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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06.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0)

제10편 : 고두현 시인의 '발왕산에 가보셨나요'

@. 오늘은 고두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발왕산에 가보셨나요

                                         고두현


  용평 발왕산 꼭대기

  부챗살 같은 숲 굽어보며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더니

  전망대 이층식당 벽을

  여기 누구 왔다 간다, 하고

  빼곡히 메운 이름들 중에

  통 잊을 수 없는 글귀 하나.


  ‘아빠 그동안 말 안드러서

  좨송해요. 아프로는 잘 드러께요’


  하, 녀석 어떻게 눈치 챘을까.

  높은 자리에 오르면

  누구나 다

  잘못을 빌고 싶어진다는 걸.

  -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2018년)


  #. 고두현 시인(1963년생) : 경남 남해 출신으로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현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이며, 독서경영 열풍을 일으키는 등 독서 활성화에 노력을 많이 함.



  <함께 나누기>


  에베레스트산 같은 고봉을 올라본 등산가는 말하지요. 높은 산에 오르면 사람이 겸손해진다고.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콧대 높은 사람이라도 대자연의 장엄함과 거대함 앞에 서면 절로 작아지니까요.


  평창군 용평 발왕산은 1,458m로 제법 높은 산입니다. 어느 글쟁이는 이 산을 '겸양을 지닌 산'이라고 평했습니다. 좋은 것이 나고 자라도 쉬이 자랑하지 않는 겸양, 그러나 절로 드러나는 위엄. 사람을 품고 기르며 쉬게 하는 산이라고.


  또 발왕산은 사계절 언제나 아름다우며 여느 산과 다른 점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점입니다.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휠체어를 탄 사람도, 어린아이도,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도 발왕산 정상에서 장쾌한 풍경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시로 들어갑니다.


  “용평 발왕산 꼭대기 / 부챗살 같은 숲 굽어보며 /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더니”


  발왕산은 아무래도 겨울 스포츠의 꽃인 스키장이 있는 곳이니까 겨울엔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 됩니다. 화자도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다 전망대 이층 식당 벽에 빼곡히 적힌 글귀를 읽어봅니다. 그때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 글이 하나 띕니다.


  “아빠 그동안 말 안드러서 / 좨송해요. 아프로는 잘 드러께요”


  맞춤법도 어긋나 제대로 새겨 읽지 않으면 무슨 뜻인지 애매한 어린이의 글귀가 왜 화자의 눈에 띄었을까요? 높은 곳에 오르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순박한 어린이의 마음 때문입니다. 낮은 세상에서는 몰랐던 자신의 잘못을 챙겨보는 그 마음이 이뻐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 / 누구나 다 / 잘못을 빌고 싶어 진다는 걸”


  단순히 읽으면 발왕산 같은 높은 산에 오르면 자신의 허물이 보여 뉘우치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그럴 수 있습니다. 세속을 떠난 탈속의 세계에 들면 보이지 않던 자신의 허물도 보일 수 있음을.


  허나 고두현 시인은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입니다. 즉 이 속에는 날카로운 사회 인식 속에 풍자성을 담았다고 봅니다. 물론 순수한 그대로 시를 읽고 넘겨도 되고, 그 속에 든 깊은 의미를 파헤쳐 봄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됩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한번 봅시다. 어떻게 한결같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권력을 남용하면서 부정부패로 치달으니까요. 그래서 정치권력을 잡고 높이 오른 자들은 거의 대부분 나중에 청문회에 불려 나와 잘못을 추궁받고 감옥에 갔습니.


  낮은 곳에 있을 때는 멀쩡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한결같이 높은 자리 오르면 다 그런 짓을 할까요? 시 내용대로라면 모든 높은 자리에 앉은 고위 공직자들을 의무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이상 높은 산에 오르는 수련을 받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조금 나아질까요? 아니면 그렇게 해도 소용없을까요. 시 한 편이 주는 무거움에 일터로 나서는 발걸음조차 훨씬 무겁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 사진은 발왕산 정상에 눈 내린 모습인데 [뉴시스](2021. 3. 4)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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