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28.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9)

제29편 : 유용주 시인의 '시멘트'

@. 오늘은 유용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시멘트
                                        유용주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자신이 가루가 될 때까지 철저하게
  부서져 본 사람만이 그것을 안다

  - [낙엽](2019년)

  #. 유용주 시인(1960년생) : 전북 장수 출신으로 1990년 첫 시집 [오늘의 운세]를 펴내 뒤, 다음 해 1991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인데, 중국집 배달원, 제빵공장 화부, 신문팔이, 목수, 막노동에 이르기까지 오롯이 몸으로 세상을 살아낸 시인. ‘경험하지 않은 것은 절대 쓰지 않겠다!’는 고집으로 시를 쓰는 시인


  <함께 나누기>

  재작년 손자가 태어나 이름 지을 때 아들 부부가 각자의 성을 따 ‘정유’ 두 글자는 만들었는데 마지막 한 글자를 고민하더군요. 저는 대뜸 ‘강’을 붙여 ‘정유강’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왜냐면 ‘외유내강 (外柔內剛)’의 준말 같았으니까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사나이란 느낌 풍기는 이름이라 저는 좋았는데 아들 부부는 다른 이름을 택했습니다. 아마 요즘은 강한 남자 이미지보다 부드러운 느낌이 더 좋은 듯. 제가 강요할 처지가 아니어서 그냥 그렇게 이름은 정해졌습니다.

  이 시는 아주 짧은 시인데 제가 좋아하는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로 끝나는 정현종 시인의 「섬」과,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와,
  “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 유치환 님의 「낙엽」과,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함민복 시인의 「가을」 등이 거기 포함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더없이 강한 존재로 시인은 시멘트를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주택에 살기 때문에 가끔 시멘트를 사 와 모래와 물을 섞어 콘크리트로 만들어야 쓸 때가 종종입니다.

  시멘트를 비빌 때는 마스크를 꼭 써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시멘트는 바람에 잘 날리고 폐에 들어오면 병을 일으키니까요. 그만큼 가볍습니다. 처음 바람에 날리는 시멘트와 아주 연약한 물을 섞으면 (비록 모래가 들어가지만) 저게 무슨 힘이 있을까 했는데, 얼마 뒤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진 콘크리트를 보며 ‘아 참, 굉장하구나!’ 하며 감탄했습니다.

  “자신이 가루가 될 때까지 철저하게 / 부서져본 사람만이 그것을 안다”

  시인을 알고 이 시구를 읽으면 더욱 다가오는 구절입니다. 시인 소개에서 언급했듯이 오롯이 온몸으로 세상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여러 번 부서지고 또 부서졌을 겁니다. 거기서 얻은 진리라 할까요?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시멘트 재료는 석회암에서 얻습니다. 석회암 광산에서 채굴된 암석덩어리 형태를 조쇄기(Crusher)가 가루로 만듭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멘트가 가루일 때는 힘이 없습니다. 약하디 약한 가루가 모래와 물과 섞이면 최강의 건축재가 됩니다.
 
  시멘트가 모래와 물과 섞이면서 서서히 굳어갑니다. 아주 단단해집니다. 시인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람도 철저하게 부서져 가루가 되어야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을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강한 인간이 될 수 있음을요.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의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대부분 한 번쯤은 가루가 될 수밖에 없는데 그걸 계기로 일어나느냐 쓰러지느냐로 판가름 납니다. 약한 사람은 가루가 될 때까지 부서지기를 두려워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부서져 강한 사람이 되기보단 부서지지 않고 약한 채로 살기를 더 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짧은 시가 주는 큰 울림, 그래서 오늘은 더 의미 있는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