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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31.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1)

제31편 : 최영미 시인의 '한국의 정치인'

@. 오늘은 최영미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한국의 정치인
                                                  최영미

  대학은 그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기업은 그들에게 후원금을 내고

  ​교회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병원은 그들을 위해 입원실을 제공하고

  ​비서들이 약속을 잡아주고
  운전수가 문을 열어주고

  ​보좌관들이 연설문을 써주고
  말하기 곤란하면 대변인이 대신 말해주고

  ​미용사가 머리를 만져주고
  집 안 청소나 설거지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 없고

  ​(도대체 이 인간들은 혼자 하는 일이 뭐지?)
  - [이미 뜨거운 것들](2013년)

  #. 최영미 시인(1961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92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33세에 펴낸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으로 독자의 시선을 끌었으나 문학 외적인 풍문에 휩싸여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평을 들음


  <함께 나누기>

  1994년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집을 내면서 정말 화려하게 등장한 최영미 시인. 1980년대 사랑과 아픔과 상처와 위선을 잘 묘파한 시집으로 평가받으면서 일약 문단의 총애를 받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베스트셀러 시집을 냈어도 그 한 권으로선 생계유지가 만만치 않은 시인의 현실. 그 때문인가요, 시는 변모합니다. 십여 년이 흐르면서 ‘비틀기(풍자)’를 내세워 현실을 비판하는 시를 발표합니다.

  전보다 읽기 불편해졌지만 ‘역시, 최영미!’라는 말을 듣게 만듭니다. 그 가운데 한 작품이 오늘의 시입니다. 오늘 시는 비록 10년 전에 쓰여졌지만 지금 현실과도 별반 차이 없습니다. 아니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전보다 더 박해졌을지 모릅니다.

  오늘 시는 따로 해설이 필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뭉뚱 거려 긁적여 봅니다.

  이 시엔 최영미 시인의 시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둘러대지 않고 단순 명쾌하게 핵심을 향해 돌진하는. 비록 정치인에 한정돼 있지만 사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위선을 확 까발리는 시입니다. 다음을 볼까요?

  “대학은 그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 기업은 그들에게 후원금을 내고”

  속을 들여다보면 정치인들만 더러운 짓함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기업이나 대학도 마찬가지이니까요. 특히 대학이 더 문제지요. 지성의 최후 보루라는 대학마저 권력에 붙을 때가 종종이니까요.

  “​교회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 병원은 그들을 위해 입원실을 제공하고”

  교회만 언급했지만 사찰도 성당도 모든 정치권력과 합세한 종교집단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뿐인가요, 큰 병원도 마찬가집니다.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건 정치인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도대체 이 인간들은 혼자 하는 일이 뭐지?)"

  마지막 시행은 우리들 똥꼬 깊숙이 찌르는 송곳과 마찬가지입니다. 쩌릿쩌릿합니다. 혼자 하는 일이 뭘까요? 잠시 생각해 봅니다. 정말 뭘까요? 쉬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실 일하려고 들면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대통령은 국정 전반을 아울러야 하기에 제대로 잠 잘 여가도 없을 겁니다. 국내는 물론 국제정세까지 살펴야 한다면 말입니다. 국회의원도 그렇습니다. 법안을 내고, 국정을 감시하고, 예산 집행의 방향을 제시하고...
  지자체 단체장과 기초의원들도 마찬가집니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하려면 눈코 뜰 새 있을까요? 그런데 왜 이런 시가 나왔을까요? 아니 이 시에 왜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일까요? 참 참 참...

  쓰고 싶은 말은 많으나 여기서 덮습니다. 비록 저는 정치인은 아니나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저도 한 통속이 되었을지 모르니까요. 오늘 시를 읽으니 제대로 된 정치인 못 만듦은 정치인의 잘못보다 그들을 뽑은 사람들의 책임임을 통감하게 됩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시인이 요즘은 신문에 "최영미의 어떤 시"란 이름으로 연재하고 있더군요. 그렇게 해서라도 시 읽고 쓰는 일에 좌절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2017년 우리나라 ‘미투(Me Too) 운동’을 촉발케 한 「괴물」이란 시를 써 소위 大家 시인의 성추문을 폭로한 뒤 생계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도 힘들어졌다 하니까요.

  *. 사진은 세종시에 건립 예정인 국회의사당 분원 조감도랍니다. 정말 멋진데, 이 멋진 곳에서 멋진 정치 보여줬으면...


  *. 사진은 [국제신문](2022년 5월 22일)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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