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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10.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3)

제13편 : 정호승 시인의 '절벽에 대한 몇 가지 충고'

@. 오늘은 정호승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절벽에 대한 몇 가지 충고

                                                정호승


  절벽을 만나거든 그만 절벽이 되라

  절벽 아래로 보이는 바다가 되라

  절벽 끝에 튼튼하게 뿌리를 뻗은

  절 솔가지 끝에 앉은 새들이 되라


  절벽을 만나거든 그만 절벽이 되라

  기어이 절벽을 기어오르는 저 개미떼가 되라

  그 개미떼들이 망망히 바라보는 수평선이 되라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씩 절벽은 있다

  언젠가는 기어이 올라가야 할

  언젠가는 기어이 내려와야 할

  외로운 절벽이 하나씩 있다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년 초판, 2021년 개정판)


  #. 정호승 시인(1950년생) : 경남 하동 출신으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를 통하여 등단.

  ‘일상의 쉬운 언어로 현실의 이야기를 시로 쓰고자 한다.’는 신념으로 시를 쓰는 전업시인.

  쉬우면서도 좋은 시를 많이 써 아마도 김소월 시인 다음으로 노래로 불린 시를 많이 내놓은 시인



  <함께 읽기>


  살다 보면 벽을 만납니다. 다만 그 벽이 합판으로 된 얇은 벽이거나, 한 손 짚고 오를 수 있는 높이의 벽이라면 별 것 아니겠지만, 엄청난 두께의 벽이거나, 너무 높아 사다리로도 오를 수 없는 벽이 앞에 놓일 경우도 있습니다.


  넘기 어려운 벽이 가로막을 때는 꼭 하필 내가 여러 번 시도로 힘이 다 빠졌을 때나 더 이상 도전하고픈 꿈이 사라져 갈 때입니다. 대부분 우리들은 그런 벽을 대하면 까마득한 절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일 겁니다. 그때의 절벽은 도무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장애물로.


  시로 들어갑니다.


  “절벽을 만나거든 그만 절벽이 되라”


  절벽을 넘어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제시됩니다. 절벽을 만나면 절벽이 되어야 그 절벽을 넘을 수 있다는. 그렇습니다. 절벽이 되면 바로 아래 바다가 될 수도 있고, 솔가지에 앉은 새도 될 수 있습니다.


  바다는 절벽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바다에게 절벽은 만만한 존재일 뿐입니다. 언제나 두들겨 패도 되는. 마찬가지로 새들도 절벽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까짓 것, 절벽이 아무리 놓다고 해도 단 한 번 날갯짓이면 훌쩍 뛰어넘으니까요.


  2연에서도 마찬가지로 “절벽을 만나거든 그만 절벽이 되라”가 되풀이됩니다. 그리고 여기선 개미떼가 나옵니다. 개미떼에게 절벽은 넘지 못할 벽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들이야 금방 체념하지만 개미들은 쉬임 없이 오르면 그곳을 넘어간다고 믿으니까요.


  가끔씩 오르다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 개미떼들은 수평선을 망망히 바라보며 다시 힘을 비축합니다. 우리 인간보다 분명히 몇 배나 허약한 존재인 개미도 절벽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우리가 그런 나약함을 보여주느냐고 질타합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씩 절벽은 있다”


  그렇습니다. 절벽이 가로막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들에게는 절벽이 없고 나에게 보이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다만 내 눈에만 그의 절벽이 보이지 않을 뿐 분명 절벽이 있습니다. 그는 이미 바다가 되고 새가 되고 개미가 되어 있으므로 절벽이 두렵지 않을 뿐.


  “언젠가는 기어이 올라가야 할 / 언젠가는 기어이 내려와야 할 / 외로운 절벽이 하나씩 있다”


  기어이 올라가 목표를 성취했을 때는 쾌감, 엄청난 카타르시스의 분출, 환희의 절정을 다 맛볼 수 있습니다. 허나 그런 뒤 다시 내려올 수 있음을, 아래로 떨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정상에 계속 머물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시는 절벽을 만나거든 절벽 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나도 절벽이 되어야 절벽을 넘을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정말 절벽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정복해야 할 절벽이 있다면 반드시 내려와야 할 절벽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네 삶이 재미있고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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