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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24. 2023

목우씨의 산골일기(152)

            

       * 박새가 떠난 빈 둥지 *


  내일 새벽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내려간다는 예보에 어제부터 본격 겨울 한파 대비에 나섰다. 아파트에 산다면 거실 한 곳에 자리한 선풍기를 열풍기로 교체하고 푹신한 이불과 요만 준비해도 대충 끝나련만 시골에선 그 정도론 안 된다.
  시골, 특히 산골에서 가장 우선 일은 동해(凍害) 입지 않도록 과일나무를 짚으로 감싸주고, 등겨를 구해와 뿌리 쪽에 덮어주는 일이다. 연못이 있다면 거기에도 보온이 필요하다. 연꽃이나 수련은 잘 얼어 죽지 않으나 첫추위에 타격받으면 봄날이 돼도 생육상태가 좋지 못하다. 연못의 물을 아주 조금 남기고 뺀 뒤 위에다 짚을 덮으면 되는데 짚 구하기 어려우면 비닐로 덮으면 끝.

  특히 추위에 약한 무화과 같은 과일나무는 그대로 두면 십중팔구 얼어 죽으니 귀찮지만 가지를 일일이 짚으로 둘러싸고, 추위 많이 타는 나무의 뿌리 쪽엔 등겨를 깔아준다. 땔감 장만도 필수적이다. 우리 집엔 지난주 1톤 세레스 한 대 분량 사놓았으니 내년까지 걱정 끝.



  바깥일이 끝나고 황토방 아궁이 창고 쪽을 정리하는데 뜻밖의 시설물(?)이 눈에 띄었다. 박새 빈 둥지. 올해는 박새가 창고에 들어와 집 짓지 않았다고 좋아한 게 엊그제 같은데 녀석들은 그런 나를 비웃듯 신혼방을 차렸다.
  창고에 박새가 둥지 만들면 참 곤란하다. 들락날락할 때마다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창고에 만든 둥지는 걔들이 머물 곳이 아니라 알 낳고 부화시키기 위한 공간이다. 즉 날아갈 때까지만 머무는 곳이다. 시끄럽게 해선 안 되는데 공구나 농기구를 거기 두니 꺼낼 때마다 소리 안 낼 수 없고 심지어 공구통 속에 둥지를 만들 때는 한 달 동안 못 쓴다.

(재작년 공구통 속에 만든 박새집)



  박새는 모타리가 하도 작아서 우체통 안에도 만들고 심지어 풀숲 작은 가지나 노랑꽃창포 같은 단단한 잎사귀를 이용해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좁고 작은 곳을 선호하는 이유는 당연히 ‘안전’ 때문이다. 우체통엔 사람의 손 아니면 천적인 고양이가 들어올 리 만무.

  박새집을 치우다가 혹시나 하여 뒷간에 갔더니 지붕이 끝나는 지점 약간의 틈새에도 만들어놓았다. 그냥 놔두면 좋은데 희한하게도 박새는 한 번 만든 곳에 다시 오지 않는다. 즉 재활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만 그해 봄에 만든 곳엔 여름에도 들러 이용한다. 아주 조금 리모델링만 하면. 허나 해 바뀌면 그곳은 필요 없다. 그러니 치워야 한다.

  박새 빈 둥지를 치우다 며칠 전 텔레비전 뉴스에 '최근 들어 빈 둥지 가구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는 소식을 들었다. ‘빈 둥지 가구’란 성인이 된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부부 혹은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이혼한 뒤 홀로 지내는 가구를 말한다. 즉 아내(혹은 남편) 없이 자식 없이 혼자 사는 늙은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맹자는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무릇 ‘환과독고(鰥寡獨孤)’를 우선 살펴야 제대로 된 정치를 한다고 말했다. 환(鰥)은 홀아비를, 과(寡)는 과부를, 독(獨)은 자식 없는 늙은이를, (孤)는 부모 없는 고아를 뜻하는 말이다. 환과독고 가운데 '독'이 가장 서럽다고 한다. 자식 있는 과부와 자식 있는 홀아비는 그나마 괜찮으나 자식 없는 늙은이가 불쌍하다는 뜻이렷다.


(가는 가지를 이용해 만든 둥지)



  박새 빈 둥지로 글 쓰다가 최근 들어 빈번히 쓰이는 심리학 용어 하나가 떠오른다. ‘빈 둥지 증후군’ 새끼 새들이 스스로 날갯짓해 둥지 벗어난 뒤 텅 빈 둥지 안에 홀로 남은 어미새처럼, 자식이 성장하여 결혼해 떠나면 느끼는 부모(특히 어머니)의 허전함과 공허함을 빗대 만들어진 용어다.

  이런 심리학 용어가 생겨났다는 말은 아주 극소수의 부모에게만 나타나는 증세가 아니란 말이다.  원래 이 증상은 결혼하여 떠날 때만 나타나는 현상에서 방학 때 같이 집에 머물다 개강하면 다른 지역으로 유학 가는 자식을 둔 부모에게도 나타난다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이 '빈 둥지 증후군'으로 인한 우울증이 인류를 괴롭힐 세계 2위의 질병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노랑꽃창포 잎 위에 만든 둥지)



  둥지에 살던 새들이 날아가면 빈 둥지만 남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 번 만든 둥지를 새는 다시 찾지 않는다. 그 둥지를 새는 미련 없이 버린다. 그래서 ‘둥지 떠난 새는 둥지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도 생겼지 않은가.
 그럼 사람에게 둥지는 어떤 뜻일까? 어떤 이에겐 재산이, 어떤 이에겐 권력이, 어떤 이에겐 명예나 지위가, 또 어떤 이에겐 가족이... 그러니까 그를 집착하도록 만드는 어떤 요소가 된다. 빠져나올 수 없도록 옭아매는 뜻에서의 '둥지'.
  그런 뜻의 둥지라면 벗어나는 게 좋은데 그리 만만치 않다. 아무리 욕심을 버리고, 자식에게 너무 집착 말라고 해도 잘 되지 않으니...


  현재 당신에게 남겨진 빈 둥지는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화두는 되리라.


  *. 커버 사진은 세렉스 1톤 분량의 땔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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