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19.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1)

제21편 : 박준 시인의 '연년생'

@. 오늘은 박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연년생(年年生)
                                               박준

  아랫집 아주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갈 때마다
  형 지훈이는 어머니, 어머니 하고 울며
  동생 지호는 엄마, 엄마 하고 운다
  그런데 그날은 형 지훈이가 엄마, 엄마 울었고
  동생 지호는 형아, 형아 하고 울었다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2018년)

  #. 박준 시인(1983년생) : 서울 출신으로 2009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현재 [창작과비평] 편집부에서 일함.
  별명이 ‘아이돌 시인’인데 그만큼 잘 생겼다는 뜻보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인기 많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펴내는 책(시집, 산문집)마다 모두 10만 부 이상 팔려 '베스트셀러 문인'이 되었습니다.


  <함께 나누기>

  아래 해설을 읽기 전에 시를 다시 한번 더 읽어보십시오. 시 흐름을 잡는 시간 잠시 가지시기를... 그래도 잘 이해되지 않으실 때 아래 해설을 읽어보십시오. 왜냐하면 이 시는 짧지만 그냥 읽고 넘겨선 안 되며 음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해설을 하려니까 갑자기 치솟는 먹먹함에 잠시 목이 메입니다. 어떻게 이런 슬픈 시를 이렇게 담담히도 썼을까, 나이 어린(?) 시인이. 내놓은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드는 까닭을 이 한 편의 시에서 알 것 같습니다. 시인은 아주 담담히 말하고 받아들임은 독자에게 맡기는.

  요즘 TV프로그램 가운데 ‘전지적 참견 시점’이란 제목이 뜨던데, 원래 소설의 네 가지 시점 가운데 하나인 ‘전지적 작가시점’을 패러디했습니다. 다른 시점으로 ‘작가관찰자시점’이 있는데, 이는 작가가 제삼자(관찰자)의 입장에서 주인공의 행동을 관찰해 기록할 뿐 나머지는 모두 독자에게 맡기는 형태입니다.

  황순원 님의 [소나기]가 대표적인데, 작가는 소년과 소녀 둘의 행동을 관찰할 뿐 둘의 심리 상태를 알리지 않습니다. 다만 독자가 읽으면서 둘 사이에 흐르는 순수한 사랑의 감정에 반응해 감동하고 애달아할 뿐이지요.

  이 시가 바로 그렇습니다. 시인은 아랫집에 사는 연년생인 지훈과 지호 두 형제를 관찰하여 보고할 뿐입니다. 나머지는 독자에게 맡기구요. 상황으로 보아 아랫집 아주머니는 많이 아프셨나 봅니다. 그래서 자주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그때마다 고작 한 살 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형은 ‘어머니!’ ‘어머니!’ 하고 울고, 동생은 ‘엄마!’ ‘엄마!’ 하고 웁니다. 어머니와 엄마라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묘한 차이. 즉 한 살 차이에 맏이와 막내의 처지가 드러납니다.

  아마도 형은 제 어머니의 죽음을 인지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금 철들어 맏이로서의 자신의 책임을 의식하며 ‘어머니!’ 했다면, 동생은 아직 어려 (철이 덜 들어) 그냥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만 의식해 ‘엄마!’ 했을 겁니다.

  시에서는 한 줄 암시도 없으나 아버지가 안 계시는 걸로 보입니다. 이제 두 아이는 고아입니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 없는 세상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고작 한 살 차이에도 철들고 덜 철든 모습을 보임은 평소 엄마가 '장남'에게 주입시킨 덕이겠지요. '나 없으면 네가 동생을 잘 보살펴야 한다'라고.

  “그런데 그날은 형 지훈이가 엄마, 엄마 울었고 / 동생 지호는 형아, 형아 하고 울었다”

  ‘그런데 그날’, 엄마가 돌아가신 날입니다. 연년생 형제에게 가장 끔찍한 비극이 들이닥친 날입니다. 잠시 철든 자세를 보여준 형도 역시 어립니다. 마지막 순간엔 무너지며 ‘엄마!’, ‘엄마!’ 하며 애타게 울 수밖에요. 동생은 가장 버팀목이던 엄마가 돌아갔으니 의지할 곳이라곤 형밖에 없으니 ‘형!’ ‘형!’ 하며 울고...

  ‘시는 어떤 연극보다, 드라마보다,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는 말에 의문을 갖다가도 이 시를 떠올리면 단박에 동의할 겁니다. 고작 다섯 줄밖에 안 되지만 짧은 시가 만들어내는 극적인 효과, 이렇게 읽는 이를 울리는 능력은 오직 시인 개인의 역량에 달렸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