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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11.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1)

제41편 : 서정홍 시인의 '가장 짧은 시'

@. 오늘은 서정홍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가장 짧은 시
                             서정홍

  아랫집 현동 할아버지는
  몇 해째 중풍으로 누워 계신 할머니를
  혼자 돌보십니다.

  밥도 떠먹여 드려야 하고,
  똥오줌도 혼자 눌 수 없는 할머니를
  힘들다 말 한마디 하지 않으시고...

  요양원에 보내면
  서로 편안할 텐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이웃들이 물으면,
  딱 한 말씀하십니다.

  “누 보고 시집왔는데!”

  - [못난 꿈이 한데 모여](2015년)

  

  #. 서정홍 시인(1958년생) : 경남 창원 출신으로, 워낙 가난한 환경에 야간중학교를 끝으로 학교와 단절했는데,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의 영향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 현재 합천군 한 시골마을에서 '열매지기 공동체’, ‘담쟁이 인문학교’ 열어 이웃들과 함께 배우고, 청년 농부를 돕는 일에 애쓰고 있음.


  이 시인 이름은 못 들어봤어도 ‘58년 개띠’란 말은 자주 들어봤을 겁니다. 바로 이 시인이 펴낸 [58년 개띠]란 시집이 나온 뒤 그 말이 유행하게 되었지요.



  <함께 나누기>


  마을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어르신 부부를 만납니다. 할아버지는 아흔에 가까워가고 할머니는 여든을 넘기신. 할머니가 십여 년 전에 중풍이 와 한쪽 다리를 제대로 못썼지만 그래도 유모차(보행보조차)에 의지해 끌고 다니셨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증세가 악화돼 나다니기 어려워 보기 힘들었는데 며칠 전 날씨 따뜻할 때 유모차 대신 휠체어 밀고 나서는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처음엔 어디 병원 가시는가 하여 할아버지께 제가 밀고 가겠다 했더니 어르신 말씀이 운동하는 거랍니다.
  할머니가 계속 집에만 계시다 보니 밖에 나가고 싶고, 할아버지는 할머니 휠체어를 밀면 운동이 된다는 뜻. 두 분의 뒷모습 한참 바라보며 잠시 먹먹하다가 한편 참 아름다운 그림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렇게 병이 들어도 함께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요즘엔 도시에도 아픈 어르신이 많지만 시골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어느 한 군데는 몸이 불편하십니다. 젊을 때 기계 없이 밭 갈고 무거운 짐 지게로 나르는 게 할아버지들의 일상이었다면, 머리에 무거운 물동이 이고 나르는 일은 할머니들의 몫. 모두 허리에 무리 주는 중노동이라 나이 들어 그 후유증이 고스란히 몸에 남을 수밖에 없겠지요.
  최근 시골에 많이 생기는 건물은 전원주택이 아니라 노인 요양시설 아니면 요양병원이랍니다. 이 둘을 가리키는 용어가 생겼으니 '현대판 고려장'이라 하더군요. (저는 노인성 질환자는 집에 모시기보다 그런 시설이 더 낫다 여겨 이 용어가 불편합니다만)

  부부가 같이 살다 어느 한쪽이 병들면 배우자가 끝까지 함께 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시의 주인공도 그렇습니다. 이웃사람들(자식까지)이 요양원에 보내면 서로 편안할 텐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할아버지 생각해 말을 꺼냅니다. 그럴 때 던지는 한 마디.

  “누 보고 시집왔는데!”

  이 한 마디가 시인이 생각하는 가장 짧은 시입니다. 현동 할아버지는 시인 아니나 이 경우 시심(詩心)이 잔뜩 담은 말을 했습니다. 간판만 내건 소위 ‘시인’의 표현보다 할아버지의 한 마디가 시의 정수에 더 가깝습니다.
  할아버지에게 할머니는 편하고 편하지 않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함께 살며 지켜야 할 가족이며 아내입니다. 자기가 아플 때 곁을 지켰고, 양식 떨어져 한 사람분 식량만 남았을 때도 그걸 자기에게만 주었고, 혹 남들이 이상한 소리 할 때도 끝까지 믿어준 유일한 사람입니다.

  ‘누 보고 시집왔는데!’
  이 한 마디는 부부가 되고자 화촉 밝힌 수십 년 전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다짐이기에, 가장 짧지만 가장 울림 큰 시가 되었습니다.

  *. 사진 자료는 'kuku-keke'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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