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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26.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7)

제27편 : 박명용 시인의 '빗속에 빛나다'

@. 오늘은 박명용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빗속에 빛나다
                              박명용

  키 작은 들꽃
  몇 송이
  풀 속에 숨다.
  낮출 대로 낮춘
  달팽이 하나
  제 몸에 숨다.
  보석보다 더 소중한
  수줍음
  빗속에 빛나다.
   - [하향성](2012년)
 
  #. 박명용 시인(1940 ~ 2006년) : 충북 영동 출신으로 197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대전의 대표시인으로 대전대 문창과 교수로 시 쓰고 가르치다 재직 중에 별세함
 

  <함께 나누기>

  문예창작과 교수들의 시는 배달하기 참 편합니다. 이분들 가운데 시를 어렵게 쓰는 시인이 드뭅니다. 쉽고 생각거리를 던져주니 참 좋습니다. 헌데 이렇게 편한 시 쓰는 시인에게 배운 제자들의 시는 왜 그리도 어려운지. 교수가 수업시간에 "나처럼 쉬운 시는 쓰지 마라." 했을 리 없건만.

  예전 남녀공학인 중학교에 근무할 때 한 남자애가 늘 교복이 헐렁한 채로 입고 다녔습니다. 처음엔 ‘어머니가 아이 클 때 생각해 일부러 큰 옷을 샀구나.’ 했는데 학부형 상담하러 와 얘기 나누는 중에 뜻밖의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가 일부러 큰 옷을 사 달라고 한답니다. 어머니는 걔 체구에 맞는 옷을 입히고 싶었는데. 그래서 물었더니... 덩치가 작아 급우틀이 자꾸 자기를 보면 깔보거나 귀엽다고 하더랍니다. 남자애는 물론 심지어 여자애들조차. 그래서 덩치 크게 보이려고 큰 옷을 입는다는.

  다들 작은 것을 약하게 여겨 하찮게 보는 경향입니다. 그러다 보니 얕잡아 보고 함부로 대합니다. 작은 것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스스로를 낮추고 숨기기 일쑤입니다. 언뜻 보면 수줍음이 많아 보이는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시에서도 그런 게 보입니다. 들꽃 가운데서도 키 작은 들꽃, 또 땅에 붙어 다니는 낮출 대로 낮춘 달팽이. 들꽃은 키가 작아 비가 내리면 풀 속에 숨습니다. 달팽이는 비가 오면 집 속에 몸을 숨깁니다.
  언뜻 보면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굉장히 약한 모습입니다. 헌데 다시 보면 그만큼 안전한 장치도 없습니다. 비바람 불어도 낮게 자리하면 키 큰 들꽃보다, 키 큰 동물보다 덜 위험합니다. 가장 안전한 상태로 위험을 벗어납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 모습을 이리 표현했습니다.
  “보석보다 더 소중한 / 수줍음 / 빗속에 빛나다”

  작다고 해서, 하찮아 보인다고 해서, 자기를 낮춘다고 해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만만히 보아선 안 됩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높이려 하고, 젠 체 하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존재들보다 훨씬 실속 있게 살아갑니다.

  작고 낮게 깔린 존재들의 의미를 살려주는 이 시는 내면으로는 거꾸로 세상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이들을 비판합니다. 자기만이 세상에 최고인 양 뻐기는 인간들, 자기만이 가장 잘났다고 으스대는 인간들에게 이 시는 ‘보아라, 작은 것들이 얼마나 멋진가!’ 하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작은 들꽃, 몸을 낮춘 달팽이, 바닥을 기는 지렁이... 이들은 빗속에서 더욱 빛나는 존재가 됩니다. 남들이 하찮다고 여기는 그런 존재들이 어느 한 시점에선 가장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이 시는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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