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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04.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5)

제35편 : 안도현 시인의 '양철 지붕에 대하여'

@. 오늘은 안도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양철 지붕에 대하여
                                   안도현

  양철 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그럼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 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나는 수없이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으나
  실은 두드렸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빗소리였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맨 처음 양철 지붕을 얹을 때
  날아가지 않으려고
  몸에 가장 많이 못 자국을 두른 양철이
  그놈이 가장 많이 상처 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너는 눈치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쉽게 꺼내지 말 것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 가고 싶다 라든지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 않겠다 라든지
  그래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

  생각해 봐
  한쪽 면이 뜨거워지면 그 뒷면도
  함께 뜨거워지는 게 양철 지붕이란다
  -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2019년)

  

  #. 안도현 시인(1961년생) : 경북 예천 출신으로 1981년 [대구매일]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40년 넘게 전북 전주 부근에서 살다가 3년 전에 고향인 경북 예천 학가산 아래로 옮겼으며, 현재 단국대 문창과 부교수



  <함께 나누기>

  제가 작년 12월 7일, [목우씨의 집 이야기]란 그림책을 펴낸 뒤 북콘서트 대신 글로 적어 배달했습니다. 그림이 모두 9장이었는데, 한 장에 양철 지붕으로 된 팔칸집에서 살던 시절 얘기를 언급한 적 있습니다.
  지금도 선합니다. 바람 불면 지붕이 들썩들썩하며 내는 소리에, 비 내릴 때면 양철을 두들기는 따발총 소리에, 지붕에 녹슬지 말라고 발라놓은 콜타르가 한여름 땡볕에 달궈져 녹아 뚝뚝 흘러내리다 옷에 묻어 질겁하던 모습도...
  저보다 한참(?) 어린 나이이건만 같은 경험을 했는지 시인은 그때의 추억을 잡아 전혀 다른 시로 만들었습니다. 안도현 시인에 대해선 다른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현재 가장 공감력 높은 시를 쓴다란 평가를 받으니까요. (제 주관이 많이 담긴 평이니 딴지 걸지 마시길)

  오늘 시는 길지만 읽으면 쑥쑥 들어오기에 일일이 해석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래도 습관상 대충 적어봅니다.

  “양철 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 그럼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바람이 불면 양철 지붕이 흔들려 그르렁거린다고 알고 있는 우리에게 시인은 다소 뜻밖의 말을 합니다. 그럼 무슨 다른 뜻이 있을까요? 양철 지붕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으려 몸에 두른 못 자국이 상처 입어 (녹슬어) 아파서 지르는 비명임을 알아야 한다고.

  “삶이란 / 버선처럼 뒤집어 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참 이런 표현은 버선을 뒤집어 보고 거기에 실밥 많음을 본 사람은 바로 다가오리라 여깁니다. 이럴 때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꼭 경험해 보아야만 아는가? 아닙니다. 작품 속의 수많은 표현을 이해보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가 더 많으니까요.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빗소리였으나 / 보이지 않기 때문에 /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나는 수없이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다'란 표현에서 양철 지붕은 그대 마음을 비유한 시어임을 알게 됩니다. 나는 당신에게 숱하게 사랑한다는 메시지 전했으나 당신에게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건 내 사랑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진심을 전하는 방법의 서투름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두들기려 애쓴 게 오히려 당신을 힘들게 했을지 모르나 그대여 이것 하나만은 알아주십시오, 당신을 향한 절실한 내 사랑을.

  “몸에 가장 많이 못 자국을 두른 양철이 / 그놈이 가장 많이 상처 입고 /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 들어야 알듯이 당신을 알려면 당신 마음의 상처를 알아야 함에도 나는 소홀했습니다. 못 자국은 당신의 아픔이고, 녹슬어 흘러내리는 벌건 물은 피울음이건만 내 사랑은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서툴러 당신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 쉽게 꺼내지 말 것"
  사랑은 깊이는 있어도 무게는 무척 가볍습니다. 사랑의 언어는 은유인데 '당신을 좋아한다, 사랑한다, 오직 당신뿐이다' 이런 직설화법에만 급급했습니다.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 가고 싶다',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 않겠다' 하는 이런 표현이 필요했건만.
  
  "생각해 봐 / 한쪽 면이 뜨거워지면 그 뒷면도 / 함께 뜨거워지는 게 양철 지붕이란다"
  그렇지만 이젠 압니다. 양철 지붕 한쪽이 뜨거워지면 그 뒤쪽도 함께 뜨거워지듯 그대 향한 내 사랑의 열정이 당신을 달구게 할 것임을. 비 오는 날 양철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열정 어린 소리가 그대 가슴을 두드려 그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픈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아시겠지만 당신을 연인의 뜻으로 풀이한 건 해설의 편의를 위함이지 실제론 다양한 함축적 의미를 지니니 그 점을 이해하면서 풀어 봄이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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