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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02.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3)

제33편 : 박남준 시인의 '떡국 한 그릇'

@. 오늘은 박남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떡국 한 그릇
                             박남준

  섣달 그믐
  어머니의 한숨처럼 눈발은 그치지 않고
  대목장이 섰다는 면소재지로 어머니는
  돈 몇 푼 쥐어 들고 집을 나서셨다
  사고 싶은 것이야
  많았겠지요, 가슴 아팠겠지요
  섣달 그믐 대목장날
  푸줏간도 큰 상점도 먼발치로 구경하고
  사과며 동태 둬 마리 대목장을 봐오시네
  집에 다들 있는 것인디 돈 들일 것 있느냐고
  못난 아들 눈치 보며
  두부전, 명태전을 부치신다
  큰형이 내려오면 맛보이신다고
  땅속에 묻어 뒀던 감을 내어 오시고
  밤도 내어 오신다. 배도 내어 오신다
  형님의 방에는 뜨근뜨근 불이 지펴지고
  이불 홑청도 빨아서
  곱게 풀을 멕이셨다
  이번 설에는 내려오것제
  토방 앞 처마 끝에 불을 걸어 밝히시고
  오는 잠 쫓으시며 떡대를 곱게 써신다
  늬 형은 떡국을 참 잘 먹었어야
  지나는 바람 소리
  개 짖는 소리에 가는귀 세우시며
  게 누구여, 아범이냐
  못난 것 같으니라고
  에미가 언제 돈보따리 싸들고 오길 바랬었나
  일 년에 몇 번 있는 것도 아니고
  설날에 다들 모여
  떡국이나 한 그릇 하자고 했더니
  새끼들 허고 떡국이나 해 먹고 있는지...
  밥상 한편에 식어가는 떡국 한 그릇
  어머니는 설날 아침
  떡국을 뜨다 목이 메이신다
  목이 메이신다
  - [박남준 시선집](2017년)

  #. 박남준 시인(1957년생) : 전남 영광 출신으로 1984년 [시인]을 통해 등단. 현재 지리산 주변 하동군 악양면에 살며, ‘지리산 지키미’란 별명이 붙을 만큼 지리산을 사랑하는 시인.



  <함께 나누기>

  오늘도 제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딱 두 번 만났는데 ‘사람의 우물’에 빠지도록 만드는 시인. 전주 모악산 아래 허름한 집을 구해 ‘모악산방’이라 이름 붙인 뒤 12년 살다가, 2003년 하동군 악양면 동매마을로 옮겨와 ‘악양산방’이란 이름으로 둥지를 틀고...
  얼굴 가득히 평화가 흘러 처음 보면 ‘와, 참 부드러운 분이겠구나’ 하는데, 부조리한 사회현상엔 분연히 나서는 결기도 보여줍니다. 2004년 [생명평화 탁발순례단(단장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의 일원으로 역시 지리산 아래 사는 이원규 시인과 함께 전국을 순례했습니다.

  원래 이 시는 어제 배달해야 제 날짜에 딱 맞는데 고민하다가 해마다 올리는 순서대로 했습니다. 함민복과 박남준 두 시인의 시는 읽으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잔잔히 스며들어 가슴에 남습니다.
  어려운 시가 판을 치는 시대에 두 시인의 시집 펼치면 어려운 시 찾기가 더 어렵습니다. 대신에 읽고 나면 다시 꺼내 읽도록 만드는 시가 많고. 오늘 시도 그 가운데 한 편입니다. 시는 좀 긴 편이지만 내용은 해설 없이도 술술 넘어갈 겁니다.


  저는 설날과 오늘 시를 보면서 예전 [수사반장] 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젊은이들 몇이 설 앞두고 월급을 받습니다. 헌데 터무니없이 적고. 특히 한 명은 고향에 계신 늙으신 부모님에게 떵떵거리는 회사 다니며, 직책도 높고, 월급도 많이 번다고 큰소리친 상태였으니.
  그는 자기가 태어나 자란 시골에서 가장 똑똑하였으나 가정형편 상 고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중소기업에 다니던 처지였습니다. 설 앞둔 마지막 월급날 보너스라도 나오면 그걸로 대충 아버지 어머니 옷과 고깃근이라도 사들고 가 대충 인사할 작정이었는데...

  그 해 따라 회사 형편이 좋지 않다고 보너스는 한 푼도 없고 여느 때와 같은 쥐꼬리만 한 월급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 그렇게 빈손으로는 내려갈 수 없고, 자포자기하던 처지에 그의 심중을 읽은 한 동료가 넌지시 말 꺼냅니다.
  너도나도 얼마 안 되는 돈 갖고 고향 갈 수 없으니 우리 네 명이 화투 쳐 딴 사람 한 명이라도 떳떳이 고향 내려가자고. 처음엔 망설였지만 결국 화투장은 펼쳐지고... 예상한 대로 그는 다 잃고 맙니다. 그제사 자신이 녀석의 꾐에 빠졌음을 알게 되고. 설날 아침 고향 집에는 큰아들 대신 형사가 찾아옵니다.


  이처럼 고향을 가고 싶어도 예전엔 들고 갈 게 없어 가족에 미안해 망설인 자식들이 많았습니다. 늙으신 부모님은 그저 보고 싶은 자식이 찾아오면 그만이라지만 자식 입장에선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럴듯한 뭔가를 갖고 가야 성에 차니...
  요즘은 멀리 흩어져 사는 자식들과 둘러앉아 떡국 한 그릇 같이 먹는 일도 쉽지 않은 듯. 올 설에 다들 부모님 찾아뵈었는지. 저는 두 분 하늘로 가신 지 20년이 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습니다만.

  “늬 형은 떡국을 참 잘 먹었어야 / 지나는 바람 소리 / 개 짖는 소리에 가는귀 세우시며 / 게 누구여, 아범이냐”
  바람 소리, 개 짖는 소리에도 쫑긋하며 떡국을 좋아하는 큰아들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시는 어머니. 그 어머니가 계시는 곳은 어디나 고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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