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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15. 2023

목우씨의 산골일기(154)

제154화 : 국숫집, 군불방, 겨울비

  * 국숫집, 군불방, 겨울비 *



  (1) 바닷가 국숫집

  나는 텔레비전을 보더라도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은 거의 보지 않는 대신 다큐 프로를 자주 본다. 그게 비록 재방송이라도 말이다. 얼마 전 이곳저곳 넘기다 우연히 한 국숫집 이야기 다룬 프로그램에 눈이 붙었다. 배경은 동해안 한적한 바닷가 국숫집.

  그 국숫집은 국수 파는 곳이 아니라 국수를 만들어 국수가게에 넘기는 일종의 국수 도매상 겸 공장이었다. 허니 직접 밀가루를 사 와 반죽하고 기계틀에 넣어 국수를 뽑아낸 뒤 옥상에 말리는 과정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주인공은 엄마와 아들 둘. 그곳의 첫 장면은 이랬다. 엄마가 아들에게 뭔가 지시했는데 아들이 제대로 못해 야단치던 중. 가만 들으니 기술 익히라고 밀가루 반죽을 아들에게 맡겼는데 물 배합 잘못해서 엉망으로 나온 국수를 보고 나무라던 차.

  아들은 항변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레시피 그대로 밀가루 1포대 당 딱 맞게 적정량의 물을 넣어 반죽했다고. 그러니까 엄마가 말한 대로 밀가루 한 포대 당 물 다섯 바가지 넣었으니 잘못 건조된 건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던 중이라 할까.



  허나 엄마는 단칼에 잘라 말했다. 레시피는 보편적 상황일 때 쓰는 거지 진짜 제대로 된 국수 만들려면 그날의 날씨를 봐서 물을 타야 한다고. 또 바닷바람 냄새도 맡아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에 아들은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제 엄마를 멀뚱히 바라보았고.

  엄마 지적의 요지는 이랬다. 날이 흐리면 물을 평소보다 적게 넣어야 하고, 햇볕이 쨍쨍한 날에는 물을 많이 넣어야 한다. 거기까진 고개를 끄덕일 만했으나 바닷바람이 집 쪽으로 불면 간기 -염도, 짠 정도 -가 높아지니 소금을 조금 적게 넣어야 한다나.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바닷바람 타고 날아오는 소금 농도를 어떻게 감지할 수 있느냐고. 보는 내가 답답했는데 아들도 역시 그랬던 것 같았다. 아들이 온종일 고생해 만든 국수는 그날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두 사람은 냉랭한 분위기로 흘러갔고.

  다음날 엄마가 직접 반죽해 말리는 과정을 아들에게 지켜보라고 했다. 그 집은 특별히 건조기를 설치하지 않고 옥상에다가 자연 건조를 시켰다. 다만 비가 오면 비 맞지 않을 정도만 비닐로 덮었을 뿐 옆으로는 언제나 바닷바람이 들어올 수 있게 된 구조.




  그날 엄마가 반죽하여 말린 국수와 어제 아들이 말린 국수(일부는 버리지 않음)를 삶아 와 방송작가 둘에게 먹어보라고 했다. 젊은 작가 두 사람이 먹고는 엄마가 만든 게 훨씬 맛있다고 했다. 아들도 자신이 만든 국수와 엄마가 만든 국수가 차이 남을 인정했고.

  그냥 생각 없이 한 끼 때우려 먹는 국수 만듦에도 날씨가 맑고 흐리고, 바닷바람의 냄새가 짠가 덜 짠가에 영향받는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2) 땔감 양 조절이 필요하다

  기온이 내려가고 몸에 으슬으슬 소름이 돋아질 때가 되면 아궁이 군불방보다 나은 잠자리는 없다. 보일러 팡팡 틀어놓는 방이라면 여름처럼 속옷 차림으로 다녀도 괜찮겠지만 대부분 난방비 걱정에 그렇게 못하니...

  더욱 침대에서 자면 아무래도 온돌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지지 않아 따뜻한 느낌이 훨씬 덜하다. 전기요를 깔며 되겠지만 역시 난방비. 그래서 시골에선 봄 여름 가을엔 침대에 자다가도 겨울이면 침대에서 내려와 방바닥에 요 깔고 생활하는 가구가 보편적이다.




  그럼 우리 집은? 당연히 아궁이에 장작 때 잠자는 군불방을 이용한다. 초저녁마다 불 때는 담당이 내가 날마다 하는 일이니까 틀림없다. 희한하게도 다른 일은 오래하면 귀찮아 싫증 잘 내는데 이런 불 때는 일만은 진득하게 해 온다. 소위 말하는 ‘불멍’ 때문일까.

  어느 글쟁이는 자기가 쓴 수필에서 이랬다. 군불방의 최대 결점은 한 번 누우면 일어나기 싫다는 점이라고. 맞는 말이다. 아랫목과 방안 공기의 차이에서 오는 썰렁함 때문이다. 특히 온몸이 노곤노곤 풀어진 상태라 정말 일어나기 싫다.

