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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27.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8)

제28편 : 전숙 시인의 '살처분'

@. 오늘은 전숙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읽기 편하도록 임의로 연 가름함에 양해를 구합니다)


           살처분(殺處分)
                                           전숙

  아버지는 마지막길이라고 사료 대신
  따뜻한 여물죽을 쑤어 먹이셨다.
  안락사주사를 맞은 어미는 죽음의 공포와 고통 속에서
  새끼에게 마지막 젖을 물렸다

  포크레인이 허겁지겁 땅을 파고
  비닐이 깔리고 생목숨들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그리고 세상이 어두워졌다
  몸 안과 몸 밖이 모두 캄캄해져도
  여전히 해는 떴다 지고 달도 차올랐다가 이지러졌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겨울눈에서 새잎이 돋아났다
  공룡이 사라지고 냉동된 매머드가 돌아왔다
  나 혼자 아무리 서러워도
  세상은 무섭도록 침착하게 자전도 하고 공전도 하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자전축이 조금 흔들린 것 외에는
   - [눈물에게](2011년)

  #. 전숙 시인(1956년생) : 전남 장성 출신으로 2007년 [시와 사람]을 통해 등단
  쉰이 넘은 나이에 등단했음이 아쉬워선지 보건소 소장으로 근무 후 퇴직한 뒤 지역과 경계를 뛰어넘는 왕성한 활동을 함


  <함께 나누기>

  '살처분'은 '죽여서 처리하여 치운다'는 뜻인데, 실제로는 '병에 걸린 가축 따위를 죽여 없앰'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관련 뉴스를 찾아보니, 2020년 1월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살처분된 돼지가 47만 마리나 된다고 합니다.

  또 2010년 처음 ‘구제역(口蹄疫)’ 발생 이후 2018년까지 8차례의 구제역으로 38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되었고, 소위 ‘조류독감’으로 불리는 7차례의 조류인플루엔자로 6,90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었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지난 10년간 7,000만 마리의 생명을 가축 전염병 예방이라는 이름으로 죽이고 땅에 묻었습니다. (달리 '살처분' 함) '살처분'이란 용어가 동물복지에 비추어 한참 뒤떨어진 말이라, ‘안락사’니 ‘강제폐기’니 하는 말로 바꾼다는데 그런들 죽여 없앤다는 목적은 똑같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아버지는 마지막길이라고 사료 대신 / 따뜻한 여물죽을 쑤어 먹이셨다.”

  농투사니들에게 소와 개는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는 개를 반려견이라는 이쁜 이름을 붙이지만 시골에서는 그냥 ‘똥개’일 뿐입니다. 우리 부부랑 가장 가깝게 지내던 가음댁 어른 말씀을 옮겨볼까요. 어느 날 어르신께서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소는 개에 비하면 참 억울한 짐승입니다.” 해서 제가
  “아니, 왜요?” 했더니,
  “일하는 소는 평생 죽만 먹는데 노는 개는 평생 밥만 먹으니까요. 다들 소죽이라 하지 소밥이라 하지 않고, 개밥이라 하지 개죽이라 하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사랑하던 소가 입천장이나 발톱 사이에 물집이 생겨 죽음에 이르는 구제역에 걸렸습니다. 게다가 이 질병은 전염성이 아주 강합니다.  아버지는 다른 소를 보호하려고 살처분 대상이 된 소에게 마지막 여물죽을 쑤어 줍니다. 보진 않아도 아마 아버지의 눈에선 눈물이 펑펑 쏟아질 겁니다.

  “안락사주사를 맞은 어미는 죽음의 공포와 고통 속에서 / 새끼에게 마지막 젖을 물렸다”

  화자의 아버지뿐 아닙니다. 살처분 대상이 된 어미소는 새끼에게 마지막 젖을 물려줍니다. 이미 자신의 죽음을 눈치챘습니다. 그렇습니다. 소를 키워본 분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소는 도살장에 끌려갈 때를 대번에 알아차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전날 저녁 식사부터 거른다고 하지요. 새끼를 둔 암소는 그날 밤에 유난히 송아지 몸을 핥고요. 소를 트럭에 싣고 떠나는 날엔 주인은 일부러 밖에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 큰 눈망울이 더욱 커진 모습을 보면 보낼 수 없다니까요.

  “포크레인이 허겁지겁 땅을 파고 / 비닐이 깔리고 생목숨들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 그리고 세상이 어두워졌다”

  살처분 장면입니다. 땅에 강제로 묻히는 광경을 시인은 아주 담담히 묘사하고 있건만 읽는 저는 갑자기 먹먹해집니다. 특히 '생목숨들이 우박처럼 쏟아지고'란 시행에선 그 장면이 바로 눈앞에 그려져 잠시 호흡을 멈춰야 할 정도로.

  "공룡이 사라지고 냉동된 매머드가 돌아왔다"

  아시다시피 공룡은 멸종되었습니다. 그러면 공룡의 화석이 매머드인가요? 아닙니다. 매머드는 코끼리의 화석입니다. 살아있는 공룡은 죽었고 (살아 있던 소도 생매장되었고), 매머드란 화석은 우리 앞에 몸을 드러냈습니다.

  이제 살처분된 소도 시간이 지나면 화석이 되어 드러나겠지요. 수만 아니 수십만 마리가 엉겨 붙어 화석으로 굳은 그 모습에, 후손들은 빙하기에 멸종된 공룡처럼 그 시기에 다시 빙하기가 왔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지도...

  “나 혼자 아무리 서러워도 / 세상은 무섭도록 침착하게 자전도 하고 공전도 하고 있었다”

  이 표현에도 잠시 머뭅니다. 그렇게 산목숨이 생매장되건만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기야 저도 그랬습니다. 뉴스에서 보는 그때 잠시만 ‘좀 안 됐구나!’ 하는 정도일 뿐 금방 잊었으니까요.

  “아무도 모르게 자전축이 조금 흔들린 것 외에는”

  마지막 시행이 또 읽는 이의 마음을 적십니다. 포크레인 작업을 하느라 땅을 팠습니다. 그러면 땅이 조금 흔들렸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지진 정도의 흔들림도 아닌데 지구의 자전축이 흔들리진 않았을 겁니다.
  허나 시인의 마음엔 흔들렸습니다. 아니 제 마음도 흔들렸습니다. 읽는 모든 분들의 마음도 흔들렸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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