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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12.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58)

제158화 : 황량한 겨울 들판의 갈맷빛 신비

  * 황량한 겨울 들판의 갈맷빛 신비 *


  “이 집 찾아오는 길에 아내랑 같이 보고도 뭔지 몰라 선생님께 여쭤보려 했어요. 오는 길가 밭에 파릇파릇 초록빛으로 자라고 있는 게 뭔지?”
  작년 이맘때 울산 동구 아파트 살 적 친하게 지내던 부부가 찾아왔다. 아마도 한겨울 길가 밭에 자라는 작물을 보고 의문을 품었을 듯.

  울산에서 우리 집 오려면 양남으로 해서 오는 길과 입실(외동읍)로 해서 오는 길, 두 가지다. 양남으로 오려면 면사무소 근처 네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되는데 그 길로 들어서면 이내 비닐하우스 단지가 펼쳐진다.
  요즘 하우스 안에는 다른 작물은 보이지 않고 정구지('부추'의 경상도 사투리)가 자라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정구지는 겨울에 난방이 크게 필요하지 않아 하우스에 이중비닐만 쳐도 겨울 나는 데 지장 없다고 한다.

  비닐하우스 단지를 지나 조금 더 오면 겨울인데도 푸른 풀밭이 보인다. 차로 지나치면 그냥 풀밭이겠거니 하다가 ‘이 겨울에?’ 고개 갸우뚱하다 차를 세우고 내려 가까이 가면 그 정체가 드러난다. 바로 보리다. 한겨울 황량한 들판에 파릇파릇 생기 돋아나니 어찌 그냥 지나치랴.




  작년 8월 당뇨 판정을 받아 약을 먹는데 현미밥이 좋다 하여 쭉 먹다가 질려 보리쌀 넣은 잡곡밥으로 바꿨다. 잡곡밥이 혈당관리 면에서 현미밥에 뒤지지 않고 특히 보리쌀이 들어가면 맛도 있어 먹기 편하다는 이유로.
  보리만큼 완벽한 곡식이 또 있을까? 자라는 과정을 본 적 있다면 고개를 끄덕이리라, 특히 한겨울의 보리밭을 보았다면. 벼와 비교하면 보리의 위대함이 단박에 드러난다. 벼처럼 많은 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 심어놓고 그냥 둬도 잘 자라니 손이 별로 가지 않는다.

  아시다시피 벼를 가리키는 쌀 ‘米’를 파자(破字 : 한자의 획을 하나씩 풀어 나눔)하면 '八十八'이 된다. 이 말은 모를 심어 사람이 먹기까지 88번이나 손이 가야 한다는 데서 쌀 ‘米’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보리는 벼에 비하면 처음 심을 때 거름만 듬뿍 주면 약 한 방울 치지 않아도 잘 자란다. 이슬만 머금어도 버틸 정도니 가뭄도 잘 안 탄다. 나는 텅 빈 벌판에 파릇파릇한 보리 빛깔만 봐도 절로 마음이 편안해져  일부러 보리밭을 찾아가기도 한다.




  보리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칼슘· 엽산· 비타민 B2· 아연· 인· 철분 등이 쌀보다 훨씬 많이 들어있다. 불포화지방산도 풍부해 발암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해줘 대장암 등의 예방에 좋다.

  뿐이랴,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가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줘 쾌변을 보게 해 주고, 콜레스테롤을 낮춰 성인병 예방에 효과적이며, 쌀에 보리를 섞어 밥 지어 먹으면 혈당을 낮추며, 낮은 혈당을 오랫동안 일정하게 지속하는데 도움 준다.

  이런 고리타분한 의학적 설명보다 보리의 가장 큰 힘은 뭐니 뭐니 해도 겨울을 이겨낸다는 점이다. 아무리 추워도 (아니 추워야) 보리는 잘 자란다. 눈이 내려 쌓여도 녹으면 파릇파릇 빛깔 그대로다. '아니 어떻게?'라는 의문이 들다가도 한겨울 보리밭에 서면 단박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리라.



  하기야 된서리 된바람을 겪으며 자란 식물 가운데 몸에 이롭지 않는 게 있을까. 시금치, 양파, 마늘, 보리, 정구지... 다들 춘화현상(春化現象)을 겪으며 자라는 식물이다. '춘화처리'라고도 하는데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겪어야 이듬해 튼실히 열매를 맺는 현상을 가리킨다.


  몇 년 전 인터넷을 달구었던 한 예를 들어보자. 개나리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다. 호주 사는 한 교포가 봄이면 고향 집 담을 두른 노란 개나리가 떠올라 고국에 들렀다가 가는 길에 개나리 가지를 꺾어 가져가 심었다고 한다.
 이듬해 개나리 가지와 잎은 우리나라 있을 때보다 훨씬 무성해졌지만 꽃이 피질 않았다. 첫 해라 그런가 보다 하며 기다렸지만 다음 해도 그다음 해도 꽃은 피지 않았다. 식물학자에게 문의해 본 후에야 그 까닭을 알았다. 혹한의 겨울이 없는 호주에선 개나리가 꽃을 피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또 봄에 파종하는 '봄보리'에 비해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넘기는 가을보리의 수확량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뭔가 우리네 삶에 깨우침을 주지 않는가. 혹독한 시련을 겪은 사람과 겪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요즘엔 보기 드물지만 예전엔 2월 중순이면 보리밟기를 했다. 겨우내 성장을 멈췄던 보리가 다시 자라기 시작할 때 부풀어진 땅을 밟아주려. 언 땅에 살며시 머리 내민 보리를 자근자근 밟아주면 독특한 소리가 난다. 어찌 들으면 칭얼대는 어린뿌리 달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보리밭으로 글 쓰다 어릴 때 울엄마에게 야단들으며 먹었던 꽁보리밥이 떠오른다.
  예전엔 먼저 보리쌀을 삶아 소쿠리에 담아두었다가 밥 할 때 쌀과 섞어 지었다. 그래야 보리 익는 시간과 쌀 익는 시간 맞기에.
  먹어도 먹어도 배 고프던 중학생 때 학교 갔다 오면 부엌에 들어가 뒤져보나 요기거린 아무것도 없고. 그러다 눈에 띈 보리쌀 소쿠리를 내려 간장에 비벼 먹었다. 나중에 울엄마는 야단치다가 울고... 다 아픈 추억이나 그게 다 그리우니.

  올봄 청보리 필 때 완도군에 자리한 청산도를 찾아가려 한다. [서편제]란 영화에 나오는 청보리밭이 발길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허나 그보다 보리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한겨울에도 파릇파릇한 빛을 뿜어내는 그런 사람을. 그런 사람 만날 수 있을까?

  *. 아래 사진은 청산도 청보리밭인데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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