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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22. 2023

목우씨의 산골일기(155)

제155화 : 새들은 겨울에 뭘 먹고살까?

    * 새들은 겨울에 뭘 먹고살까? *



  보름 전쯤 날이 좀 따뜻할 때 우리 집 들어오는 길가 땅이 푹 팬 곳에 흙이 좀 필요해 들통에 담아 옮기려고 삽을 들었습니다. 오른발로 힘껏 삽을 누르며 밟아 한 삽 뜬 뒤 다음 삽을 뜨는데 뭔지 모를 찝찝함에 들이붓기 전 흙을 흘낏 들여다보았습니다.
  아 기분 나쁜 예감은 어찌 그리도 잘 맞는지... 개구리 한 마리가 삽에 담겨 나왔습니다. 언뜻 보니 다리 잘리거나 몸뚱이에 상처 난 부분은 보이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렸고. 금방 뛰쳐나오겠지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꼼짝 않고 있어 혹 개구리가 죽었나 하여 보니 죽은 게 아니라 잠자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땅속 따뜻한 곳 겨울잠에 빠진 녀석을 삽으로 퍼 올린 겁니다. 이내 깨어나리라 여겨 기다렸는데. 너무 깊은 잠에 빠진 덕에 제 부담은 훨씬 적어졌습니다. 만약 깨어나 뛰쳐나갔더라면 이 겨울에... 생각만 해도 아찔했습니다.
  팠던 그 자리에 삽을 다시 살며시 내려놓고 흙을 덮은 뒤 그 위에 등겨도 깔아주었습니다.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려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녀석은 잠을 푹 잘 테고 그때야 일어나서 기지개 켜며 땅 밖으로 뛰쳐나오겠지요.


(눈 내린 달내마을 - 사진첩에서)


  며칠간 강추위가 몰아쳤습니다. 도시보다 산골 추위가 더 매섭습니다. 어제도 마을 한 바퀴 돌다 계곡에 이르러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들리던 물소리가 얼음 아래로 내려간 바람에 소리가 훨씬 작아졌고, 보가 깨어져 물이 한 군데로 모여 작은 폭포 되어 흘러내리다 물이 얼어 빙폭이 되었습니다.
  너무 추운지 오갈 때마다 불쑥 나타나던 고라니도 보이지 않는 대신 꿩과 참새는 가끔 눈에 띕니다. 다른 동물은 추워 피신했건만 새들은 여전히 먹이 활동 중입니다. 새? 참 그렇습니다. 겨울에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물 아닙니까. 다람쥐처럼, 오소리처럼, 너구리처럼, 뱀처럼 겨울잠을 자지 못하니까요.

  눈이 내리면 온통 하양 세상입니다. 산에도 들에도 나뭇가지에도 떨어진 잎에도 쌓인 눈이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습니다. 흰눈으로 뒤덮인 순백의 겨울숲은 보기에는 그림보다 더 좋을지 모르나 모든 게 꽁꽁 얼어붙어 먹이활동을 할 수 없는 동토(凍土)로 변합니다.
  이때가 되면 다른 계절과 마찬가지로 먹이 찾아다녀야 하는 새들은 겨울잠 자는 동물들이 얼마나 부러울까요.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 같은 동물이 그리 하는 데는 여러 까닭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먹이 때문이랍니다. 개구리의 먹이로 알려진 파리, 모기, 메뚜기, 귀뚜라미, 지렁이 등 겨울에 밖에 나다니는 먹잇감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빙폭 되기 전 달내계곡 작은 폭포)


  새 가운데도 겨울잠 자는 새가 전 세계에 딱 한 종류 있다고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와 뉴멕시코 주에 사는 쏙돗샛과의 푸윌쏙독새 (Common Poorwill). 이 한 종류를 빼곤 새는 겨울잠을 자지 않는답니다.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면 꼭 필요한 게 먹잇감입니다. 특히 눈보라 치고, 칼날 같은 바람 부는 날, 먹이조차 구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일 땐 새는 어떻게 겨울을 지날까요? 먹잇감은 추수 끝나 헐빈한 논밭에 혹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이삭 줍기. 아니면 얼지 않은 개울에 헤엄치는 송사리ㆍ피라미ㆍ버들치가 눈에 띄면 좋으나 이것도 가뭄에 콩 나듯 흔치 않으니.


