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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09.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2)

제12편 : 신현림 시인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 오늘은 신현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신현림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나뽈레옹의 이 말은 10년 동안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송곳이었다
  게으름을 피울 때마다
  내 많은 실패를 돌아볼 때마다
  송곳은 가차없이 찌르고 찔러왔다

  모든 불행엔 충고의 송곳이 있다
  자만치 말라는, 마음 낮춰 살라는 송곳
  불행의 우물을 잘 들여다보라는 송곳
  바닥까지 떨어져서
  다시 솟아오르는 햇살의 송곳

  송곳은 이제 지팡이처럼 내게 다가와
  신들린 듯 거친 바다처럼 밀어간다
    - [해질녘에 아픈 사람] (2004년)
 
  #. 신현림 시인(1961년생) : 경기도 의왕 출신으로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현재 서울에 살면서 시와 산문, 사진, 여행에 관한 글을 쓰며 삶


  <함께 읽기>

  조곤조곤 읽으면 이 시는 특별한 해설 없이도 쉬 이해될 겁니다. 우선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을 시인의 말을 빌리면,
  “나는 젊은 시절 혹독한 불면증과 폐병을 앓았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어야 하나 자조하던 중, 과거 친구가 적어준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라는 나폴레옹의 명언을 발견하였다. 그 문장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마치 벌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 이후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패배한 뒤 아프리카 서해안 절해고도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폐됩니다. 6년 동안 머무르다가 죽기 전에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란 말을 남깁니다.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폴레옹은 적장(敵將) 웰링턴을 우습게 보고 전투가 벌어지는 날 아침 예정된 출전 시간보다 4시간이나 늦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전투 중 뜻하지 않게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나폴레옹이 자랑하는 대포는 무용지물이 되고 결국 패배하고 맙니다.
  만약 나폴레옹이 4시간 먼저 일어나 전쟁에 임했다면, 즉 비 내리지 않는 상태에서 치렀다면 그 결과는 달라졌을 겁니다. 잠시 방심한 바람에 나폴레옹으로서는 스스로를 파멸로 이끈 천추의 한이 되었으니 그런 말이 절로 나왔을 겁니다.

  반대의 경우 한 사람을 예로 들어봅니다.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39대, 1977년 ~ 1981년). 몇 년 전 기사에서, 현직에 있을 때 가장 정치를 잘한 대통령 순위에서는 뒤에서 다섯 번째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현직을 떠난 뒤 전직 대통령으로서 훌륭한 일을 한 최고의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는 평소 그의 성격과 관계있습니다.

  그가 대통령 후보 지명을 앞두고 “왜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펴냅니다. 다음은 그 내용입니다.
  청년 시절 해군대위였을 때 함장으로부터 갑판을 깨끗이 청소하라는 명령을 듣고 다른 일이 있어 적당히 했나 봅니다. 그런데 나중에 점검하러 온 함장이 그에게 묻습니다.
  “카터 대위, 청소를 다했는가?”
  “넷!”
  “그럼 최선을 다했는가?”
  그 말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잠시 머뭇거리자 함장이 이렇게 야단쳤다고 합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그 말이 그의 머릿속을 울리면서 삶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그 뒤 그는 어떤 일을 앞두고 늘 스스로에게 질문한답니다. ‘왜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카터 대통령은 자신이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던 모양입니다. 대통령 재임 시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여러 여건이 맞지 않아 무능한 대통령으로 낙인찍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모든 일을 내려놓는데 반하여 그는 대통령의 짐을 죽을 때까지 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노력해서 전직 최고의 대통령이란 존경의 말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겪는 고통과 불행을 시대와 환경을 핑계 삼아 원망합니다. 그러나 가만 들여다보면 내가 당하는 고통과 불행은 대부분 내가 만들어놓은 결과물입니다. 해선 안 될 행동을 하거나, 무언가를 빨리 결정해야 할 때 그 시기를 놓치거나, 최선을 다해야 할 때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그리 된 겁니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불행이라는 보복, 이 보복의 뒤에는 충고의 송곳이 숨어 있습니다.
  “자만치 말라는, 마음 낮춰 살라는, 불행의 우물을 잘 들여다보라는” 송곳
  그동안 그 송곳을 잊고 살았습니다.

  오늘 충고의 송곳을 생각하는 시간을 잠시 가져 봄이 어떨까요. 아프게 찌르면 찌를수록 그 충고를 새겨들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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