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을 밀고 가는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길 어디로 무엇을 위해 가고 있는 중일까 발끝으로 톡 건드려 보았지만 몸을 펼쳐 다시 길을 뽑아내며 간다 사람에게는, 돌아보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이 있을까 부쩍 뒤를 돌아보게 되는 나는, 문득 문득 그의 길이 생각났다 - [청어](2018년)
#. 정이랑 시인(본명 ‘정은희’, 1969년생) : 경북 의성 출신으로 1997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현재 대구시인학교 '사림시' 및 '시원' 동인으로 활동 중
<함께 나누기>
시골에 살면 지렁이의 고마움을 참 많이 느낍니다. 아시다시피 밭에 지렁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기름지다' 하니까요. 가끔 삽질하다 보면 몸뚱이가 잘리기도 하는데도 녀석은 그 상태로 다시 밭에 들어갑니다. 다행인 점은 앞부분이 반 이상 잘리지 않으면 다시 뒷부분은 재생된다고 합니다.
지렁이가 두 동강 나면서까지 밭에 머물며 흙을 기름지게 만드는 걸 글쟁이들이 가만 놔둘 리 없겠지요. 그래서 벌, 개미, 나비와 더불어 글 쓰는 이들의 좋은 글감이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대충 훑어봐도 세 편이 넘으니까요.
시로 들어갑니다.
"길 위에서 길을 밀고 가는 /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참,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까요? '길 위에서 길을 밀고 가는' 그러고 보니 정말 지렁이는 길을 밀고 가는 것 같습니다. 즉 저가 갈 길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말이지요. 지렁이가 지나간 뒤 흙을 자세히 살피면 그 자국이 보입니다. 특히 포실포실한 흙 위를 기어갔다면. 그것이 길을 밀고 간 자국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길"
예전에 지렁이가 앞으로만 가지 뒤로는 가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정말 그런가 알아보려고 무려 세 시간 넘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랬습니다. 잠깐이라도 고개 돌림 없이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갔습니다. 아주 가끔 장애물을 만나면 옆으로 방향 바꿈은 했어도.
"발끝으로 톡 건드려 보았지만 / 몸을 펼쳐 다시 길을 뽑아내며 간다"
어릴 때 자라던 동네에선 꼬마들이 지렁이를 갖고 장난을 쳤습니다. 아주 못된 녀석은 부러 두 동강 낸다든지, 발로 밟아 짓이겨기도 했습니다. 이런 애들은 극소수, 대부분은 지렁이 위에 오줌을 쌌습니다. 그러면 지렁이가 엄청나게 괴로워 몸을 마구 비틀어 댑니다. 그게 재밌어 또 갈기고. 그때 몸부림치던 기억이 하도 선명해 이젠 텃밭에서 호미질 삽질할 때도 신경을 씁니다. 지렁이 다칠까 봐. 작은 뉘우침이라 할까요?
"사람에게는, / 돌아보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시인이 이 시에서 가장 힘준 부분입니다. 지렁이로부터 또 다른 배움 거리를 얻는 시행이기도 하구요. 살면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 있을까요?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후회하고 살아가는 우리 아닙니까? 그러니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만 가는 지렁이가 돋보일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