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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25. 2023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6)

제26편 :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

@. 오늘은 김종길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에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의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성탄제](1969년)

  #. 김종길 시인(1926년 ~ 2017년) :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인이며 영문학자로 고려대 교수로 근무하다 퇴직한 뒤에도 시를 쓰시다 91세의 나이 하늘로 가심


  <함께 나누기>

  오늘 시는 너무나 알려진 김종길 시인의 대표작입니다. 성탄 무렵에는 꼭 언급되는 시이기도 하구요.

  시로 들어갑니다.

  화자는 시골 사는 어린이입니다. 그리고 화자에겐 아버지와 할머니만 계십니다. 몹시 추운 겨울, 갑작스럽게 열이 나면서 생명의 위험까지 느낍니다. 지금도 어린아이가 열이 나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특히 한밤중에 40° 가까운 고열(高熱)이 오른다면 무조건 병원 응급실에 가야 합니다.

  이 시가 처음 발표된 1955년 무렵, 시골에 눈이 많이 내린 날에 아이는 엄청난 열로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시골에서 병원은 그림의 떡. 아이는 점점 기력이 빠지며 죽음에 가까이 접근합니다.

  그때 아이의 아버지가 나섰습니다.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눈길을 헤치며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건 마지막 희망은 산수유 열매. 길을 잃거나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을 수도 있지만 오직 아들 생각하며 산수유 열매 찾아 산속으로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내 아버지는 빠알간 산수유 열매를 찾아 따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가 그 열매를 달였고 아이는 달인 약을 먹고 살아났습니다. (한방에선 해열제로 최고의 약재가 산수유 열매랍니다)

  아이는 자라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눈 속을 헤치며 산수유 열매를 따온 그날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죄인들을 구원하려 당신의 목숨을 바친 그리스도처럼, 아들의 목숨을 구하려 죽음을 각오하고 산속으로 들어가신 아버지가 동일시되었기에.

  헌데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 먹은 나는 과연 내 아이들에게 그때의 아버지가 해준 것처럼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나 고개를 흔들 뿐. 오늘도 어른이 된 화자가 사는 도시에는 옛날 그때처럼 반가운 눈이 내리는데 갑자기 그때의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나를 위해 서슴없이 한 치 앞도 모르는 눈 속에 몸을 던진.


  세계는 전쟁으로, 홍수로, 눈사태로, 지진으로, 극심한 추위로, 기아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제가 어려운데 정치권은 오직 제 욕심만 내세우며 치달리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이 그리스도께서 걸었던 발자취 생각하며 평화롭고 따뜻해지기를 잠시 기도해 봅니다.

  *. 사진은 [한계레신문](2018년 1월 16일) '이호균의 풀·꽃·나무 이야기'
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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