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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10.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0)

제40편 : 천양희 시인의 '벌새가 사는 법'

@. 오늘은 천양희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벌새가 사는 법
                               천양희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70만 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내 몸을 쳐 시를 쓰나
  - [너무 많은 잎](2005년)

  #. 천양희 시인(1942년생) : 부산 출신으로 이화여대 재학 중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현재 상계동 작은 아파트에 가족 없이 전업시인으로 살면서 팔순 지난 나이에도 열심히 시를 씀.




  <함께 나누기>

  사람마다 가슴에 명언(속담, 격언) 몇 개는 숨겨둘 테고, 글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수필이나 시도 품을 테지요. 노래나 그림도 마찬가집니다. 저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거나,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둔 그림을 시시때때로 보며 마음의 위안도 얻고...
  이런 작품 말고도 자신이 흔들릴 때면 찾아가는 곳도 있을 테고, 만나고픈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저는 아무래도 글을 만지다 보니 나태와 안일에 찌들어 늘 하는 일들이 귀찮아질 때 시나 수필을 꺼내 읽습니다.

  오늘 천양희 시인의 「벌새가 사는 법」이란 작품도 품속에 두고 꺼내 읽는 시인데, 읽을 때마다 저를 확 일깨워 줍니다. 짧은 시가 주는 긴 여운, 외우기 적당한 길이인데 책갈피에 넣어두고 흔들릴 때마다 꺼내 한 번씩 읊조려 보시길.

  시로 들어갑니다.

  우리 몸에서 빠르게 운동하는 부위 가운데 맥박은 1분에 60~70회 정도 뛰고,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숨도 고작 16~17번 정도에 그칩니다. 또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1분에 100보 정도, 육상선수라도 1분에 600m 정도밖에 못 갑니다.
  그런데 새 가운데서도 몸집이 아주 작은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떠 있고’ 바다에 쉬지 않고 밀려드는 ‘파도는 하루에 70만 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 낸다’고 합니다.

  이를 1분으로 환산하면 벌새는 1분간 5,400번이나 날개를 쳐야만 부동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파도는 1분간에 500번을 밀려왔다 밀려가며 소리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모두 우리 몸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는군요.
  시인은 벌새와 파도의 행동을 흔한 자연물의 움직임이 아니라 스스로를 단련하는 모습으로 보았습니다. 저렇게 열심히 자신을 반성하며 채찍질하는데 시인인 나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얼마나 수련하는가 하며.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 내 몸을 쳐 시를 쓰나”
  언뜻 보면 시 쓰기 위해 얼마나 스스로를 담금질해야 하는지 묻는 내용입니다. 허나 우리는 알지요, 꼭 시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님을. 어떤 작은 일이라도 성취를 위해선 부단한 노력과 피눈물 나는 아픔과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한다는 뜻임을.
  절차탁마(切磋琢磨)라 하여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라는 뜻의 한자성어를 잘 아실 겁니다. 학문이나 인격을 갈고닦음에 조금도 망설이지 말고 쉬임 없이 나아가라는 뜻 담았음을.

  시인 소개를 조금 더 붙입니다.

  이화여대 재학 중에 문재(文才)를 드러내 시인이 되었고, 같은 길을 걷는 남편(정현종 시인)을 만나 아들 낳고 살아 행복만 가득하리라 했는데, 갑작스러운 남편의 이혼 통고에 이어 아들과의 생이별, 그리고 거듭된 부모님 사망으로 죽음만 생각하던 시인에게 생의 의지를 되찾게 해 건 바로 시.
  이런 시인이 시를 쓸 때 아직도 ‘단련 · 수련 · 담금질’이 모자라 반성하고 있으니 저 같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천양희 시인이 시인이 되려고 하는 후배들에게 남긴 시 덧붙입니다.

    - 시인이 되려면 -

  시인이 되려면
  새벽하늘의 견명성(見明星) 같이
  밤에도 자지 않는 새같이
  잘 때에도 눈뜨고 자는 물고기같이
  몸 안에 얼음세포를 가진 나무같이
  첫 꽃을 피우려고 25년 기다리는 사막만년청풀같이
  1kg의 꿀을 위해 560만 송이의 꽃을 찾아가는 벌같이
  성충이 되려고 25번 허물 벗는 하루살이같이
  얼음구멍을 찾는 돌고래같이
  하루에도 70만 번씩 철썩이는 파도같이

  제 스스로를 부르며 울어야 한다

  *. 가운데 벌새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벌새가 부동자세가 필요한 까닭은 사진에서 보다시피 나뭇가지에 앉지 않은 채 꽃 속의 꿀을 빨고 벌레를 잡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이는 헬리콥터가 순간 정지하는 원리와 같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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