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4)

제24편 : 주경림 시인의 '행복처방전'

@. 오늘은 주경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행복처방전
                                       주경림

  당신과의 불편했던 관계를 약으로 풀어본다
  가슴이 답답하고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맥을 못 추는 나에게
  약사는 '세월이 약이다'라는 노란 알약을 처방했다
  식후에 한 알씩 사흘을 먹었으나 차도는 조금도 없었다
  뱃속만 더부룩하고 열이 올라 어지러웠다

  '세월이 독이 되었는지'
  더욱 괴로워하는 나에게 다시
  불쾌했던 기억만 선별적으로 골라 지워버리는
  '기억력 감퇴제' 가루약을 주었다
  물과 함께 넘긴 가루약 한 알 한 알이
  식도를 타고 혈관과 말단 신경에 까지 돌아다니며
  마음이 해진 곳을 짜깁기하는 효력을 발휘했는지
  맥박과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약창고에 비상식량을 가득 채워놓는다
  '우울증 치료제' '노화방지제' '주름살 제거제'
  '골다공증 치료제' '치매예방제'---
  온전하고 지속적인 사랑을 위해 '안티 비아그라제'
  소염제와 항생제는 위장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어
  소화제와 함께 복용해야한다

  약이 약을 부르고
  약 기운으로 잠들고 약 기운으로 걸어다닌다
  진짜 행복해지려면
  '죽지 않는 약'은 임상실험실에 가두어야한다
  이제, 밥 먹듯이 약을 먹는다

  #. 주경림 시인(1956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92년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
  현재 성북구에서 목욕탕을 운영하며 열심히 시를 씀.


  <함께 나누기>

  얼마 전 텔레비전을 틀다 우연히 스치는 소제목에 이끌려 잠시 보았습니다. 현직 여의사가 하루에 영양제 30알을 먹는다는 내용. 의사가 무슨 이런 말을 하나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영양제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영양제 사업 연 매출 1000억’이라는 기사가 떴습니다.

  그 뒤로 그녀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보지도 않고 무슨 말을 하든 믿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영양제가 좋다고 한들 하루에 30알이라뇨. 그만큼 먹어야 살 수 있다면 그만큼 영양제를 먹을 만큼 돈 많아야 한다는 뜻인데 가능한 사람이 몇 될까요?

  시의 내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당신과의 불편했던 관계를 약으로 풀어본다”

  너와 나 사이의 불편한 관계는 대화로 풀어야지 약으로 풀 수 없습니다. 헌데 약으로 풀겠다는 이런 발상이 시를 읽게 만드는 요소겠지요. 그러자 역시... 약사의 처방도 독특합니다. '세월이 약이다'라는 노란 알약. 사실 이 약은 약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대답 가능합니다.
  맺힌 갈등을 푸는데 세월만큼 좋은 약이 없겠지요. 나사는 오래되면 녹이 슬어 더 풀기 어려운데, 신기하게도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 스르르 풀릴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세월이 약이겠지요'란 가요도 나왔구요.

  "세월이 독이 되었는지"

  헌데 세월이 약이 되지 않고 독이 돼 더욱 괴로워합니다. 그렇지요, 어떤 기억은 잊히긴커녕 세월이 갈수록 더욱 생생해지니까요. 그러자 약사가 이번엔 불쾌했던 기억만 선별적으로 골라 지워버리는  '기억력 감퇴제' 약을 줍니다. 그러면 효과는 직방이겠지요.

  "나는 약창고에 비상식량을 가득 채워놓는다"

  늙을수록 많이 늘어나는 건 나이란 숫자와 약의 개수랍니다. 건강검진 마치고 나면 해마다 하나씩 불어나 약장을 가득 채웁니다. 시에서 언급한 치료나 예방을 위한 약 말고도 참 많습니다. 게다가 하루아침 한 알 먹는 약부터 매끼 식사 후 먹는 약, 심지어 식사 전에 먹는 약도 있습니다.
  해서 "약이 약을 부르고 약 기운으로 잠들고 약 기운으로 걸어다"닙니다. 약 없으면 불안감까지 느끼니까요. 그럼 행복해지기 위한 단방약은 없을까요? 이는 불사약을 구하려는 행위와 같습니다. 역사상 누구도 성공한 적 없고, 앞으로도 불가능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라는 뜻인데, 행복과 불행 모두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입니다. 그럼 행복한 마음을 가지도록 만드는 약을 구하면 될 터인데, 그런 약 파는 약국이 어디 있을까요?

  *. 아래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