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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20.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2)

제22편 : 김상미 시인의 '똥파리'

@. 오늘은 김상미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똥파리
                           김상미

  영화 '똥파리'를 보았다. '똥파리' 속에는 '시발놈아'라는 말이 셀 수 없이 나온다. 그리고 그 말은 보통 영화의 '사랑한다'는 말보다 훨씬 급이 높고 비장하다. 지랄맞게 울리고 끈질기게 피 흘리는 그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아무도 없는 강가에 가 소주 한 병을 마셨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시발놈아'를 스무 번쯤 소리쳐 불렀다. 그랬더니 내 가슴 안 피딱지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겁 많은 똥파리들이 화들짝 놀라 모두 후두둑 강물 위로 떨어졌다. 시발놈들!
    -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2017년)

  #. 김상미 시인(1957년생) : 부산 출신으로 1990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이 시인은 「비열한 거리」, 「폭풍 속으로」, 「아비뇽의 처녀들」처럼 영화(드라마)를 보고 난 뒤 만든 시가 꽤 됨


  <함께 나누기>

   「똥파리」는 2009년 상영된 배우 양익준이 감독한 영화입니다. 시를 이해하는데 영화 내용을 꼭 알아야 할 필욘 없으나 알면 조금은 도움 됩니다.

  주인공은 사채 쓴 놈을 찾아가 족쳐 돈 뜯는 게 일과인 용역깡패입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욕하고 각목을 휘두르며 인간쓰레기처럼 하루하루 지냅니다. 그런 일을 하고 그런 부류 인간들과 어울리다 보니 입에서 욕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욕 가운데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은 '시발놈아!'

  시로 들어갑니다.

  "'똥파리' 속에는 '시발놈아'라는 말이 셀 수 없이 나온다. 그리고 그 말은 보통 영화의 '사랑한다'는 말보다 훨씬 급이 높고 비장하다."

  좀 알려진 재래시장 돼지국밥이나 곰탕집에 가면 꼭 욕쟁이 할머니가 계십니다. 시도 때도 없이 무차별 난사하는 욕을 듣고 손님들은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그 욕 들으려 그 음식점에 다시 들른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엔 할머니의 손님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시에서 '시발놈아'라는 욕이 단순한 욕이 아니라 삶의 비장함과 진실이 담겼다고 여기듯이.

  "그리고 목이 터져라 '시발놈아'를 스무 번쯤 소리쳐 불렀다."

  화자는 그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아무도 없는 강가에 가 소주 한 병을 마시면서 '시발놈아' 하고 욕을 내뱉습니다. 그 까닭은 영화 속의 이야기가 바로 지금 우리 사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도 가족 구성원 중 갑(주로 아버지) 행세하는 이가 을(주로 자식)에 가하는 가정폭력이 곳곳에 일어나기에.

  아시다시피 가정폭력은 당사자나 그 피해 가족들에게 그치지 않고 바로 대물림 되는 현상으로 진행됩니다. 극 중 주인공은 자기 엄마와 누나를 죽인 아버지를 극도로 증오합니다. 그래서 그 죄로 감옥형을 살고 나왔지만 그런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어 집에 찾아가 아버지에게 폭력을 일삼습니다.

  가정폭력에 관한 뉴스가 뜰 때마다 종종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습니다. 화자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시발놈아' 하고 욕을 내뱉었겠지요. "그랬더니 내 가슴 안 피딱지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겁 많은 똥파리들이 화들짝 놀라 모두 후두둑 강물 위로 떨어졌"습니다.

  저는 요즘 정치 뉴스 볼 때마다 욕을 내뱉습니다. 다만 소심해선지 시에서처럼 크게 소리 내 외치지 못하고, 구덩이 판 뒤 거기에다 욕을 해댑니다. 누가 저더러 "욕하는 니는?" 할까 봐서. 그래선지 제 안의 숱한 똥파리들은 그대로 살아 활개치고 있습니다.
  혹 욕하고 싶은데 욕 못하고 사시는 분들은 우리 집에 오십시오. 제법 구덩이를 넓게 파놓아 마음껏 욕을 내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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