  허나 한 번씩 군불방 이용하는 사람 말고, 날이면 날마다 사용하는 내가 느끼는 가장 큰 결점은 일어나기 싫다는 점이 아니다. 그럼? 난방 온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즉 날마다 때는 땔감의 양이 일정하더라도 방바닥 온도는 다르다. 왜냐구? 땔감의 건조, 즉 마른 상태 덜 마른 상태에 따라 불땀도 다른 데다 한 가지 간과하면 안 될 점이 더 있다.

  며칠 전 군불방에서 자는데 새벽이 되니 왠지 밖에서 찬바람 들어오는 느낌이라 절로 잠이 깨었다. 일어나 둘러보니 문은 그대로. ‘그럼?’ 하다가 온돌에 손 넣어보다 ‘아차!’ 했다. 제법 써늘했기에.




  혹 엊저녁 불 땔 때 양을 적게 했나 생각하다 ‘허 참!’ 했다. 어젯밤 기온이 내려간다고 했는데 여느 때와 같은 양으로 땠으니. 아파트 보일러는 온도계 올리면 금방 데워지나 주택 아궁이 군불방은 금방 데울 수 없다. 다시 불을 때고 그 열기가 구들에 전달되는데 시간이 꽤 걸리니까.

  할 수 없이 침대에 놓아둔 전기요를 가져와 ‘언 발에 오줌 누기’를 했다. 즉 임시변통했다는 말이다. 이런 점이 군불방의 애로라 할까. 땔감 양을 일정하게 조절하는 건 초보라도 할 수 있다. 날마다 같은 양의 땔감을 같은 들통에 담았다가 비우면 되니까.

  허나 군불방 때기의 진정한 고수가 되려면 양만 같아선 안 된다. 내일 새벽 기온이 어떤가를 알고 거기에 맞춰 넣어야 한다. 기온 변화를 살펴보니 사흘 새 2°씩 내려갔다. 그러면 총 6°가 내려갔단 뜻이다. 사흘 전 새벽 최저 기온이 4°도였으니 어젯밤은 –2°였다는 말.

  그럼 그만큼 땔감을 많이 때야 한다. 그럼에도 조금씩 조금씩 내려가는 온도 변화를 감지하지 못해 같은 양으로 땠으니. 그렇다고 너무 많이 때면 이불 다 차버리니 감기 걸리기 십상이고, 너무 적게 때면 새벽 추위에 떨게 되니까 그때그때 땔감 양을 잘 조절해야 한다.




  (3) 너무 잦은 겨울비

  어제 오후부터 오늘 아침까지 비가 내리고 있다. 혹 전방고지 같은 곳엔 비 대신 눈이 내릴 테고, 또 비조차 안 내리는 곳도 있을 터.

  전국적으로 비 내린다고 예고된 며칠 전으로 돌아가보자. 저녁에 일기예보를 보니 우리 사는 곳엔 내일 저녁때부터 비가 온다고 했다. 일기예보를 그리 자주 보는 편은 아니나 보름 전쯤 세레스 한 차 가득 실어온 땔감이 덜 말라 하루라도 더 말려야 하기에 예보를 챙겼다.

  '네이버' 예보에 내일 오전까지 해가 나 있어 아무리 엉터리 예보라 해도 다섯 시간이나 어긋나랴 싶어 밤에 그대로 두었다가 거둬들일 생각으로 내버려 뒀다. 헌데 새벽 세 시쯤 소변 마려워 일어나 화장실 가는데 뭔가 이상한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설마?




  불행한 예감은 어찌나 잘 맞는지, 이미 제법 많이 내린 듯. 잠옷 입은 채로 나가봤더니 보름 동안 말린 땔감이 옴팍 다 젖어 있었다. 나는 '네이버'를 보고 욕했다.
  "아, ㅆㅂ! 비 안 온다고 했잖아."
  겨울에 내리는 비는 여름 소나기와 달리 예보가 잘 맞건만...

  말리다 한 번 젖은 땔감은 수분을 쫙 빨아들여 처음 상태로 돌아간다. 조금 약게 굴려다 왕창 망친 셈이다. 저 상태로 두기보단 조금이라도 덜 젖은 상태에서 치우려고 새벽에 옷을 갈아입고 나가 한 시간 넘게 처마 아래로 옮겼다.

  다 옮긴 뒤 방에 들어오려는데 비가 그치는 느낌을 받았고 또 기분 나쁜 예감이 적중했다. 다시 욕 내뱉었다.
  "아, ㅆㅂ! 비 줄창 내린다고 폼 잡았잖아."
  허나 밤에 다시 비 올 때까지 맑음을 유지했다.




  (4) 마무리하며

  국숫집 사장은 습도 많고 적음을 살펴야 하고, 군불방 지피는 나는 기온 오르내림을 잘 살펴야 한다. 허지만 이는 순간 판단력과 숙달된 능력으로 헤쳐나가면 된다. 그리 어려운 일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판단력과 숙달된 지식만으론 해결 불가능하다. '지구 온난화'니 '엘리뇨'니 '라니냐'니 하는 이상 기후에 흔들릴 때는 더욱. 어떤 기상학자는 올겨울 북반구에 혹독한 추위가 찾아온다고 하고, 또 다른 학자는 이상난동이 심할 거라고 하니 누구 말이 맞을지.

  "신이여 제발 헷갈리게만 하지 말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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