겨우 숨을 이어갔다


  * 진외가 : 아버지의 외가

  * 언놈 : 손아래 사내아이를 귀엽게 부르는 말

  * 밥소라 : 큰 놋그릇



  <함께 나누기>


  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울엄마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좀 이기적이지만 울엄마는 살아계실 때 '보살'이란 소릴 들을 정도로 마음씨 좋은 분이셨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 집도 못 살았지만 더 못 사는 집이 꽤 되었나 봅니다. 저녁식사 무렵 젖먹이를 업고 날마다 우리 집을 들르던 과수댁은 제게 미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희한하게도 알람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 그 아주머니는 아주 정확하게 저녁밥때가 되면 꼭 나타났습니다. 어디 숨어 있다 보았듯이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울엄마는 이렇게 물었지요. "저녁 안 묵었제? 같이 묵자." 그러면 그 아주머니의 대답도 한결같았습니다. "묵고 왔는데예 ..." 다음 이어지는 울엄마의 말도 녹음기를 튼 양 똑같았습니다. "그라도 같이 묵자."

  그럴 때 제가 끼어듭니다. "아 엄마! 묵었다고 했잖아!" 그러나 아주머니는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니 다음 말로 이었습니다. "묵었는데예 ..." 하며 울엄마 옆자리로 파고들었습니다.  


  그때쯤이면 저는 오만상을 다 찌푸린 상태였습니다. 다음에 진행될 일이 생각나서죠. 울엄마가 당신 밥그릇의 밥을 밑바닥이 보일 정도로 퍼내주면 할 수 없이 제가 울엄마 밥그릇에 몇 숟가락 옮겨줍니다. 그 아주머니는 미워했지만 울엄마를 미워할 순 없잖아요. 그러면 제 동생 역시 오만상을 찌푸린 채 밥을 덜어놓아야 했습니다.  


  과수댁이 삼 년쯤 우리 집에 드나들다 떠나자 다음으로 손주 둘을 데리고 할머니가 왔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제가 대학 다닐 때 울엄마로부터 과수댁의 사연을 들었습니다. 남편 죽고 벌이라고는 일절 없던 그 아주머니에게 우리 집 밥이 하루의 총량이었다는 것. 만약 우리 집에서조차 먹지 못했으면 아주머니는 물론 아기도 굶었으리라는 것.


  지금 그 아주머니를 뵙고 싶습니다. 그때의 보상을 바라서가 아니라 그분에게 사죄를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철부지 꼬맹이가 못마땅하게 노려보는 눈길 속에서 자존심 다 버리고 자식 때문에 밥 한 술 넘길 때의 그 심정... 정말 너무 죄송합니다. 사죄의 밥 한 그릇 대접하고 싶습니다.  



  *. 오탁번 시인(1943년생)은 충북 제천 출신으로, 고려대 영문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였습니다.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하였습니다.

  그동안 [처형의 땅]이란 소설집과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 [생각나지 않는 꿈], [겨울강] 등의 시집을 펴냈습니다. 고려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퇴직 후 현재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계십니다.

  아내인 김은자 시인 역시 한림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퇴직한 부부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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