  몇 년 전 태백이(풍산개)가 살았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개와 까치]란 글을 써 배달한 적 있습니다. 한겨울 태백이가 자기 사료를 훔치려 날아오는 까치를 무척 싫어해 물어 죽이기까지 하다가 나중엔 자기 사료통 엎어 까치가 먹도록 해줬다는 내용.
  오래전 일이라 사진을 찍거나 영상으로 남길 생각을 못하다 그때 한 가지 실험해 보았습니다. 까치가 개사료를 정말 먹을까 하고. 눈 내린 날 맨바닥 대신 베니어판에 태백이 사료를 올려놓았습니다. 녀석의 집 바로 앞에. 분명 새는 개를 무서워하니 다가오지 않을 거라 여겼건만.

  다가오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이렇게 점점 늘어나다 십여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아니 길가다 가끔 보지만 겨울엔 그리 많이 보이지 않았건만 어디서 그리 많이 몰려왔는지 깜짝 놀랐지요.


(요즘 새들이 주로 찾는 음식물 쓰레기통)


  요즘 가난한 새들이 먹이 찾아 드나드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 텃밭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통 주변입니다. 원래 봄여름가을엔 음식물을 땅에 파묻으면 그게 썩어 거름이 되니까 그리 합니다. 허나 겨울에는 땅이 얼어 땅을 팔 수 없으니 큰 통에다 넣어둡니다. 봄이 되면 그걸 땅에 부어 거름으로 써구요.

  헌데 어느 날 통에 음식물 쓰레기를 붓고 돌아서는데 머리 위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올려다보자 뽕나무 가지에 까치와 까마귀가 앉아 제 쪽을 보고 소리를 내고. 설마 했습니다만 제가 그곳을 떠나자마자 쓰레기통에 머리를 박았습니다.

  사실 거기엔 먹을 게 별로 없거든요. 녀석들이 좋아하는 열매나 알곡들은 귀하고 주로 반찬찌꺼기라 소금과 고춧가루가 잔뜩 들어갔으니까요. 까치와 까마귀뿐인 줄 알았더니 이내 참새도 몰려왔습니다. 참새는 덩치 큰새들에 밀려 통 속에 머리를 들이밀지 못하고 큰새가 떨어뜨린 걸 주워 먹을 뿐.


(태백이와 까치 사이 일을 그림 - 제가 그리지 않고 아는 이가 그려줌)


  그러다 신기한(?) 걸 보았습니다. 까치 한 마리가 통 속에 든 걸 먹다가 밖으로 내뱉는 것을요. 설마 큰새가 작은새들 먹어라고 내놓는다? 아직까지 의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옛날 태백이가 자기 사료통을 발로 차 넘어뜨려 사료가 산산이 흩어지게 한 걸 보았으니까요.
  그때 사료통에서 떨어져 나온 사료는 마침 까치 십여 마리가 먹기 좋게 흩어졌고.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그때그때 사진을 찍거나 영상으로 남겨둘 걸 했건만. 그러다가 내 머릿속에만 담아둬도 되지 하며 생각을 거두었습니다.

  예전에는 박새 추울까 봐 둥지를 만들어 감나무에 달기도 하고, 좁쌀도 사서 가는 나뭇가지에 통을 매달아 담아두기도 했습니다. 그땐 까치나 까마귀 같은 큰새보다 박새 곤줄박이 멧새 같은 작은새를 위함이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새들의 집은 비나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알을 낳고 부화시키는 곳이랍니다. 그러니 굳이 만들어주지 않아도 된답니다.

  올 겨울 서서히 준비하렵니다. 콩이나 곡류를 사거나 얻어두었다가 때때로 주려고. 이웃에게 얘기했더니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새들이 모두 몰려들 텐데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또 사료를 바닥에 두면 고양이가 새를 노릴 텐데 하면서.


  이럴 땐 좋은 일 하기가 조금 망설여집니다. 착하지 않은 사람이 착한 사람 되기가 무척 힘들다는 걸 느낀 하루입니다.


(새집 만들어 달아줄 정도로 한때 제가 착한 적도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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