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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04.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8)

제8편 박찬일 시인의 '팔당대교 이야기'

@. 오늘은 박찬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팔당대교 이야기
                                     박찬일

  승용차가 강물에 추락하면
  상수원이 오염됩니다
  그러니 서행하기 바랍니다

  *
  나는 차를 돌려 그 자리로 가
  난간을 들이받고
  강물에 추락하였습니다
  기름을 흘리고
  상수원을 만방 더럽혔습니다.

  *
  밤이었습니다
  하늘에 글자가 새겨졌습니다
  별의 문자 말입니다
  승용차가 강물에 추락해서
  상수원이 오염되었습니다
  서행하시기 바랍니다

  *
  내가 죽은 것은 사람들이 모릅니다
  하느님도 모릅니다
   -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2002년)

  #. 박찬일 시인(1956년생) : 춘천 출신으로 1993년 [현대시사상]을 통해 등단
  화려한 비유보다는 진실과 해학이 담긴 자신만의 시 세계를 펼쳐나가고 있다는 평을 받음


  <함께 나누기>

  시인이 어느 날 팔당대교 쪽으로 차를 몰고 가다가 희한한 경고문을 보게 됩니다.


  “승용차가 강물에 추락하면 / 상수원이 오염됩니다 / 그러니 서행하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웃었겠지요? 그러다가 한순간 분노가 치밉니다. 승용차가 추락하면 상수원이 오염되긴 하겠지요. 하지만 추락한 승용차에 탄 사람은요? 한 사람의 생명이 상수원 오염이란 명제 때문에 아주 하찮게 취급돼 버리는 현실에 화가 났습니다.

  어느 공무원의 발상으로 만들어진 경고문이겠지요. 어쩌면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또는 두세 명)의 죽음보다 1000만 서울시민의 건강이 더 걱정되었을 겁니다. 효율성 면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에 빠져 죽은 승용차에 탄 사람과 그의 가족을 한 번이라도 헤아려 본 경고문일까요?
  화자는 이 경고문을 보는 순간 열이 올랐습니다. 그래서 차를 돌려 몰고 가 난간을 들이받고 댐으로 빠집니다.

   “기름을 흘리고 / 상수원을 만방 더럽혔습니다.”
  

  물론 진짜 자살한 건 아니겠지요. 성경에서 마음속 간음도 간음이라 했으니, 마음속 자살도 자살이라 해야 할까요? 어쨌든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헌데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기억이나 할까요? 아닙니다.

   “승용차가 강물에 추락해서 / 상수원이 오염되었습니다”


  예상되는 기사입니다. 사람들은 누가 죽었는지 궁금해하지 않고, 오직 1000만 명이 먹고사는 상수도원이 오염이 되지 않았을까 걱정을 할 뿐.

   “내가 죽은 것은 사람들이 모릅니다 / 하느님도 모릅니다”

  나는 신의 관심에서도 벗어난 존재이고, 어느 누구의 관심도 얻지 못한 채 그냥 사라졌을 뿐입니다.


  쉽게 읽혔겠지만 오늘 내내 머릿속을 채울 시입니다. 내가 사는 사회를 개탄하실 분도, 뭔지 모를 찝찝함에 밥맛 잃으실 분도 계시리라 여깁니다.

  왜 우리는 '공익'이란 허울 앞에 한 개인의 목숨 소중함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걸까요? 한 사람의 생명이 이처럼 하찮게. 취급되어도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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