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문연 시인 : 충북 영동 출신으로 2003년 [문학마을]을 통해 등단. 예순이 넘어 등단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2019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을 받을 만큼 왕성하게 시를 씀 (참고로 '곽문영'이란 젊은 시인도 있으니 혼동하지 마시길)
<함께 나누기>
언제부턴가 아들네와 우리 부부가 만나 외식하면 아들이 계산했습니다. 갓 결혼했을 땐 제가 계산했던 것 같던데 아들 직책이 올라가고 연봉도 많아지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참 어색하더군요. 아직 식사 정도야 제공할 능력 있고 부모니까 당연히 계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허나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가끔 계산할 무렵 제가 무심코 지갑 꺼내려하면 아내가 슬며시 옆구리를 꼬집습니다.
헤어지고 난 뒤 아까 아내가 한 행동 나무라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들도 우리에게 은근히 대접하고 싶은 즐거움 있을 텐데 굳이 그걸 빼앗으려고 해요?"
시로 들어갑니다.
드라이브 코스를 아들이 고릅니다. 젊기 때문에 험난하지만 스릴 느낄 길을 달립니다. 그러면 허리가 뻐근하고 뒷골이 어지러움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합니다. 아들이 무안할까 봐. 외식식단을 아들이 고릅니다. 아무래도 어른 입맛과 젊은이 입맛이 다르니 입에 좀 맞지 않습니다. 그래도 맛있게 먹어줍니다. 집에서 TV를 볼 때 프로그램과 채널도 아들이 고릅니다. 내 취향에 맞지 않아도 '참 좋다 좋다' 합니다.
늦은 밤 아들 딸 가족이 오면 손주들 떠들며 놀며 왁자한 웃음을 터뜨릴 때 무척 졸리지만 졸립지 않은 척하며 버텨냅니다.또 조용히 책 읽고 싶어도 오랜만에 들른 아들 딸 가족 생각하며 당연히 웃어줍니다. 전혀 언짢은 내색 않고. 참 좋다 좋다 하며.
"아들 앞에 서면 / 나는 아들의 아들이 되어간다"
이제야 압니다. 내가 자식 키운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자식도 나를 키웠음을. 자식 커가는 모습 보며 나도 많이 깨닫기에. 생각하면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키우면서 동반성장 하는 게 아닌지요. 서로가 서로를 키우면서 살아갑니다.
"내 키보다 큰 아들 앞에서 나는 자꾸 작아진다"
아들보다 작아짐을 훨씬 전부터 느꼈습니다. 왠지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커졌습니다. 사소한 일도 전화해 의견 묻습니다. 예전 우리 아버지가 성장한 저에게 집안 대소사를 의논하였듯이. 어느새 아들은 저보다 모든 면에서 훌쩍 컸습니다. 그게 서글프지 않고,참 좋고 좋습니다. 저보다 자꾸만 더 커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좋다, 좋다, 참 좋다!"를 마구마구 남발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