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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29. 2023

목우씨의 산골일기(156)

제156화 : 작지만 강한 개울돌

     * 작지만 강한 개울돌 *


  요즘도 마을 한 바퀴 도는 행사는 줄곧 이어집니다.

  겨울엔 날이 추워 주로 점심식사 후 도는 게 다를 뿐. 일단 소화를 시킬 겸 운동도 되고 거기에 글감까지 찾으면 금상첨화니까요. 어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이번엔 손녀 둘이 방학을 맞아 내려와 있으니 함께 걸었음이 차이 났다고 할까요.
  평소 다니는 길과 달리했습니다. 전에는 운동 중심이라면 이번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을 찾아다녔으니까요. 택한 곳이 개울. 날이 풀렸다고는 하나 거긴 겨우내 응달이라 꽁꽁 언 얼음밭이어서 아이들이 좋아할 장소였습니다.



  손녀들이 노는 틈에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개울을 둘러보니 눈에 띄는 건 돌. 돌. 돌.  참 많습니다. 하기야 조약돌과 몽돌이 개울에 쫙 깔려있으니 어떻게 숫자로 답하겠습니까. 여기저기에 작고 둥근 돌들이 무진장 무진장...

  일반적으로 조약돌은 강(개울)에서 발견되는 둥근돌을, 몽돌은 바닷가에 발견되는 돌로 구분합니다만 둘 다 강이든 바다든 다 사용 가능한 낱말입니다. 모양이 동글동글한 돌이란 점에선 같은데 조약돌이 손안에 쏙 들어가는 자잘한 돌을, 몽돌은 그보다 조금 더 큰 어른주먹 크기의 돌을 가리킵니다.

  가끔 돌을 예찬하는 글을 만나는데 그때의 돌은 조약돌처럼 작은 돌을 가리킴이 아니라 바위나 절벽을 두른 엄청난 크기의 돌을 이르는 말입니다.  윤선도는 「오우가(五友歌)」에서 '수ㆍ석ㆍ송ㆍ죽ㆍ월(水石松竹月)' 이 다섯 가지 자연물을 예찬했지요. 거기에 '돌(石)'을 예찬한 부분만 뽑아봅니다.
   “아마도 변치 아니할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꽃은 피었다간 쉬이 지고, 풀은 푸르는 듯했다간 누렇게 변하는데 바위만은 변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집트 ‘룩소르 신전’을 방문한 사람은 거대 석상(石像)과 석주(石柱 : 돌기둥)에 입을 떡 벌리게 됩니다.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울산바위만 봐도 경외감이 절로 우러나오고. 이렇게 바위는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점과 압도할 만큼 웅장한 크기로 하여 영원함과 거대함, 두 덕목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같은 돌이지만 개울가 조약돌과 몽돌은 어떨까요? 일단 바위나 석상이란 이름 붙은 돌에 비하면 외모가 너무 초라합니다. 겨우 어른 주먹만 한 돌 아닙니까. 호주머니에 넣어도 쏙 들어갑니다. 그래서 몽돌해변이라 이름 붙은 곳에 반드시 이런 경고문이 붙어 있습니다.
  ‘이곳 몽돌을 절대로 갖고 가지 마시오.’
  사실 몰래 갖고 가려면 막을 수 없습니다. 냄비에 댓 개 넣을 수 있고, 호주머니에 두어 개는 들어가니까요.


(룩소르 신전의 거대한 돌기둥)


  떵떵거리며 우쭐대는 큰 바위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없습니다. 아니 어물전 꼴뚜기처럼 돌멩이류 망신을 시키기에 딱 좋습니다. 허면 정말 그럴까요? 개울의 조약돌이나 몽돌은 정말 하찮은 취급을 받아야만 할까요?
  우선 바위나 석상을 봅시다. 해머로 두드리거나 내리치면 귀퉁이라도 부서집니다. 어떤 거대 석상도 울산바위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면 조약돌과 몽돌은? 해머로 내리쳐도 부서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머 되치기에 자칫하면 큰 부상만 입을 뿐.

  작지만 집채만 한 아니 집채보다 큰 바위보다 훨씬 단단합니다. 그렇지요. 오랜 세월 세차게 흐르는 물에 단련돼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졌으니까요. 단순히 둥글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 퍼석한 부분은 다 마모돼 사라지고 단단한 알맹이만 남았으니 더없이 강한 돌이 되었습니다.


(울산바위)


  그러니까 개울가의 조약돌이나 몽돌은 아주 작지만 아주 단단합니다. 파쇄기로도 부수기 힘들 정도로. 그래서 수필 같은 생활글에선 키 작으면서도 단단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종종 쓰입니다.

  요즘 인기를 끄는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메인 주인공으로 강감찬 장군(최수종 분)이 나옵니다.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장군의 키는 151cm 즈음이었다 하는데, 고려 시대 남자 평균 키가 162cm 전후였다 하니 당시로도 작은 키였습니다.
  또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인 전봉준 장군도 키가 152cm에 불과했으며, 이로 인해 콩 가운데서도 작고 단단한 ‘녹두’를 닮았다 하여 ‘녹두장군’이라 불렸습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도 스스로 자신의 키를 160cm라 했습니다. (매체에 따라선 170cm라 하는 곳도 있음)      

  외국으로 가면 키 작으면서 단단한 영웅이 많습니다. 모차르트(153cm), 칸트(158), 피카소(163cm)...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165cm의 단신으로 거구의 유럽 수비수를 돌파해 나갈 때는 작다란 말보다 거대하다란 표현이 들어맞았지요.
  결국 키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 단단한 인간인가 단단하지 않은 인간인가가 문제가 될 뿐.


(어느 바닷가 몽돌)


  달내계곡에도 큰 바위가 꽤나 보입니다. 헌데 이들 바위는 폭우에 밀려 내려가곤 합니다만 그에 비해 훨씬 작은 조약돌과 몽돌은 제 자리를 지킵니다. 작지만 둥글고 자신을 한껏 낮춘 채 바닥에 붙어 있는 자세라 아무리 세찬 물줄기에도 전혀 밀려나지 않습니다.  
  바위가 웅장ㆍ거대함의 대명사라면 조약돌과 몽돌은 둥긂ㆍ몸낮춤이 덕목입니다. 덩치만 작을 뿐 결코 작은 돌이 아닙니다. 그들이 제게 속삭입니다. '둥글게 살아라, 몸을 낮춘 채 살아라, 그러면 너도 단단해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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