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뻗고 몸을 낮추는가 싶더니 우리 집 텃밭으로 드는 길을 딱 막고 매실을 주렁주렁 욕심껏 매달았다 내 것이 아니어도 오지고 오진 매실, 새터할매 허리 높이에서 마침맞게 익어갔다
새터할매가 매실을 따간 뒤에, 나는 매실나무 가지 밑에 바지랑대를 세워 막혀 있던 길을 열어보았다
우리 집 호박 줄기는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지 밭 놔두고 새터할매네 밭으로만 기어들어가 잘 살았다 - [웃는 연습](2017년)
#. 박성우 시인(1971년생) : 전북 정읍 출신으로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우리나라 최초로 청소년 시집 [난 빨강]을 펴냈으며, 현재 우석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아내 권지현도 [세계일보] 신춘문예 통해 등단한 시인으로 문단에 드문 부부 시인.
<함께 나누기>
이 시를 읽다 문득 초등학교 다닐 때 배운 조선 선조 때 명재상 이항복 대감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이항복이 어렸을 때 담 하나를 둔 이웃이 대감집이었는데, 어느 해 그의 집 감나무가 이웃집으로 넘어갔다. 감나무에 감이 열리면서 대감집으로 넘어간 가지에 달린 감을 이웃집 하인들이 따먹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이 광경을 지켜본 어린 이항복이 대감을 만나 항의했으나 ‘우리 집에 넘어온 감은 우리 것이다’ 하며 약을 올렸다. 이 말에 어느 날 이항복은 무작정 대감집으로 찾아가서 낮잠 자는 방안으로 대뜸 주먹을 찔러 넣었다. 대감이 깜짝 놀라 일어나며 고함쳤다.
"이놈,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이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자기 주먹을 들어 보이며 “이 주먹이 누구 것입니까?” 당돌한 꼬마 말에 '요것 봐라!' 하는 식으로 대감이 대답했다. “이놈아, 그야 네 주먹이지.” “제 주먹이 대감님 방에 들어가도 제 주먹이라면 우리 집 감나무에서 뻗어나간 감을 대감님 댁 하인들이 왜 마음대로 따먹게 하십니까?”
어린아이의 당돌함과 재치에 탄복한 대감은 이항복이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 보아 자기 딸과 혼인하게 하였습니다. 그 대감이 바로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의 공을 세운 권율 장군입니다. 한눈에 이항복의 인물됨을 알아본 결과 멋진 사윗감을 만났다고 봐야 하겠지요.
오늘 시는 따로 해석할 필요 없이 술술 잘 읽힐 겁니다.
새터할매네 매실나무 가지가 화자네 텃밭 들어가는 길로 넘어왔습니다. 가지가 점점 자라 하필이면 텃밭 들어가는 길목을 딱 막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주인에게 가지 잘라라 하든지 아니면 주인 허락 없이 가지를 잘라 버립니다. 그럼 싸움 나겠지만.
“내 것이 아니어도 오지고 오진 매실 / 새터할매 허리 높이에서 마침맞게 익어갔다”
비록 우리 집 매실나무가 아니어도 탐스럽게 주렁주렁 달린 매실을 보자 화자 마음도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래서 그냥 놔두었다가 새터할매가 매실을 따간 뒤에야 매실나무 가지 밑에 바지랑대를 세워 막혀 있던 길을 열었습니다. 참 아름답고도 정겨운 모습입니다. 새터할매네 매실나무가 우리 집을 침범했지만 그걸 고깝게 여기지 않고 감싸는 마음.
“우리 집 호박 줄기는~~새터할매네 밭으로만 기어들어가 잘 살았다”
그러고 보니 새터할매네 매실만 화자네 밭을 가로막은 게 아닙니다. 화자네 호박 줄기도 새터할매네 밭으로 들어갔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이게 서로에 대한 배려입니다. 우리 사회는 누군가에게 손해를 입히고, 또 손해 입는 관계가 연속되기에 서로를 감싸며 살아야 합니다.
예전에 우린 시처럼 살았는데 이런 배려와 잔정이 없어진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싸울 거리를 찾아다니는 싸움꾼처럼 별것 아닌 일도 크게 만들어 대판 싸웁니다. 이 시는 그래서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