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06.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6)

제36편 : 구순희 시인의 '우끼는 택배'

@. 오늘은 구순희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우끼는 택배
                             구순희

  어마야, 이기 무신 일이고
  가시개로 끄내끼를 짜르고
  보루박꾸를 열었디마는
  모티 있는 꿀캉 지렁도 꺼꿀고
  여불때기 메루치 코짱베기에도
  양가세 있는 오그락지에도
  늙은 호박 몸띠 우에도 노랑 꽃가리분
  꼬장에도 이뿐 꽃을 억수로 피운기라
  천 리를 새빠지게 달려오다가
  백지 보루박꾸 창시가 터지고
  거 안에 갇치 있던 노랑 웃음도
  거세를 몬 참고 있던 폭죽을 떠뜨린기라
  범인은 빼짝 말른 기장 다시마
  피해자는 송화가리 봉다리 기타 덩덩
  뽀족한 기 부드러운 거를 찔러뿌가지고
  각제 천지가 환한기
  거렁지지던 가실 맴에 봄바람 드는
  이 일을 우야꼬
   - [내려놓지 마](2011년)

#. 구순희 시인(1952년생) : 경남 양산 출신으로 1981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내려놓지 마] [수탉에게 묻다] [내 안의 가장 큰 적] [군사우편] 등의 시집을 펴냄



 <함께 나누기>

  간혹 표준어에 집착하는 이들이 '사투리는 틀린 말이니 쓰지 말자'란 주장을 합니다. 허나 사투리는 표준어의 ‘틀린’ 말이 아니라 ‘다른’ 말입니다.  오늘 시는 경상도 사투리에 익숙한 사람 아니면 읽기 힘듭니다. 해독이 어려울까 봐 미리 번역본(?)부터 올립니다.
 
  "어마야, 이게 무슨 일이고 / 가위로 끈을 자르고 / 종이상자를 열었더니만,
  모퉁이 있는 꿀과 간장도 넘어져 있고 / 옆의 멸치 콧잔등에도 / 양쪽 가에 있는 무말랭이에도 / 늙은 호박 몸 위에도 노랑 꽃가루 분 / 고추장에도 예쁜 꽃을 많이 피웠던 것이라
  천 리를 혀 빠지게 달려오다가 / 괜히 종이상자 창자(옆구리)가 터지고 / 그 안에 같이 있던 노랑 웃음도 / 그 사이를 못 참고 있던 폭죽을 터뜨린 것이라
  범인은 비쩍 마른 기장 다시마 / 피해자는 송홧가루 봉지 기타 등등 / 뾰쪽한 것이 부드러운 것을 찔러서 / 갑자기 천지가 환한 것이 / 그늘지던 가을 맘에 봄바람 드는 / 이 일을 어찌할꼬"

  '웃기는 택배'란 제목에서 내용을 잠시 훑어봅니다. 누가 누구에게 보낸 지는 즹확히 알 수 없으나 시골 사는 어머니가 딸에게 붙인 택배로 여겨 해석하면 수월할 듯합니다. 바짝 마른 기장 다시마는 칼처럼 날카롭습니다. 그게 택배상자 안에서 송홧가루 봉지를 터뜨립니다. 노란 송홧가루가 흩날리며 상자 안을 온통 노란빛으로 물들이고.

  구석에 있던 꿀통과 간장통도 넘어져 난장판인 상황입니다. 이를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읊습니다. 그 가운데 표현이 뛰어난 부분을 봅니다.

  "거 안에 갇치 있던 노랑 웃음도 / 거세를 몬 참고 있던 폭죽을 떠뜨린기라"
  택배상자를 여니 시골서 부쳐져 온 농산물이 뒤섞여 뒤죽박죽 난리도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런 난감함을 웃음으로 표현했습니다. 물론 '노랑 웃음'을 송홧가루라 해도 되지만 그보다는 농산물이 터져 어우러진 광경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으리라 여깁니다. 부친 분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 않으련만 화자는 오히려 거기서 따뜻한 정을 느꼈음일까요.

  "뽀족한 기 부드러운 거를 찔러뿌가지고 / 각제 천지가 환한기 / 거렁지지던 가실 맴에 봄바람 드는 / 이 일을 우야꼬"
  바짝 마른 기장다시마가 칼날이 되어 송홧가루 넣어둔 비닐봉지를 찔렀으니 터질 수밖에요. 그러니 노랑 웃음이 보였고. 노랑 웃음이 만들어낸 세상에 갑자기 그늘지던 가을날 같은 마음에 밝은 봄바람 같은 마음이 깃듭니다.


  비록 농산물이야 엎질러져 조금 손해를 보겠지만, 보내준 이의 따뜻한 정성이 우울하게 지내던 화자의 심사를 풀어준 셈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산골일기(15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