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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05.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57)

제157화 : 시골쥐와 도시쥐


   * 시골쥐와 도시쥐 *


   (1) ‘이솝우화’에서

  이솝우화에 ‘시골쥐와 도시쥐’가 나옵니다. 이미 다 아시겠지만 기억을 상기시키려 대충 줄거리를 적습니다.

  “시골쥐와 도시쥐는 친구였는데, 어느 날 도시쥐가 시골쥐의 집에 놀러 왔다. 도시쥐는 시골쥐가 대접한 음식이 너무 형편없어 먹지 않고 시골쥐를 도시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도시쥐는 시골쥐에게 도시 구경을 맘껏 시켜줬으며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맛있는 음식도 대접했다. 시골쥐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보다 휘황찬란하고 먹거리 많은 멋진 곳에 사는 도시쥐를 부러워했다.


  그런데 도시쥐와 시골쥐가 식탁에서 함께 음식을 먹고 있을 때 고양이가 들이닥쳤고 둘은 간신히 쥐구멍으로 달아났다. 고양이가 돌아간 걸 확인한 후 다시 나와 음식을 먹는데 이번에는 사람이 들어오는 걸 보고 다시 쥐구멍으로 꽁무니가 빠지게 줄행랑쳤다.
  보리나 땅콩, 밀 같은 초라한 것들만 먹다가 도시에 온 후 화려한 삶과 맛있는 음식을 부러워했던 시골쥐.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무서운 도시보다는 변변찮은 음식을 먹어도 시골에서 평화롭고 조용하게 사는 게 더 낫다 여겨 다시 시골로 돌아갔다.”


(우화 이미지컷 -  구글 이미지에서)


  (2) 땅콩 농사 망쳐버린 녀석은?

  작년 가을 땅콩 수확할 때 일입니다. 재작년에도 땅콩 심었는데 두더지 때문에 완전히 망쳤습니다. 줄기가 튼튼하고 잎도 무성해 제법 거둘 줄 알았는데 웬걸, 줄기를 당기니 헐빈했습니다. 줄기를 따라 올라온 건 빈 껍데기뿐.
  작년 봄에 땅콩 모종 사와 심을 때 재작년의 실패를 겪지 않으려 틀밭 바닥에 아예 망(網)을 깔았습니다. 그러면 두더지가 망을 뚫고 올라오지 못합니다. 결과는? 역시 실패. 줄기에 빈 껍질만 주렁주렁 올라왔으니까요. 얼마나 화가 나든지... 당장 틀밭을 파헤쳐 아래쪽 망을 살펴보았습니다.

  틀림없이 두더지가 망을 이빨로 끓어버리고 올라와 먹었다 여겼는데? 말짱했습니다. 망이 뚫린 흔적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참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닙니까. 그러면 두더지가 나무울(타리) 타고 올라와 틀밭 들어가 땅콩을 먹었다?
  아무래도 두더지가 나무울을 타고 오르는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싶어 생각을 달리했습니다. 혹 두더지 아니라면? 두더지가 아닌데 땅속 뿌리식물을 먹기 위해 땅을 파고드는 녀석이 또 있다?


(두더지는 저 정도 높이의 틀밭 나무울도 타고 오르지 못함)


  마침 아랫집 사는 이웃이 들렀다 보곤 두더지가 아니라 들쥐 짓이라 했습니다. 들쥐? 처음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들쥐가 땅속을 파고든다?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가 힘주어 말했습니다. 자기 밭에서 들쥐가 땅 파고 들어가 땅콩밭 작살내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노라고.

  그 집에도 땅콩을 심었습니다. 제가 시장에 가 모종 사와 나눴으니까요. 그가 직접 보았다면 의심할 건덕지가 없습니다. 정말로 두더지 아닌 들쥐가 땅콩을 파먹었다? 그러고 보니 의심 나는 점이 보였습니다. 바로 위에서 아래로 푹 뚫린 구멍 몇 개.


   (3) 울산 도시쥐 이야기

  오래전 울산 동구 이천세대 살 때 일입니다. 제가 쓴 [목우씨의 집 이야기]에 나오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잠을 자는데 달그락달그락하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처음엔 테라스에 널어둔 소쿠리가 바람에 날리며 내는 소리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한번 살펴봐야지 하며 다시 누웠는데 잠시 후 또 들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귀 기울이니 이번엔 테라스 쪽이 아니라 거실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했습니다. 뭔가 살짝 부딪혔다 떨어졌다 하는 것처럼.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라 계단을 타고 쥐가 오르내릴 수 있었음)


  혹 창문이 열려 들어온 바람에 파리채나 효자손이 흔들리며 나는 소리겠지 하며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허나 잠들라치면 들려오고 또 들려오고. 잠결에 일어났다 다시 누웠다를 반복하다 결국 그날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말았습니다.
  다음날입니다. 거실 곳곳을 샅샅이 훑었습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셜록 홈즈처럼 뒤지고 다니자 드디어 뭔가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피아노 아래 나무 조각인 듯 과자 부스러기인 듯, 자잘하게 부서진 게 보였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저 부스러기의 정체를 짐작했으니까요. 바로 쥐가 갉아먹은 흔적입니다. 당시 우리 집은 이층이었으니까 쥐가 계단 타고 올라올 수 있었고, 아이들이 드나들며 문 열어놓기도 했으니 쥐가 들어오기 가능했습니다.
  문제는 다른 가구는 옮길 수 있으나 당시의 피아노는 엄청나게 무거워 옮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더욱 피아노 속에 쥐가 머문다면 옮기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니 이웃을 초청해 함께 들자고 할 수도 없는 일.


(피아노 발판 사이 구멍을 통해 쥐가 들어감)


  마지막으로 꾀를 낸 게 쥐덫을 거실 한가운데 설치한 뒤 먹잇감을 주변에 흩어놓아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계책. 헌데 녀석의 지능이 높은지 쉽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쥐의 존재를 알고 나니 거실 가기가 무섭고 징그러워 밤낮으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마침내 나흘째 되던 날 밤, 갑자기 들려온 쥐 비명소리. ‘걸렸구나!’ 하는 안도감에 나가보니 예상대로 제대로 목이 졸린 상태. 그리고 우리 가족은 쥐의 공포에서 벗어났고 사건은 막을 내렸습니다. 허나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피아노 상태를 보려 온 조율사가 잠시 뜯어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큰일이네요. 중요 부분을 건드려 비용이 꽤 나오겠는데요.” 다시 목돈 들여 피아노 고치느냐로 고민하다 어차피 중고였던지라 포기하자, 영창피아노는 우리와 인연을 끊고 청소부의 손에 넘겨져 어느 시골 아궁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머리 내민 두더지는 잘 보기 힘듦)


  (4) 끝내면서

  시골쥐도 도시쥐도 징그럽긴 마찬가집니다. 녀석이 한 번 헤집어 놓으면 피해를 입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니 도시쥐가 더 무섭습니다. 시골쥐야 땅콩 덜 먹으면 되지만 도시쥐는 두려움까지 안겨주고 재산상 피해까지 주잖아요.
  그러고 보니 ‘시골쥐와 도시쥐’ 우화 내용대로 시골쥐가 조금 더 낫군요. 아니 이제 도시에선 쥐가 없겠지요. 그럼 시골보다 낫습니다. 어제 텃밭에 들렀다 뻥 뚫린 쥐구멍 보니 10월 중순쯤 초안 잡았던 글이 생각나 계절엔 안 맞으나 조금 손대 올립니다.

  올봄에 할 일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두더지 퇴치에 이어 들쥐 퇴치 방법 모색해야 하므로. 제발 좋은 방법이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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