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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30.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0)

제30편 : 심재휘 시인의 '행복'

@. 오늘은 심재휘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행복
                          심재휘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보람찬 하루라고 말했지

  창밖은 봄볕이 묽도록 맑고
  그 속으로 피어오르는 3월처럼 흔들리며
  가물거리며 멀어지는 스무 살 뒷모습에 대고
  아니다 아니다 후회했지

  매일이 보람차다면
  힘겨워 살 수 있나

  행복도 무거워질 때 있으니

  맹물 마시듯
  의미 없는 날도 있어야지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있어야지
  -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2022년)

  #. 심재휘 시인(1963년생) :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1997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현재 대진대 문예콘텐츠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함께 나누기>

  우리 집을 들르는 사람들이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야, 직이네요! 완전 신선이 사는 곳이구먼"
  이러고서 덧붙입니다.
  "여기 살면 날마다 행복하겠습니다."

  이 말에 적당히 대답하지만 속으로는 이리 말한다. '아파트 살 때보다 조금 나은지는 몰라도 날마다 행복하진 않습니다.' 아무리 경관 좋은 곳에 살아도 가끔 행복할 뿐 늘 행복하진 않습니다. '행복도 지나치면 멀미를 하기 때문에'

  시로 들어갑니다.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 보람찬 하루라고 말했지"

  아마 화자는 스무 살쯤 되는 아들이 집 나설 때마다 '아들, 보람찬 하루 만들어!' 하고는 등을 한 번쯤 두드려주었을 듯. 대부분의 부모가 학교 가는 자식에게 '오늘도 공부 열심히 하고 와!' 하듯이 특별한 의미 없이 그렇게 인사 건넵니다.

  "가물거리며 멀어지는 스무 살 뒷모습에 대고 / 아니다 아니다 후회했지"

  그런데 그리 해놓고 뜻을 새겨 보니 좀 문제(?)의 소지가 있는 말입니다.
  "매일이 보람차다면 / 힘겨워 살 수 있나"
  그렇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처럼 스무 살이 날마다 보람찰 수도 없거니와 날마다 보람차도 안 됩니다. 보람의 의미가 퇴색하니까요.

  예전 직장에 들어설 때 제 인사는 '반갑습니다!'였습니다. 다들 쓰는 '안녕하세요'가 당신이 현재 안녕한지 아닌지 묻는 것 같아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반갑습니다'를 어느 날 문득 생각하니 나는 반갑다고 하지만 상대는 나를 과연 반갑다고 여길까? 하고 고민했습니다.
  이리 생각하니 인사말에 모순 있는 듯해 '반갑습니까?'로 바꾸었습니다. 반가운 사람만 답하라는 암시로. 그러나 이 인사를 하다 한 달쯤 지나 끝냈습니다. 선생님들이 다들 듣기 어색하다고 하셔서.

  "매일이 보람차다면 / 힘겨워 살 수 있나 // 행복도 무거워질 때 있으니"

  생선회를 무척 좋아하는 남자가 횟집 주인딸과 결혼했다고 합니다. 적어도 휴가 닷새 동안이나마 처가에 있으면 날마다 회를 먹겠지 하며. 닷새 머무는 동안 삼시세끼를 회 달라고 했답니다. 헌데 사흘 지나면서 입안에 비린내가 나는 듯하더니 닷샛날에 급기야 토하고 말았답니다. 보람도 행복도 기쁨도 조금씩 휴식했다가 찾아와야 보람차고 행복하고 기쁘지 날마다 그러면 전혀 그 맛을 못 느끼겠지요

  "맹물 마시듯 / 의미 없는 날도 있어야지 /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있어야지"

  이 시에서 시인이 힘준 부분입니다. 날마다 의미 있는 날을 만들려 하고, 날마다 열심히 노력하며 산다면 얼마나 피로할까요?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날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시는 파랑새가 가까이 있음을 모르고 깊은 숲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을, 주변에 행복의 씨앗이 자라건만 자꾸 멀리서 찾으려는 사람들을 일깨우는 노래입니다.
  문득 이럴 때 쓸 말이 생각났습니다.
  '우리에겐 한 번씩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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