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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01.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2)

제32편 : 함민복 시인의 '흔들린다'

@. 오늘은 함민복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흔들린다
                                          함민복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2013년)

  *. 참죽나무 : 봄에 어린 잎사귀가 최고의 쌈 싸먹는 나물로 각광받음. 흔히 지방에 따라 '가죽나무' 또는 '까죽나무'라 하는데 실제 가죽나무는 따로 있음

  #. 함민복 시인(1962년생) : 충북 중원군 출신으로 '88년 [세계의문학] 통해 등단. 오직 시만 쓰며 살다 2011년 쉰 살에 동갑인 여인을 만난 결혼한 뒤 현재 '강화인삼센터'에서 아내랑 인삼을 팔며, 시를 쓰며 산다고 함




  <함께 나누기>

  여러 글벗님들에게 시 배달한 지 23년째로 접어듭니다. 그동안 300여 시인의 시를 5,000편 가까이 배달했는데, 새해 첫날 가장 먼저 배달하는 작품이 함민복 시인의 시입니다.
  제가 우리나라 시인을 극소수만 알지만 감히 말하건대 ‘이 시인보다 착한 시인이 있을까?’ 하고 늘 감탄합니다. 시를 읽어도 그렇습니다. 억지로 쥐어짜내 만든 시가 아니라 저절로 우러나오는 시, 쓴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시를 씁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1연을 봅니다.
  이웃집 익선이형이 참죽나무를 베내려 합니다. 시골에서 나무를 베내 버려야 할 때는 다음 두 가지입니다. 나무가 너무 높이 자라 태풍 불면 넘어져 건물 무너뜨릴 위험이 있을 때와, 나뭇가지가 너무 무성해 그늘 만들어 다른 작물 자람을 방해할 때.

  2연을 봅니다.
  익선이형이 나뭇가지를 벨 때마다 가지의 흔들림이 심해지고, 그 흔들림에 무성한 가지가 부들부들 몸을 떱니다. 가지가 잘리지 않으려는 몸부림보다 그렇게 흔들림으로써 화자는 잘린 부분과 잘리지 않은 부분의 균형을 이루려는 몸부림으로 보았습니다.

  3연으로 갑니다.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가지가 잘려나갈 때의 흔들림을 줄이려 나무가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꺾이면서도 흔들렸기에 덜 흔들렸단 깨달음. 흔들림에 대한 부정적 의미가 시인에 의해 새로운 상징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4연으로 갑니다.
  화자는 그제사 비로소 눈을 뜹니다. 그늘 다스리는 일도, 숨 쉬는 일도, 결혼하여 자식 낳고 직장 옮기는 일도. 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음을.

  그렇습니다. 우리네 삶은 흔들림의 연속입니다. 날마다 아주 사소하게 또는 조금 무겁게 누구나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허나 여기저기에 수차례 흔들린 경험으로 하여 그나마 덜 흔들렸던 겁니다. 흔들림이 다른 흔들림을 막아 바로서게 만든다는 이런 깨우침. 자전거를 배워본 사람은 알 겁니다. 중심을 잡으려면 핸들을 흔들어야 하고, 흔들어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요.

  오늘 새해를 시작합니다. 다들 팍팍한 현실에 흔들릴 일 더 많아질지 모릅니다. 어쩌면 다른 해보다 더한 흔들림이 또 나를 흔들지 모릅니다. 그런 흔들림마저 소중하게 여기고, 좀 흔들려야 사는 맛이 나지 않겠냐는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며 시인은 이 시를 썼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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