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07.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1)

제11편 :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오늘은 김용택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 [그대, 거침없는 사랑](1993년)

  #. 김용택 시인(1948년 출생) : 전북 임실 출신으로 농고가 최종 학력인데, 교사채용시험을 봐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
  1982년 [창작과 비평사]를 통해 등단. 섬진강 연작시를 써 ‘섬진강 시인’이란 별명이 붙음


  <함께 나누기>

  술 한 잔 마시면 한밤중에도 전화하는 오랜 벗이 있습니다. 어떤 땐 잠결에 수화기를 들면,
  “어, 자냐? 그냥 니가 보고 싶어서 ...”
  그러고는 뚝 전화를 끊습니다. 별 내용도 없는 전화, 그런데도 그 전화가 얼마나 가슴에 남던지요.

  휴대폰이 나오니까 요즘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자주 전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연도 구구절절하겠지요.
  헌데 받고 나서도 한참 여운을 남기는 통화는 얼마나 되던가요? 일상적인, 아주 일상적인 내용이 태반 아니던가요?

  일상적이어도 좋은데 남의 험담으로 시간 보내지는 않는지, 나의 잘못을 합리화하려는 내용은 없었는지...
  이 시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감성을 쫓고 있습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런 사연으로 전화한 적 한 번도 없는 이들에게 보내는 시입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이런 전화받게 되면 절로 마음에 평화가 가득 찹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도 여태 본 적 없는 환한 달이 떠오를 수밖에요.
  이런 전화받은 밤은 잠도 쉬 못 이룰 겁니다. 전화 건 이를 생각하느라. 그와 함께 했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느라.

  "세상에 /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이런 전화받으면 절로 창을 열고 밤하늘을 보게 됩니다. 그때 뜬 달, 비록 초승달이든 그믐달이든 유난히 밝다고 느낄 겁니다.
  만약 집 근처에 개울이 흐르고 있다면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겠지요.


  달이 떴다고 둥글고 환한 달이 떴다고 연락을 줄 수 있는 사람이나 또 연락을 받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세상에, 아파트 앞 벚나무에 핀 꽃잎이 바람에 춤추고 있어서,
  세상에, 길가에 돋아난 민들레 노란 꽃잎을 보니 네가 생각나서,
  세상에, 부서지는 햇살의 눈부심이 네 환한 얼굴 닮아서,
  세상에, 흰 산벚꽃 무리에 핀 빠알간 복사꽃이 화사한 네 뺨 같아서...

  이런 첫말로 다가오는 전화라면 기분이 어떨까요? 속된 말로 기분 '째질' 겁니다.
  한 마디 사랑한다는 말 안 담겨도 그 사랑의 깊이와 폭 때문에 내내 행복할 겁니다.

  혹 오늘 달이 뜨면 그리운 이에게 전화 한 통 배달하시길.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