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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14.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7)

제17편 : 박재화 시인의 '깨달음의 깨달음'

@. 오늘은 박재화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원시는 행과 연의 구별이 없는 산문시 형태이나, 읽기 편하도록 연과 행 가름했음을 양해를 구합니다.)



                 깨달음의 깨달음

                                                            박재화


  걸핏하면 무얼 깨달았다는 사람들 두렵다

  무언가 알아냈다고 목청 높이는 사람들 무섭다


  나는 깨달은 적이 없는데 어떡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

  깨닫기로 말하면 대체 무엇을 깨닫지?


  이것인 듯하다가 저것인 것 같은 생의 한복판에서

  깨달음까진 몰라도 바람 흘러가는 쪽이나 좀 알았으면…


  유난히 긴 밤 잠 못 들면서도 깨달음은 아니 오고

  깨달음은 왜 나만 비켜갈까 나의 깨달음은 대체 언제일까


  깨달음의 깨달음에 매달리는 밤…

  - [먼지가 아름답다](2014년)


  #. 박재화 시인(1951년생) : 충북 옥천 출신으로 198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를 쓸 때 [우리말본]을 옆에 끼고 시를 쓰며, 남에게 듣거나 책에서 얻은 지식으론 만족 못해 꼭 경험을 한 뒤 그 깨달음을 시로 남긴다고 함.



  <함께 나누기>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 신전 현관 기둥에는 아래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합니다.

  “gnothi seauton”

  그 뜻은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을 듣는 순간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는 게 생각나시죠? 아니 사실은 그가 한 말이 아니라 그 당시 이미 존재하던 말이었는데, 소크라테스가 그 말에 담긴 중요한 의미를 찾아냈기 때문에 그가 한 말로 인식하는 것이지만...


  언젠가 한 사람이 신전에 찾아가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신탁이 내려온 겁니다.

  가장 어리둥절한 사람은 소크라테스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스스로가 지혜롭다고 생각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고민 끝에 신탁의 내용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현자(賢者)라 알려진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대화를 통해서 그들이 얼마나 지혜로운가를 알고 싶어서였죠. 헌데 실망만 하고 맙니다.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소크라테스는 결론을 얻습니다. ‘지혜롭다고 알려진 이들은 그들 자신이 제대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반면, 자신은 적어도 내가 아는 게 없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이 깨달음으로 그는 사람들을 향하여 자신 있게 말했지요.

  “너 자신을 알라!” 달리 말하면, “너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깨달아라.”


  시로 들어갑니다.


  “걸핏하면 무얼 깨달았다는 사람들 두렵다 / 무언가 알아냈다고 목청 높이는 사람들 무섭다”


  화자뿐 아니라 저도 두렵습니다. 제가 두려운 건 깨달은 이를 만날까 봐 두려운 게 아니라, 바로 제가 무얼 깨달았다고 떠드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닌가 해서입니다. 특히 시 한 줄 쓰지도 못하면서 시를 좀 압네 하고 해설을 달아 이십 년 넘게 배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유난히 긴 밤 잠 못 들면서도 깨달음은 / 아니 오고 깨달음은 왜 나만 비켜갈까”


  누구나 한 번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몸부림친 경험이 있을 겁니다. 잠 못 자고 치열하게 생각해 보지만 깨달음은 다가오지 않고, 그러다 보니 '깨달음의 깨달음에 매달리는 밤'일 수밖에 없음을...


  요즘 [노자도덕경]을 가끔 펼쳐 읽어봅니다. 읽으면서 인간도(人間道)와 자연도(自然道)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사람 사이에 부대끼면서 도를 찾아감인가, 자연에 묻혀 도를 찾아감인가에 마땅한 표현 없어 ‘인간도’ ‘자연도’라 이름 붙였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몸을 닦으며 진리를 깨우쳐 감이 더 나아 보이는데, 가끔 사람을 벗어나 얻은 도가 사람과 부대끼며 얻은 도보다 나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저는 아무래도 머리 깎거나 누구도 찾지 않는 곳에 들어가 살 자신이 없으니 인간도에 매달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깨달음에 매달리는 밤'이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 아래 사진은 페루 쿠스코에 있는 십이각돌에 새겨진 그리스어입니다. 물론 실제 십이각돌에 새긴 게 아니라 누가 포토샵으로 만든 건데 글 의미 강조하려고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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