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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12.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5)

제15편 : 나석중 시인의 '풀꽃 독경'

@. 오늘은 나석중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풀꽃 독경
                                 나석중

  어제 은꿩다리를 찾아 읽고
  오늘은 금꿩다리를 찾아 읽네
  야생의 *풀꽃 경(經)에 빠지다 보면
  더러 한 끼의 밥때를 놓치는 마당에
  외로움이란 감정의 사치에 불과한 것
  돌이든 풀꽃이던 시(詩)든
  거기에 마음 앗기다 보면
  백수 같은 외로움 맞아 놀아날 새 없네

  강아지풀을 보면
  나도 강아지풀이나 되어서
  무엇이 좋다고 저렇게 꼬리를 흔들흔들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싶은데
  강아지풀 너도 나를 보면
  산으로 들로 쏘다니고 싶은 거냐

  장마 그치고 바야흐로 가을로 들어섰지만
  이제야말로 연애하기 좋은 시절이듯
  매미들 시퍼런 소리 갈아대며 극성인데
  숲속 오솔길 거침없이 솟아오른
  *깨벗은 *무릇 한 쌍이
  나를 조금 부끄럽게 하네
  - [풀꽃 독경](2014년)

  *. 풀꽃 경 : 길 가다 눈에 띈 풀꽃 이름을 읊조리는 일
  *. 깨벗은 : ‘벌거벗은’의 전라도 사투리
  *. 무릇 : ‘꽃무릇’의 준말

  #. 나석중 시인(1938년생) : 전북 김제 출신으로 2004년 [신문예]를 통하여 66세라는 꽤 늦은 나이에 등단함.
  이듬해 67세 때인 2005년 첫 시집 [숨소리]를 펴낸 뒤, 3년에 한 권꼴로 시집 펴냈는데, 83세인 2021년에도 [저녁이 슬그머니]를 펴내고, 85세인 올해도 [노루귀]란 시선집을 펴냄


  <함께 나누기>

  좀 이상한 말이지만 외로운 사람이 시인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외로움에 시달려야 시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다른 뜻도 있겠지만 저는 외로우니까 무엇인가에 자꾸 기대게 되고 찾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요즘 부쩍 ‘들꽃 이름 알기 모임’이나 ‘숲 체험 모임’ 같은 취미활동 즐기는 분들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다른 취미에 비해 경제적으로도 이익이고, 산과 들 오르내리며 좋은 공기 마시니 건강에 도움 되며, 자연 사랑하는 마음 또한 길러지니 참 건전한 취미라 여깁니다.

  외로움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시인의 취미도 들꽃 찾아보기인 듯. 다만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모임에서 함께 하기보단 혼자 찾아다니겠지만. '은꿩다리, 금꿩다리, 강아지풀, (꽃)무릇'. 비록 시에는 네 가지밖에 언급되지 않았습니다만 어디 본 들꽃이 네 개뿐이겠습니까.

  시로 들어갑니다.

  “어제 은꿩다리를 찾아 읽고 / 오늘은 금꿩다리를 찾아 읽네”

  굳이 어제오늘이라는 시간을 생각 안 해도 됩니다. 이리저리 산과 들 찾아 무심코 들렀더니 눈에 들꽃이 띄었을 뿐이니까요. 이런 들꽃(풀꽃) 구경에 빠지다 보면 한 끼 밥때를 놓치는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지요. 어떤 땐 밥 한 끼보다 풀꽃 한 송이 보는 즐거움이 더 커니까요.

  “돌이든 풀꽃이던 詩든 / 거기에 마음 앗기다 보면 / 백수 같은 외로움 맞아 놀아날 새 없네”

  '백수 되니까 손발에 곰팡이 슨다'는 말관 거꾸로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우스개가 나돕니다. 그만큼 바쁘게 산다는 말이 되겠지요. 제 아는 이 만났을 때 하루의 일정을 듣고 정말 놀랐습니다. 어떻게 쉴 틈 없이 저렇게 짰을까 싶었으니까요. 아침에 조깅, 오전에 파크골프, 오후에 당구, 저녁엔 취미 교실...

  화자는 강아지풀을 보면 강아지풀이 되어 꼬리를 흔들흔들 거리며 세상 근심 잊으며 살고 싶다고 합니다. 풀꽃을 보며 얻는 행복이겠지요. 바람에 자유롭게 흔들리는 강아지풀 보면 아무 근심걱정 없이 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날 테니까요.

  “숲속 오솔길 거침없이 솟아오른 / 깨벗은 무릇 한 쌍이 / 나를 조금 부끄럽게 하네”

  꽃무릇이 벌거벗었다 함은 꽃무릇의 생태를 알면 금세 ‘아!’ 하실 겁니다. 아시다시피 꽃무릇은 상사화처럼 잎이 피면 꽃이 없고, 꽃이 피면 잎이 사라집니다. 그러니 감성을 가진 시인의 눈에는 민둥 꽃대 하나에 꽃만 핀 모습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비치겠지요. 이런 표현이 시를 읽게 만드는 힘이라 할까요.

  짧은 시간 동안 시인과 함께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풀꽃들 구경 실컷 하는 기쁨 누렸습니다.

  *. '꿩의다리'란 꽃에는 '산꿩의다리' '자주꿩의다리' '은꿩의다리' '금꿩의다리' 등 여럿입니다. 그 가운데 '은꿩~~'는 잎의 뒷면에 흰색 돌기가 붙어 얻은 이름이며 '금꿩~'는 노란색 돌기가 붙었답니다. 그러니까 꽃 빛깔과는 관계없습니다.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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