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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05.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9)

제9편 : 신천희 시인의 '외상값'

@. 오늘은 신천희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외상값
                             신천희

  어머니
  당신 뱃속에
  열 달 동안 세들어 살고도
  한 달치의 방세도 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몇 년씩이나 받아먹은
  따뜻한 우윳값도
  한 푼도 갚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이승에서 갚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저승까지
  지고 가려는 당신에 대한
  나의 뻔뻔한 채무입니다

  

#. 신천희 시인 : 호 ‘소야’. 월간 [아동문예]와 [대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현재 전북 김제군 ‘무주암’에서 도 닦는 스님으로, 시인으로, 동화와 동시 쓰는 아동문학가로 살아감



  <함께 나누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함께 나누기’를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술집에 가장 많이 걸려 있는 시와 그 시 쓴 사람의 신분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일단 술과 관련된 시일 테고, 시인도 술꾼 가운데 한 분이겠지 하며 생각할 겁니다.


  시 제목은 「술타령」인데 시를 쓴 시인의 신분은 놀랍게도 스님입니다. 법명은 소야(笑野)인 신천희 스님. 아니 스님이?

  그 시 한 번 볼까요.


  “날씨야 / 네가 / 아무리 / 추워 봐라

  내가 / 옷 / 사 입나 / 술 사먹지”


  스님이 이런 시를 썼으니 완전 발칵 뒤집혔겠죠. 스스로 땡초라고 하지만 술꾼(?)으로서의 경지라기보다 어쩌면 금기를 뛰어넘는 달관의 경지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시로 표현함이 아닌지...


  오늘 시로 들어갑니다.


  읽는 순간 갑자기 한 그리움이 확 치밀어 오를 겁니다. 영원한 ‘빚쟁이’ 우리들의 어머니. 사실 사전을 들추면 빚쟁이에는 정반대의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돈을 꾸어준 사람도 돈을 빌려간 사람도 모두 빚쟁이라는 점에서.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정말 빚쟁이 맞습니다. 자식 입장에선 어머니에게 빚을 졌으니 갚아야 할 대상이 되고, 어머니 당신께선 늘 자식에게 덜 주었다고 여기니 빚쟁이가 될 수밖에요. 이래저래 어머니는 빚쟁이 맞습니다.

  시인은 어머니에게 진 빚을 두 가지 들고 있습니다. 열 달치의 방세와 몇 년 간 얻어먹은 우윳값. 헌데 어찌 그 두 가지뿐이겠습니까. 시인 역시 잘 알 겁니다. 이보다 훨씬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저는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농담 삼아 이리 말했지요.
  “나는 엄마한테 젖 한 방울 얻어먹지 않았다 하니 적어도 그에 대한 빚은 없다.”
  그러자 곁에 있던 누나가 대뜸 꿀밤을 먹이며,
  “이 녀석아, 대신에 암죽을 만들어 먹이려고 엄마 이 다 상해 누구보다 먼저 합죽이가 된 걸 몰라서 그래?”

  암죽은 젖이 나오지 않을 때 쌀을 가루 내 묽게 쑨 죽을 가리키는데, 지금 같으면야 믹서기로 돌리면 되지만 이전에는 어머니가 직접 이로 잘게 부수어 가루 내야 했으니 이가 성해 남았을까요?
  이제 외상값 갚으려 해도 빚쟁이는 안 계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표현했나 봅니다.

  “저승까지 / 지고 가려는 당신에 대한 / 나의 뻔뻔한 채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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